Tuesday 06th April 2021,
최윤섭의 헬스케어 이노베이션

[칼럼] 소프트웨어 의료기기에 맞는 새로운 수가 체계가 필요하다

*이번 달 한국경제신문에 기고한 칼럼입니다. 분량제한으로 다 기고하지 못한 원문을 올려드립니다. 

디지털 헬스케어 기술의 혁신으로 나타나는 가장 큰 변화 중 하나는 의료기기 범주의 확장이다. 기존 의료기기는 주로 하드웨어였다. 체온계, 혈압계, 혹은 엑스레이 촬영기기 등이 그러하다.

하지만 의료기기는 소프트웨어의 영역으로 확장되고 있다. 흉부 엑스선 영상을 판독해서 결절을 찾아주거나, 병리 영상을 분석하여 암을 진단하는 인공지능이나, 앱이나 게임으로 환자를 치료하는 디지털 치료제가 이러한 소프트웨어 의료기기의 대표적인 유형이다. 식약처는 지금까지 60개 정도의 인공지능 기반의 의료기기를 인허가했으며, 올들어 FDA는 불면증 치료용 앱이나, ADHD 치료용 게임을 연달아 인허가 하기도 했다.

이렇게 오로지 소프트웨어로만 구성된 새로운 종류의 의료기기를 SaMD (Software as a Medical Device)라고 지칭한다. 기존 하드웨어 의료기기와 구분하기 위해, 한국 식약처와 미국 FDA를 포함한 여러 국가의 규제기관 연합체인 국제의료기기규제당국자포럼(IMDRF)이 몇년 전 새롭게 정의한 용어이다.

최근 FDA의 규제 혁신의 중심에는 모두 이 소프트웨어 의료기기가 있다. FDA의 국장이 “FDA의 전통적인 심사 기준이 새로운 종류의 의료기기에 적합하지 않다”고 고백했던 것도, 2017년부터 FDA가 사전 승인 제도(Pre-Cert) 등의 파격적인 규제 방식을 내어 놓는 것도, 또한 FDA가 올해 디지털 헬스케어 전담 부서를 신설한 것도 모두 소프트웨어 의료기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국의 정책, 규제, 및 수가는 여전히 하드웨어 의료기기에만 맞춰져 있다는 것이 문제다. SaMD를 허가, 심사 및 규제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인력과 전문성이 필요할뿐만 아니라, 완전히 새로운 시스템이 필요한데도 말이다.

소프트웨어 의료기기는 하드웨어와 구분되는 여러 특징이 있다. 상대적으로 위험성이 낮으며, 개발 기간도 짧고, 업데이트도 잦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특징은 쓰면 쓸수록 더 좋아진다는 것이다. 앱이나 인공지능 등을 활용하면 새로운 데이터가 창출되는데, 소프트웨어의 특성상 이 데이터는 다시 성능과 기능을 개선시키는 데 활용되기 때문이다. 특히 이렇게 ‘쓰면 쓸수록 좋아지는’ 선순환 고리는 매우 빠르게 반복된다.

이러한 SaMD의 특성은 한국을 비롯한 많은 국가의 의료보험제도와 충돌한다. 기존의 의료보험제도는 임상연구를 통해 근거를 만들고, 이에 기반하여 보험 적용 여부 및 수가를 결정한 다음에야 시장에 진출하는 방식이다. 이러한 선평가 후진입 방식은 하드웨어 의료기기에 적합한 구조이다.

하지만 소프트웨어 의료기기는 사용되어야만 ‘쓰면 쓸수록 좋아지는’ 선순환 고리가 작동한다. 즉, 시장에 진입한 이후에 제대로 평가할 수 있다. 그럼에도 현재 수가 시스템은 평가가 좋아야만 시장에 진입할 수 있기 때문에 모순이 생긴다. 현재 한국 식약처의 허가를 받은 60여개에 달하는 인공지능 의료기기가 하나도 빠짐없이 모두 신의료기술평가 대상조차 되지 못하는 것은 이러한 모순을 반영한다.

결국 SaMD의 특성을 반영한 수가 체계의 신설이 필요하다. 이미 세계 주요국은 선순환구조를 발동시키기 위한 ‘마중물 수가’를 직간접적으로 부여하기 시작했다. 가장 적극적인 독일은 최근 디지털 헬스 특별법(Digital Health Act)을 제정하여 인허가 받은 소프트웨어에 무조건 수가를 부여한다. 그렇게 시장에 선진입하여 12개월 동안 ‘쓰면 쓸수록 좋아지는’ 되먹임 고리를 작동시킨 다음에, 재평가를 하는 방식이다. 같은 목적으로 영국은 근거 창출 펀드, 미국은 NTAP이라는 한시적 수가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은 이렇게 소프트웨어 의료기기에 맞춘 수가 체계의 개편은 요원하다. 하루가 멀다고 규제 개선이나, 디지털 헬스케어 지원 정책이 쏟아져 나오고 있지만, 소프트웨어 의료기기의 본질에 맞는 수가 체계라는 핵심과는 동떨어져 있다. 디지털 헬스케어 기업이 세계적인 기술을 개발해놓고도 시장에 진출하지 못한 채 시간만 보내는 가장 큰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한국이 진정으로 디지털 헬스케어 분야에서 4차산업혁명, 혁신 성장, 규제 완화를 이룩하고, 유니콘 스타트업을 배출한다는 정책적인 목적을 이루고자 한다면, 소프트웨어 의료기기를 위한 수가의 신설이 최소한의 출발점이다.

About The Author

IT와 헬스케어의 컨버젼스를 통해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는 것을 화두로 삼고 있는 융합생명과학자, 미래의료학자, 기업가, 작가, 엔젤투자가, 에반젤리스트입니다. 포항공대에서 컴퓨터공학과 생명과학을 복수 전공하였고, 동대학원에서 전산생물학으로 이학박사를 취득했습니다. 현재 최윤섭 디지털 헬스케어 연구소의 소장이며, 헬스케어 전문 스타트업 엑셀러레이터 디지털 헬스케어 파트너스 (DHP)의 대표 파트너를 맡고 있습니다. 성균관대학교 삼성융합의과학원 디지털헬스학과 겸임교수이자, VUNO, 3billion, 서지컬마인드 등의 스타트업의 자문을 맡고 있습니다. 네이처의 디지털 헬스케어 분야 자매지 『npj 디지털 메디슨』의 편집위원이자, 식약처, 심평원의 전문가 협의체 자문위원입니다. 『디지털 헬스케어: 의료의 미래』 『의료 인공지능』 『헬스케어 이노베이션』 『그렇게 나는 스스로 기업이 되었다』 등을 집필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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