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을 활용하여 정밀의학을 구현하려는 기업, 템퍼스 AI가 최근 디지털 병리학 전문 인공지능 기업인 페이지(Paige)를 8,125만 달러에 인수했다고 발표했습니다. 이번 영상에서는 템퍼스가 인수한 페이지가 어떤 회사인지, 왜 인수했는지, 인수를 적절한 가격에 한 것인지, 인수를 정말 잘 한 것인지에 대해서 분석해보려고 합니다.
고품질의 병리 데이터 확보
페이지는 2017년, 세계 최고의 암 병원 중 하나인 메모리얼 슬론 케터링 암센터의 기술과 데이터를 바탕으로 스핀오프한 회사인데요. 세계에서 가장 포괄적인 수준의 디지털 병리 데이터셋을 보유하고 있는 회사로 평가 받고 있습니다. 특히, 페이지는 총 700만 장에 달하는 디지털 병리 슬라이드 이미지와 이에 대한 임상 및 분자 데이터를 보유하고 있는데요. 이는 45개국에 걸쳐 다양한 인종, 민족, 지역 및 성별을 아우르는 데이터입니다.
템퍼스가 페이지를 인수한 가장 큰 목적은 이렇게 방대한 디지털 병리 데이터를 확보하기 위한 것입니다. 템퍼스는 정밀의료의 구현을 지향하면서, 가장 먼저 암 환자를 위한 최적의 치료법을 권고하기 위한 NEXT라는 인공지능을 개발하고 있습니다. 또한, 세계 최대 규모의 종양학 멀티모달 파운데이션 모델을 만들고 있는데요. 이러한 인공지능 모델을 만들기 위한 출발점은 양적/질적으로 우수한 데이터의 확보입니다. 템퍼스는 이를 위한 세계 최대 규모인 300 페타바이트 이상의 의료 데이터를 확보하고 있다고 강조해 왔는데요. 2025년 JPM 발표 자료를 보면, 4,000만 개의 환자 진료 기록, 200만 개의 의료 영상, 300만 개의 서열 데이터 등을 보유하고 있다고 나옵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지금까지 템퍼스가 보유하고 있다는 데이터에, 병리 데이터는 명시적으로 언급되지 않았습니다. 적어도 템퍼스가 외부에 자랑할 만큼 방대한 병리 데이터를 보유하고 있지는 않은 것으로 추정해 볼 수 있습니다. 병리 데이터가 암의 진단, 병기 판정, 치료법 선택 등을 위해서 매우 중요함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이번 페이지의 인수를 통해서, 템퍼스는 700만 장에 달하는 방대한 병리 데이터를, 그것도 MSKCC에서 나온 양질의 데이터를 확보함으로써, 암 정밀 의료를 구현하기 위해서 빠져 있던 중요한 퍼즐 조각을 채울 수 있게 되었습니다.
종양학 파운데이션 모델에 기여
특히, 이는 템퍼스가 개발하고 있는 세계 최대 규모의 종양학 멀티모달 파운데이션 모델에도 큰 기여를 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파운데이션 모델은 말 그대로 ‘기초’가 되는 모델로, 방대한 데이터를 미리 학습시켜 놓은 이후에, 이를 다양한 문제의 해결에 활용하는 것입니다. 종양학 분야의 파운데이션 모델이라면 병리학 데이터가 빠질 수 없습니다. 더구나, 페이지는 230만 장 이상의 병리 슬라이드 이미지를 기반으로, PRISM2라는 디지털 병리학 분야의 파운데이션 모델을 이미 개발한 경험이 있습니다. 이 모델은 진단 및 바이오 마커 예측 등에서 기존의 모델보다 좋은 성능을 보였는데요. 이러한 페이지의 R&D 역량 및 경험도, 템퍼스가 종양학 분야의 파운데이션 모델을 만들기 위해서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페이지의 기존 제품 라인업
더 나아가, 페이지는 단순히 데이터만 많이 보유한 기업이 아닙니다. 무엇보다도 종양학과 관련된 병리 인공지능 제품을 활발하게 개발하고 사업화해왔습니다. 특히, 페이지는 2021년, FDA로부터 인공지능 기반의 병리 진단 의료기기를 최초로 인허가받기도 했습니다. 전립선 생검 슬라이드를 분석하여, 암의 가능성이 있는 병변을 표시해주는 Paige Prostate Detect라는 인공지능 소프트웨어 의료기기입니다. 이외에도 유방암 림프절 전이 검출을 위한 인공지능 Paige Lymph Node와, 다양한 조직 및 장기에서 암을 탐지할 수 있는 인공지능 Paige PanCancer Detect가 FDA로부터 혁신의료기기(Breakthrough Device) 지정을 받기도 했습니다.
템퍼스는 기존에 종양과 관련하여 유전자 분석, RNA 분석, 액체 생검, 최소 잔존 질환(MRD) 테스트 등 종합적인 검사 라인업을 보유하고 있었는데요. 이 라인업에 병리 분석과 관련된 서비스는 없었습니다. 이번 인수를 통하여 템퍼스는 기존에 빠져 있던 병리 분석과 관련된 인공지능도 추가할 수 있게 된 것이지요.

인수 가격은 적절했는가
이번 M&A에서 특히 흥미로운 것은, 바로 인수 가격입니다. 기업 인수합병에는 소위 승자의 저주라는 것이 있죠. 기업의 실제 가치보다 너무 비싸게 인수하면, 장기적으로 기업에는 해가 된다는 것입니다. 즉, 적정한 가격에 인수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인데요. 이번 인수는 템퍼스의 입장에서는 페이지를 아주 헐값에 싸게 인수한 것으로 보입니다.
페이지는 지금까지 벤처캐피털 등에서 총 2억 4,100만 달러 (약 3,300억원) 이상의 투자를 유치했습니다. 그런데 이번 인수는 8,125만 달러에 이뤄졌으므로, (기업가치가 아닌) 누적 투자 유치 금액의 1/3 수준에 불과한 가격이었습니다. 단순히 산술적으로만 봐도 아주 낮은 가격이라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이는 그동안 페이지가 자체적으로는 수익화에 실패했다는 점이 반영되었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특히, 페이지는 2021년 3월 1.25억 달러 규모의 시리즈C 라운드의 투자 유치를 진행했는데요. 당시 기업 가치는 공개되지 않았습니다만, 통상 미국의 비상장기업의 벤처투자는 각 라운드별로 지분의 10~20% 정도에 해당하는 투자가 이뤄진다는 것을 고려하면, 당시 기업 가치는 대략 6억 달러 혹은 그 이상으로 추정해 볼 수 있습니다. 이를 고려하면 이번 인수 금액이 템퍼스의 입장에서는 얼마나 유리했던 것인지 알 수 있습니다.
혹자는 페이지의 사업화 실적이 좋지 않았다는 것에 이번 인수 합병에 의문을 제기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다른 것을 다 떠나서, 이번 인수의 주요 목적으로 해석되는 데이터의 확보 측면에서만 봐도 템퍼스 입장에서는 아주 매력적입니다. 700만 장의 고품질 병리 데이터를 8,125만 달러에 구매했다고만 생각해 보더라도면, 병리 데이터 하나 당 약 11달러라는 계산이 나옵니다. 인공지능의 학습을 위해서 디지털 병리 슬라이드 1장을 새롭게 구축하려면, 환자의 동의 및 IRB 승인, 병리학 전문의의 판독 및 레이블링, 비식별화 과정 등등이 필요합니다. 더구나 페이지의 데이터에는 MSKCC와 연계된 임상 및 분자 데이터까지 결합되어 있다는 것을 고려하면, 이를 데이터 하나 당 11달러에 확보한다는 것은 매우 저렴한 가격이라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결론
정리하자면, 이번 템퍼스 AI의 페이지 인수는 템퍼스가 병리학 데이터셋을 확장하고, 디지털 병리학 분야의 강력한 입지를 구축하며, 기술 및 제품 포트폴리오를 확장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특히, 이러한 페이지의 방대한 데이터 및 파운데이션 모델의 개발 역량과 경험은 템퍼스가 지향하고 있는 종양학 분야의 최대 멀티모달 파운데이션 모델의 구축에도 큰 기여를 할 것으로 보입니다.
더 나아가, 기업 M&A에서는 인수가격이 중요한데요. 이번 인수는 페이지가 보유한 데이터의 양과 질, 기술력, 제품 포트폴리오 등을 고려하면 템퍼스의 입장에서는 거의 바겐세일에 가까울 정도의 유리한 딜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겠습니다. 템퍼스는 인공지능을 활용해서 정밀 의학을 발전시키기 위한 여러 가지 과감한 시도들을 하고 있는데요. 이번 인수합병도 그러한 과감하고도 영리한 전략의 일환이라고 해석할 수 있겠습니다.
*이 포스팅은 하나자산운용 1Q ETF의 도움을 받아서 제작되었습니다. 제가 기고한 원문은 하나자산운용 블로그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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