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 인공지능 ‘1대 강국’으로 가는 길

*제가 이번달 머니투데이에 기고한 칼럼입니다. 분량 제한 없이 쓴 원문을 올려드립니다.

필자는 지난 칼럼에서 이번 정부가 천명하고 있는 ‘인공지능 3대 강국’이라는 야심찬 목표의 전략적 거점을 의료 인공지능에서 시작하자는 화두를 던진 바 있다. 한국은 지난 몇년 동안 의료 인공지능 기술, 산업, 규제 등의 전방위적으로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춰왔다. 여기에 국가의 전략적 지원이 대해진다면 한국은 의료 인공지능 분야에서 글로벌 주도권을 확보할 수 있다. 이를 통해 소버린 AI 측면에서도 의료 인공지능을 단순히 외국 기술 의존을 줄이는 정도가 아니라, 글로벌 패권을 장악할 수 있는 공격적, 전략적 무기로도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이번 칼럼에서는 의료 인공지능을 국가가 전략적으로 육성하기 위한 각론을 논해보려 한다. 의료 인공지능은 다른 분야의 인공지능과 달리 차별화된 정책 지원이 필요하다. 의료 인공지능은 기술, 산업, 규제, 현장 도입 등이 모두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이 중 가장 필요한 돌파구는 관련 기업들이 돈을 벌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주는 것이다. 한국은 국민건강보험이라는 하나의 국영 건강 보험만 운영되기 때문에 인공지능과 같은 기술의 도입에 보수적이다. 때문에 좋은 기술을 가진 기업도 사업화가 어려운 경우가 많다.

최근 혁신의료기술, 신의료기술평가 유예 제도 등이 마련되며 약간의 숨통이 트였지만, 각론으로 들어가면 여전히 많은 개선이 필요하다. 일례로, 인공지능이 의료기기로 인허가 받은 이후에, 혁신의료기술로 지정되어 시장에 진입할 수는 있다. 하지만 비급여로 환자에게 과금할 수 있는 금액의 상한이 존재한다. 이 상한 금액이 지나치게 낮을 뿐만 아니라, 비급여 가격을 정부가 통제하는 것 자체가 법령 위반이라는 지적도 있다. 또한 심평원 비급여 청구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질병이 달라도 하나의 검사에 대해서는 단 한 번만 청구를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A 질병 진단을 위해 MRI 결과를 분석하는 AI로 청구를 했다면, B 질병을 진단하기 위해 이 MRI를 분석하는 다른 인공지능은 비용을 청구할 수 없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환자에게 받는 동의서 양식, 항목, 횟수 등에 대해서도 지나치게 무리한 요구를 받고 있다는 것이 업계의 공통된 의견이다.

의료 인공지능을 전략적으로 육성하고자 한다면, 전례를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의 파격적이고 차별화된 지원이 필요하다. 독일은 2019년 디지털헬스케어특별법을 제정하며, 디지털 치료제가 인허가를 받으면 수가를 지급하는 DiGA라는 파격적인 제도를 도입했다. 이 제도에서는 최소한의 요구사항만 갖추면, 심지어 치료 효과를 증명하지 않은 디지털 치료제도 최장 24개월 동안 보험에 임시 등재가 가능하다. 더구나, 등재 후 첫 12개월 동안의 가격은 정부가 아닌, 업체가 결정한다. 분명 비효율적이고 의료 재정 낭비의 가능성이 있는 제도다. 하지만 이 제도 덕분에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후진국이었던 독일이 디지털 치료제 분야에서만큼은 전세계 회사들이 앞다투어 찾는 국가로 발돋움했다.

미국의 MCIT 제도 역시 참고할만하다. [참고1, 참고2] 미국 보험청(CMS)는 2020년 혁신적인 의료기술에 파격적으로 메디케어 보험 수가를 적용하는 MCIT(Medicare Coverage of Innovative Technology)를 제안했다. 혁신의료기기로 규정된 의료기기가 FDA의 인허가만 받으면 자동적으로 4년 동안 메디케어 보험 급여를 미국 전역에 무조건 적용하겠다는 실로 파격적인 방안이었다. 혁신적 의료기술이 시장에 진입하기 위한 근본적인 문제인 보험 적용을 해결해주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제도는 결국 여러 논의 끝에 시행되지 못했는데, 그 이유는 한마디로 지나치게 파격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이 파격적인 제도를 시행해보면 어떨까?

더 나아가, 하정우 AI미래기획수석이 제안했던 ‘전 국민 무료 AI 바우처’를 의료 AI 버전으로 응용해 볼 수도 있다. 바로 병원에게 의료 AI 바우처를 제공하는 것이다. 의료 인공지능은 병원들이 비용을 지불하고 구매하는 것이 현장 도입의 시작이다. 최근 국내에서도 병원들이 의료 인공지능 도입에 대한 관심도가 크게 상승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일선 병원에 바우처를 제공하여, 의료 인공지능을 도입할 수 있는 마중물을 제공한다면, 의료 인공지능 도입-산업-기술-데이터가 맞물리는 선순환 구조를 촉발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정책은 분명히 비효율적이고 정부 재정의 낭비를 초래한다. 하지만 한국이 인공지능 강국으로 도약하기 위한 야심찬 목표를 위해서는 비효율과 재정 지출을 감수하고서라도 과감하고도 파격적인 방안이 필요하다. 최근 메타에서는 인공지능 인재를 한 명을 영입하기 위해 무려 천억원 이상의 연봉을 지불한다는 소식이 있었다. 한국이 인공지능 분야에서 주도권을 잡기 위해서는 선진국과 정면으로 경쟁하기보다는, 경쟁력 있는 분야를 선택하여 전략적으로 파격적인 지원을 제공해야 한다. 필자는 그 분야가 의료 인공지능이라고 확신한다. 빠르게 움직인다면, 의료 인공지능 분야에서는 한국이 ‘3대 강국’이 아니라, ‘1대 강국’으로 발돋움할 수 있는 가능성이 충분히 남아 있다.

글쓴이

최윤섭

디지털 기술과 생명과학, 의학의 융합을 통해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고 의료를 혁신하는 것을 화두로 삼고 있는 디지털 헬스케어 전문가, 미래의료학자, 작가, 벤처투자자입니다. 포항공과대학교(POSTECH)에서 컴퓨터공학과 생명과학을 복수전공하였으며, 전산생물학으로 이학박사 학위를 취득하였습니다. Stanford University 방문연구원, 서울대학교병원 연구조교수를 역임하였습니다. 현재 디지털 헬스케어 스타트업 전문 투자사 디지털 헬스케어 파트너스(DHP)의 대표 파트너이며,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예방의학교실 외래조교수이기도 합니다. 『디지털 헬스케어: 의료의 미래』, 『의료 인공지능』, 『헬스케어 이노베이션』 등을 집필하였으며, Science의 제1저자를 비롯해서, 주요 국제 학술 저널에 다수의 논문을 개제하였습니다. npj Digital Medicine Editorial Board 멤버이자, 대한의료인공지능학회 설립 발기인 및 기획이사로 활동했습니다. 식약처 및 심평원의 자문위원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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