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다시 중요하고도 핵심적인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인간 의사의 개입 없이 자율적이고 독립적으로 임상적인 의사 결정을 내리고, 의료 행위를 수행할 수 있는 ‘존재’를 어떻게 정의하고 규정해야 할까요?
웨이모는 레벨 4, 그렇다면 의료 AI는?
이를 위해서 체계적인 접근법은 이런 인공지능이 어느 정도의 자율도(level of autonomy)를 지니는지에 따라 세부적으로 구분하는 것입니다. 마치 자율주행차에서 Level 5까지의 자율도를 정의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미국자동차공학회(SAE International)는 자율주행차를 아래와 같이 총 6단계로 나눕니다.
- Level 0 (비자동화): 운전자가 모든 것을 직접 제어
- Level 1 (운전자 보조): 조향 또는 가감속 중 하나를 시스템이 보조 (크루즈컨트롤이나 차선유지보조)
- Level 2 (부분 자동화): 조향과 가감속을 동시에 시스템이 처리 + 운전자가 긴급상황에 즉시 개입 필요
- Level 3 (조건부 자동화): 고속도로·서행 구간 같은 특정 조건에서는 시스템이 운전 전체를 담당 + 시스템의 요청 시 운전자가 반드시 개입해야 함
- Level 4 (고도 자동화): 지정된 지역 내에서는 어떤 상황에서도 시스템이 자율 처리하며 인간 개입이 불필요. 운전대 없는 설계도 가능. Waymo One 로보택시가 현재 이 수준에서 운영 중
- Level 5 (완전 자동화): 모든 도로·날씨·조건에서 시스템이 완전히 자율 주행. 운전자 개념 자체가 사라지는 단계. 아직 상용화된 차량은 존재하지 않음.
그렇다면, 이러한 방식으로 자율 의료 인공지능도 어느 정도의 자율도를 가지는지에 따라서 세부적으로 분류할 수 있지 않을까요? 놀랍게도 이미 미국의사협회(AMA)는 이미 공식적으로 자율 의료 인공지능을 세부적으로 분류하고 정의해놓았습니다. 더욱 흥미롭게도 이 분류는 미국의사협회의 CPT 편집위원회 (CPT Editorial Panel)가 진행한 것입니다.
이미 AI를 CPT 코드로 정의한 미국의사협회
CPT 코드는 미국에서 의료 서비스와 시술을 표준화한 숫자 코드 체계로, 병원이 보험 청구, 지급, 분석 등에 공통으로 사용됩니다. 특히 산업적인 측면에서 봤을 때 중요한 점은, 새로운 기술이 개발되었을 경우에 여기에 대한 CPT 코드가 부여되어야만 보험 청구가 가능하다는 점입니다. 법적으로 모든 의료 청구에 CPT 코드를 사용해야 하지만, 특이하게도 그 코드의 소유권은 의사의 권익을 대변하는 민간 단체인 미국의사협회가 가지고 있는 독특한 구조인데요. 미국의사협회가 운영하는 CPT 편집위원회는 신규 시술 (예를 들어, 새로운 수술법, AI 진단 솔루션)이 나왔을 때, 여기에 대한 CPT 코드 심의와 승인을 담당하는 조직입니다. 즉, 이 위원회의 결정이 의료 기술의 시장 진입에, 매우 중요하고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흥미롭게도 이런 CPT 편집위원회는 2022년 1월 인공지능의 유형을 정의하고 분류하기 위한 CPT Appendix S를 공식적으로 발효하였습니다. 당시, 미국 FDA에서 허가한 인공지능 기반 의료기기의 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지만, 이들 중 상당수가 CPT 코드로 표현되지 않는 시급한 문제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2021년 9월 미국의사협회는 산하에 디지털 의료 지불 자문 그룹 (Digital Medicine Payment Advisory Group, DMPAG)이라는 AI 분야 전문성을 갖춘 워킹 그룹을 만들어, 의료 분야 인공지능에 대한 분류체계(taxonomy)를 확립한 것입니다. 이것이 ‘의료 서비스 및 시술을 위한 AI 분류 체계(AI taxonomy for medical services & procedures)’라는 이름으로 발표된 Appendix S 입니다.
Appendix S는 의사의 업무와 관련해서 ‘기계가 수행하는 작업’을 어떻게 기술할 것인지에 대한 기준을 제시합니다. 이것이 중요한 이유는 이 기준이 좁게는 CPT 코드에 특정되었다고 할 수 있지만, 넓게 보면 Appendix S의 디스크립터(기술자)가 의료 인공지능을 체계적으로 분류함으로써 의료 전문가, 개발자, 규제기관, 지불자 등 관련 분야 전반에 걸쳐서 용어를 표준화하는 기준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CPT Appendix S: 보조, 증강, 그리고 자율
CPT Appendix S에서는 환자에게 제공된 임상 시술/서비스 및 의료인(Qualified Healthcare Professional, QHP)을 대신해서 수행한 작업을 기준으로, 의료 인공지능을 보조, 증강, 자율의 세 가지로 분류합니다. (참고로, 이 문서에서는 ‘의사 혹은 자격을 갖춘 의료 전문가 (physician or other qualified health care professional (QHP))’라는 용어를 쓰는데 저는 의사, 의료인 정도로 통칭하겠습니다.)
먼저 보조(assistive)입니다. 여기에 해당하는 인공지능은 임상적으로 관련 있는 데이터(clinically relevant)를 탐지(detect)하는 것이 주 기능입니다. 탐지까지만 수행하며, 분석을 진행하거나 결론까지 도출하지는 않습니다. 그 이후의 분석, 임상적인 중요도 판단, 보고는 전적으로 의료인이 진행하게 됩니다. 예를 들어, 의료 영상 판독을 보조하는 코드 (77048, 77049 등), 심전도를 분석하여 심기능을 평가하는 코드(0764T, 0765T)가 여기에 해당됩니다.
두 번째는 증강(augmentative)입니다. 여기에 해당하는 인공지능은 임상적으로 의미 있는(clinically meaningful) 데이터에 대한 분석 및 정량화를 제공합니다. 의사는 AI의 출력을 해석하고 결론을 보고하게 됩니다. 예를 들어서, 관상동맥 CT에서 비침습적으로 FFR(분획혈류예비력)을 도출하는 코드 (75580)가 여기에 해당됩니다. CT 영상에서 FFR을 도출한 것이 정량적이고 임상적으로 직접 치료 결정에 쓰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세 번째가 바로 자율(autonomous)입니다. 자율 의료 인공지능은 자동으로 데이터를 해석하고, 의료전문가의 동시적(concurrent) 개입 없이, 자동으로(automatically) 데이터를 해석하고, 임상적으로 의미 있는 결론을 독립적으로(independently) 생성합니다. 여기에는 데이터의 수집, 준비, 및 전송이 포함될 수 있고, 임상적으로 의미 있는 결론은 진단의 확립이나 치료적인 개입의 수행에 사용되는 데이터를 임상적으로 해석하는 것을 포함한다고 언급합니다.
세 가지 레벨의 자율 의료 인공지능
CPT Appendix S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한 단계를 더 나아가 ‘자율’에 해당하는 의료 인공지능의 자율도(level of antonomy)를 레벨 I, II, III의 세 단계로 구분합니다. 마치 자율주행차의 자율도를 레벨 5까지 구분하고 있는 것과 유사합니다.
- Level 1: 자율 인공지능이 결론을 도출하고, 진단 및 관리 옵션을 제시(offer)한다. 이 결론과 옵션에는 이의를 제기할 수 있으며, 실제로 실행하기 위해서는 의사의 행동이 필요(require)하다.
- Level 2: 자율 인공지능이 결론을 도출하고, 진단 및 관리 옵션을 개시(initiate)한다. 이는 무효화(override)할 수 있도록 경고/기회가 제공되며, 실제로 실행하기 위해서는 의사의 행동이 필요할 수 (may require) 있다.
- Level 3: 자율 인공지능이 결론을 도출하며, 관리를 개시(initiate)한다. 이에 이의를 제기하기 위해서는 의사가 능동적으로 먼저 행동해야 (initiative to contest) 한다.
즉, Level 1은 인공지능이 자율적이고 독립적으로 결론을 도출하지만, 이를 곧바로 실행에 옮기지는 않습니다. 실행에 옮길지 결정하는 것은 인간 의사의 몫으로 남아 있습니다. 반면, Level 2는 자율적으로 도출한 결론을 기반으로 진단 및 관리를 스스로 실행에 옮깁니다. 다만, 이러한 의료 행위를 개시할 때 인간 의사에게 이를 중단시킬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집니다.
Level 3는 여기서 더 나아갑니다. 인공지능이 스스로 판단해서 의료 행위를 독립적으로 수행하며, 이러한 의료 행위를 시작할 때 인간 의사에게 동의를 구하거나 경고가 따로 주어지지 않습니다. 이때 인공지능이 이미 수행 중인 의료 행위를 중단하기 위해서는 의사가 능동적이고 적극적으로 개입을 해야만 합니다. 즉, 의료 행위에 대한 의사 결정권 및 수행에 대한 권한이 인공지능 쪽으로 이동하는 것입니다. 물론 의사가 개입할 수는 있습니다만, 기본적으로 의사는 인공지능이 독립적으로 수행하는 역할을 관리하고 감독하는 정도의 소극적인 역할만 하게 됩니다.
‘자동’이 ‘자율’로 바뀌다
이렇게 CPT Appendix S에서 분류되는 자율 의료 인공지능이 현실에서는 어디까지 구현이 되어 있을까요? Level 1의 자율도에 해당하는 것이 바로 앞서 언급한 루미네틱스코어와 같은 인공지능입니다. 인공지능이 자율적으로 결론을 도출하고, 진단까지 내리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 이상의 치료에 대한 옵션을 스스로 수행하는 수준은 아닙니다.
루미네틱스코어에 대한 CPT 코드는 92229입니다. 이 코드에 대해서는 의미 심장한 부분이 있어서,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보려고 합니다. 이 92229 코드는 2020년 9월 처음 만들어졌을 때 아래와 같이 기술되었습니다.
Imaging of retina for detection or monitoring of disease; point-of-care automated analysis and report, unilateral or bilateral (망막 질환 탐지 또는 모니터링을 위한 이미징; 현장 자동 분석 및 보고서, 단안 또는 양안)
그리고, CPT 편집 위원회가 CPT Appendix S를 발효한 이후, 2022년 9월에 CPT 코드 92229는 아래와 같이 수정되었습니다.
Imaging of retina for detection or monitoring of disease; point-of-care autonomous analysis and report, unilateral or bilateral (망막 질환 탐지 또는 모니터링을 위한 이미징; 현장 자율 분석 및 보고서, 단안 또는 양안)
즉, 원래는 망막 질환을 ‘자동(automated)’으로 분석한다고 기술하였다가, CTP Appendix S에 따라서 자율 인공지능을 정의하고, 자율도에 따라 자율 인공지능을 세부적으로 분류한 이후에는 ‘자율(autonomous)’적으로 분석한다고 변경한 것입니다. ‘자동’과 ‘자율’은 일견 비슷하게 보일 수도 있습니다만, 잘 생각해보면 ‘자동’은 이미 지정된 조건에 따라 수행한다는 의미라면, ‘자율’은 어떻게 수행할 것인지, 혹은 수행할 것인지 자체에 대해서도 의사결정권을 가질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즉, 이를 단순 ‘자동화’ 코드에서 공식적으로 ‘자율 인공지능’ 코드로 명확히 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더 나아가서, 이렇게 코드에 대한 설명이 이렇게 변경되는 과정에서 미국 의사 협회가 이 자율 인공지능에 대해서 얼마나 진지하게 고려하고, 또 사전에 준비하고 있는지도 엿볼 수 있습니다.
사실 Level 2와 Level 3의 자율 의료 인공지능은 아직 규제기관의 허가를 받거나, 의료 현장에 도입된 것은 없습니다. 즉, 미국 의사 협회가 아직 존재하지 않는 자율 인공지능을 사전에 분류하고 정의까지 해놓은 것입니다.
특히, Level 2부터는 진단 및 관리를 인공지능이 스스로 개시(initiate)할 수 있기 때문에 의료 행위의 주체에 대한 패러다임이 근본적으로 변화할 여지가 있습니다. 이 때문에 정확성과 안전성에 대한 더 많은 검증이 필요할 뿐만 아니라, 검증을 어떻게 할 것인지 그 자체에 대한 논의, 더 나아가면 의료 윤리와 책임 소재 등 더 넓은 범위에서의 근본적인 논의가 필요할 것입니다. 일단 지금 시점에서 중요한 것은 미국 의사 협회가 CPT Appendix S를 통해서 아직 존재하지도 않는 높은 자율도를 가지는 자율 의료 인공지능에 대한 준비를 이미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청진기에는 위임하지 않는다
그런데 방금 제가 했던 이야기 중에, 의료인이시라면 흠칫하셨을 아주 근본적이고도 파격적인 언급이 있었습니다. 바로 의료 행위의 주체에 대한 패러다임이 변화할 여지가 있다는 것이었는데요. 현재 의료 행위의 주체는 두말할 필요 없이 적절한 자격 요건을 가진 의료 전문가, 즉 (인간) 의사입니다. 만약 자율적으로 의사 결정을 내릴 수 있고, 의료 행위를 수행할 수 있는 인공지능이 등장한다면, 인공지능을 의료 행위의 ‘주체’로 정의할 수 있을까요?
앞서 언급한, 애리조나 주 공화당 하원의원 데이비드 슈와이커트가 발의한 법 개정도 이러한 시도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법안은 아직 통과되지 않았지요.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의사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미국 의사 협회에서 자율 의료 인공지능을 정의 및 분류하고, CPT 코드 92229에 ‘자율’이라는 표현을 넣으면서 AI를 의료 행위의 주체로 인정하려는 것일까요? 기본적으로 CPT 코드는 ‘의사가’ 제공하는 의료 서비스 (professional service) 또는 의료 절차(procedure)를 정의하고, 이에 대해 보상을 청구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런데 CPT 코드 92229의 설명을 보면 마치 그 주체가 자율 인공지능 것처럼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 이슈에는 현재 여러 가지 역설적인 상황이 혼재하고 있습니다. 이를 보면 지금이 과도기적인 상황이라는 것을 알 수 있는데요. 일단 CPT Appendix S 의 자율 인공지능에 관한 정의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의사 또는 기타 의료 전문가를 ‘대신하여(on behalf of)’ 기계가 수행한 작업 (work performed by the machine on behalf of the physician or other qualified health care professional)”이라는 표현이 등장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on behalf of”라는 표현인데요. 이는 법적으로 위임(delegation) 관계를 의미합니다. 즉, 미국의사협회는 의료 행위의 주체는 여전히 의사이고, 인공지능은 그 의사가 위임한 작업을 수행하는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미국의사협회의 회원인 의사의 직업적 지위와 권한을 보호해야 하는 의도가 담겨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이런 ‘위임’ 관계를 암시하는 표현 자체가 인공지능이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의료 행위의 일부를 실제로 수행하는 행위자, 즉 에이전트에 가까운 무엇임을 인정한 것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위임은 행위 능력이 있는 존재 사이에서만 성립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의사는 청진기에 무엇인가를 위임하지 않고, MRI 기계에도 무엇인가를 위임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대학병원 교수는 전공의나 인턴 의사에게 무엇인가를 위임할 수 있습니다. 전공의나 인턴 의사는 행위 능력이 있는 존재이기 때문에 이런 위임 관계가 성립합니다. 자율 인공지능도 그러하다는 것입니다.
더구나, 현재는 미국의사협회의 분류에 따르면, Level 1 자율 의료 인공지능만 존재하는 상황입니다. 만약 의료 행위를 스스로 개시하는 Level II, III의 자율 의료 인공지능이 등장한다면, 이를 더 이상 ‘위임’ 관계로 볼 수 있을지에 대해서도 고민이 깊어질 것입니다.
의사의 노동은 0으로 계산되었다
더 나아가서, CPT 코드 92229의 수가 책정 방식을 보면, 자율 인공지능을 행위의 주체로 볼 수 있을지에 대한 매우 중요한 함의가 담겨 있습니다. CPT 코드에 따른 메디케어 수가는 기본적으로 세 가지 상대 가치 단위(RVU, Relative Value Unit)의 합으로 구성됩니다. (실제로는 추가로 여러 보정 계수가 더 붙지만, 간소화해서 설명하겠습니다)
- 의사 업무 RVU (Work RVU): 의사가 해당 행위를 수행하는데 필요한 시간, 기술, 노력, 임상적 판단을 반영
- 진료 비용 RVU (Practice Expense RVU): 해당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필요한 (의사 이외의 간호사, 기사, 병원 직원 등) 인력, 장비, 소모품 비용
- 의료 사고 비용 RVU (Malpractice RVU): 해당 행위와 관련된 의료소송·배상책임보험 비용 위험도를 반영
흥미로운 것은 CMS(미국 보험청)이 CPT 코드 92229의 메디케어 수가를 산정할 때, ‘의사 업무 RVU’를 0으로 계산했습니다. 즉, 이 행위에서 의사가 쓰는 시간, 기술, 노력, 임상적 판단은 ‘없다’고 결정한 것입니다. 미국의사협회의 주장대로 의사가 인공지능에게 ‘위임’하는 관계라면, 의사의 노동이 조금이라도 수반되어야 하므로 ‘의사 업무 RVU’는 0이 아니어야 합니다. 예를 들어, 미국에서는 PA(Physician Assistant, 의사보조사)나 NP(Nurse Practitioner, 전문간호사)에게 작업을 위임할 때에도, 의사가 감독(supervision)의 책임을 진다면 ‘의사 업무 RVU’를 일부라도 받게 됩니다.
대신, CPT 코드92229의 수가에는 진료 비용 RVU가 대부분을 차지합니다. 즉, ‘의사가 일을 위임하는 비용’이 아니라 ‘AI가 일을 수행한 비용’을 보상하고 있는 것입니다. 수가, 즉 돈의 흐름을 기준으로 보면, CMS는 ‘AI가 독립적 행위 주체로서 의료 행위를 수행한다’는 것을 사실상 인정하고 있는 것입니다.
충돌하는 논리, 그리고 남겨진 질문들
이렇게 현재는 미국의사협회의 자율 의료 인공지능에 대한 정의 (의사가 인공지능에게 위임한다)와 CMS의 메디케어 수가 산정에 대한 판단 (의사의 노동이 전혀 수반되지 않는다)이 서로 충돌하고 있는 과도기적인 상황입니다. 자율 의료 인공지능의 등장으로, ‘의료 행위는 인간 의사가 하는 것이다’는 전제 자체가 바뀌게 되면, 이처럼 기존의 의료 제도와 다양한 충돌, 모순 그리고 혼란이 발생할 것입니다.
예를 들어, 현재 92229에 대한 메디케어 수가는 의사가 청구합니다. 그런데 ‘의사의 노동이 없다’는 상대 가치 단위의 논리에 따르면, 이를 왜 의사가 청구해야 하는지에 의문이 생깁니다. 그렇다면 청구의 주체는 누가 되어야 할까요? 인공지능의 개발사, 혹은 인공지능 그 자체일까요? 현재의 미국 의료법에 따르면, ‘면허’를 가진 의사만이 의료 행위를 수행하고 급여 청구까지 할 수 있습니다. 현재의 인공지능은 의사 면허가 없지요. (제가 이 언급을 하는 이유는 다음 챕터에서 나옵니다.)
더구나, 자율 의료 인공지능이 의료 행위를 하다가 의료 과실이 발생했을 때, 그 책임 소재는 누구에게 있을까요? 미국 의사 협회의 ‘위임’ 논리에 따르면 의사의 책임일 것이고, CMS의 급여 산정 모델에 따르면 의사의 책임이 적거나 없다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사실 자율 인공지능까지 갈 것도 없이, 기존의 의료 인공지능에 대해서도 의료 과실에 따른 법적 책임의 문제는 아직 명확한 결론이 내려지지 않은 영역입니다. 이 논의가 스스로 의사결정권을 가지는 자율 인공지능까지 확장되면 불확실성이 더 높아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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