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가 의료 AI의 ‘지불자’가 되기로 했다: ‘AI 기본 의료 전략’이 미칠 영향

지난 7월 22일 관계부처 합동으로 발표된 ‘AI 기본의료 전략’은 상당히 의미심장합니다. 구체적인 전략은 추후에 관계부처 합동으로 발표한다고 명시되어 있습니다만, 의료 AI 산업은 물론이고, 국가 의료 체계 자체에도 큰 영향을 줄 큼직큼직한 항목들이 많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한국에서도 이런 정책이 가능했구나 싶을 정도로, 매우 전향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데요. 이런 정책이 잘 실현될 경우에는 한국이 의료 AI 분야의 게임 체인져가 될 수 있다고 봅니다. 제가 읽으면서 인상 깊었던 부분, 앞으로 숙제로 남은 부분 들을 몇가지 정리해봅니다.

1. 의료 AI 정책이 기존의 ‘산업 육성’에서 기본 의료라는 비전 하에서 ‘의료 인프라’, 혹은 ‘공공 인프라’로 전환되고 있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프레임이 바뀌면 무엇보다 예산의 출처가 바뀌게 됩니다. 그리고 산업 육성은 성과가 안 나면 종료되지만, 기본 의료라는 의료 인프라는 국민 대상의 서비스이므로 중단이 어렵습니다. 기존보다 훨씬 지속성이 강한 정책이 되었고, 그만큼 이해관계자들로부터의 (비판을 포함한)다양한 의견이 나올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지속성이라는 측면은 산업계 입장에서는 당연히 긍정적일테고요.

2.  국가가 의료 AI의 지불자 역할을 적극적으로 하겠다는 것이 산업계의 입장에서는 가장 큰 변화이자, 이번 발표의 가장 큰 충격(!)이 되겠습니다. 아래 캡쳐한 이미지에 나오는 부분인데요. ‘AI 기반 최적 의료 서비스에 대한 적정 보상 추진’, 개별 AI 의료 기술의 사용에 보상하는 (기존) 방식에 더해서, ‘AI 기술의 의료 성과를 주기적으로 평가보상 하는 체계를 마련하겠다’는 문장은 아직은 선언적이긴 합니다만, 엄청나게 파격적이고 전향적인 내용입니다.

의료 AI 기술에 대한 ‘적정한’, ‘성과 기반의’ 보상을 하는 것은 너무도 필요하고도 중요한 문제이지만, 결국은 이런 평가와 보상을 어떤 기준으로 할 것인지는 전 세계적으로도 선례가 없는 일입니다. 이 방향으로 가야 한다는 것은 모두가 알고 있지만, 상당한 난제인데요. 이를 어떻게 실현할 것인지가 관건이겠습니다. 지금처럼 기술 단위 보상만 하는 것은 아닐 것 같고, 의료 질 평가와 같이 기관 단위로 AI 활용과 성과를 평가해서 인센티브를 지급하는 방식이 되지 않을까 싶은데요. 역시 세부 기준이 관건이겠습니다.

취약지의 필수과목 의원에 ‘1차 의료 AX 바우처’를 제공하겠다는 것도 국가가 의료 AI의 지불자가 되겠다는 것이어서, 엄청나게 파격적입니다. 다만 디테일은 추후에 더 살펴봐야겠습니다.


3. 예산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 어느 재원을 쓸 것인가. 얼마나 확보될 것인가. 현실적으로는 이 부분이 당장의 큰 숙제입니다.
이번에 제시된 과제의 대부분이 27년도 착수인데, 당장 연내로 예산에 반영되어야 합니다. 관계부처 합동 발표이니 이미 예산 관련해서는 협의가 진행되었을 수도 있겠습니다만..

그리고 어느 재원을 쓸 것인지도 문제입니다. 당장 건보재정을 쓰는 것은 여러모로 어려울 것 같고 (특히 건정심을 통과해야 하므로..) 국고를 쓰거나, 아니면 최근에 신설된 지역필수의료 특별회계(세입)을 여기에 쓸 것이라는 예측도 있는 것 같습니다. 지역필수의료 특별회계의 용도가 필수의료 인력, 취약지 지원, 진료협력체계 구축운영 등이어서, 이번 AI 기본의료 전략과 잘 매칭된다고도 (ex. 1차의료 AI 바우처, 의뢰/회송, 응급 이송 플랫폼 등)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결국에는 장기적으로 선별급여든, 시범수가든 건보 재정을 쓰는 쪽으로 귀결되지 않을 수는 없을텐데요. 장기적으로 건보로 귀결되려면, 건보 재정을 쓰지 않는 기간에도 성과 평가를 위해서 코드와 청구 데이터를 잘 축적해놓는 것이 중요할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청구 코드가 없으니 기록을 남기는 것 자체가 어려운데요. 이 부분 역시 관건이 되겠습니다. (본인부담율 높은 선별급여로 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하면 이번 정책 방향과는 거리가 있을테고..)


4. 단기적으로는 민간의 상용 솔루션을 조달해서 쓰게 됩니다.
AX-Ready 패키지에 상용 의료 AI 를 사용하겠다고 언급되어 있는데요. 의료 AI 회사 입장에서는 여기에 선정되는 것이 일단은 중요해보입니다. 바우처와 관련해서도 등재 솔루션 목록이 생길 것인데, 여기에도 등재되는 것이 개별 업체의 입장에서는 중요합니다.

다만, 아직은 여기에 들어갈 수 있는 자격 요건이 무엇인지, 어떻게 선정되는지 등에 대한 기준은 아직 나와 있지 않습니다. 이런 부분이 역시 앞으로 결정되어야 할 디테일입니다. 공공 사업이니만큼, 상장사나 규모가 있는, 공신력 있는 기업에 혜택이 예상되고, 상대적으로 비상장사나 규모가 작은 회사는 좀 불리해지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되면 결국 공공조달 시장으로 편입되는 것인데, 어쩔 수 없이 단가는 내려갈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다만, P (가격)가 내려가는 대신 Q(사용량)가 지금까지와는 비교될 수 없을 정도로 높아질 수 있겠지요. 의료 인공지능의 효용을 증명하려면, 통계적으로 유의할 정도의 많은 사용량을 확보하는 것이 필요 조건입니다. 공공 조달 시장으로 편입되면 이러한 필요 조건은 일단 충족시킬 수 있습니다.

또한 소버린 의료AI가 언급되면서 장기적으로는 국내 데이터를 학습한 독립적 AI 모델의 개발이 언급되어 있습니다. (과기부 독자/특화 파운데이션 모델 사업과 연계). 이 부분은 자칫하면 민간의 의료 AI와 국가 개발 AI가 경쟁하는 구도가 될 수도 있다는 것처럼 읽히는데요. 이 부분도 향후 어떻게 될지 지켜봐야겠습니다.

 

5. 또 한가지 눈에 띄는 것은 음성 의무 기록(ambient scribe)가 거의 모든 전략에 명시적으로 언급된다는 점입니다. 이번 발표에서 거의 킬러앱(?) 처럼 느껴지는데요. 보이스 EMR은 의료기기도 아니고 (물론 요약/생성이 임상 판단에 관여하기 시작하면 이번 식약처 LLM 가이드라인의 판단 영역으로 들어갑니다만), 의료계의 반발도 낮을테고, 기술적인 구현 난도도 (상대적으로) 낮고, 해외 도입 사례도 많고, 의사/환자 모두 실무적인 효과를 체감하기에 (상대적으로) 용이하다는 점 등이 종합적으로 고려된 것이 아닌가 합니다.

사실 음성 의무기록 생성 툴은 사용자(의사)의 입장에서는 효용을 크게 느낄 수 있지만 (현장에서 사용해본 분들의 호평이 많습니다), 구매자(병원)의 입장에서는 직접적인 효용이 딱히 크지 않다는 문제가 있습니다. 즉, 이 솔루션을 구매해도 병원의 직접적인 추가 수익으로 직결되는지가 애매하기 때문에, 병원이 스스로 돈을 쓸 동인이 적다는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이를 국가에서 지원해준다면, 병원 도입은 폭발적으로 늘어날 수 있습니다.

현재 해외는 물론이고 국내에도 여러 크고작은 관련 업체들이 생겨나고 있는데요. 이 분야 역시 공공이니만큼, 규모가 있고 도입 사례가 많은 일부 회사가 유리하지 않을까 합니다. 미국은 보이스 EMR이 정말 많이 도입되었는데, 이제 국내에도 탄력을 받을지 지켜봐야겠네요.

 

정리하자면, 이번 발표의 방향성은 대단히 전향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국가가 ‘기본 의료’의 일환으로 의료 인공지능의 지불자가 되기로 자임했고, 성과 기반 보상이라는 세계적으로 선례가 드문 과제에 과감히 발을 들였습니다. 다만, 그 방향을 어떻게 실현할 것인지에 대한 디테일, 예를 들어 보상의 기준, 재원, 조달 자격 등은 아직은 빈 칸으로 남아 있습니다. 문서에서 ‘쟁점, 이견이 큰 과제는 추가 의견 수렴’이라고 명시되어 있는 것처럼, 이런 디테일이 어떻게 채워질지가 앞으로 남은 과제입니다.

제 생각에 이 정책은 제대로만 시행된다면, 한국이 산업적으로나, 정책적으로 의료 인공지능 분야를 세계적으로 리딩할 수 있는, 일종의 게임체인져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만큼 전향적이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전인미답의 어려운 과제를 해결해야 하는 숙제도 포함된 정책입니다. 앞으로 정부 예산안, 디지털헬스케어법, 시범사업 공고, 세부 이행 방안이 나올텐데요. 이런 부분을 계속 지켜보겠습니다.

글쓴이

최윤섭

디지털 기술과 생명과학, 의학의 융합을 통해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고 의료를 혁신하는 것을 화두로 삼고 있는 디지털 헬스케어 전문가, 미래의료학자, 작가, 벤처투자자입니다. 포항공과대학교(POSTECH)에서 컴퓨터공학과 생명과학을 복수전공하였으며, 전산생물학으로 이학박사 학위를 취득하였습니다. Stanford University 방문연구원, 서울대학교병원 연구조교수를 역임하였습니다. 현재 디지털 헬스케어 스타트업 전문 투자사 디지털 헬스케어 파트너스(DHP)의 대표 파트너이며,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예방의학교실 외래조교수이기도 합니다. 『디지털 헬스케어: 의료의 미래』, 『의료 인공지능』, 『헬스케어 이노베이션』 등을 집필하였으며, Science의 제1저자를 비롯해서, 주요 국제 학술 저널에 다수의 논문을 개제하였습니다. npj Digital Medicine Editorial Board 멤버이자, 대한의료인공지능학회 설립 발기인 및 기획이사로 활동했습니다. 식약처 및 심평원의 자문위원이기도 합니다.


최윤섭의 디지털 헬스케어에서 더 알아보기

구독을 신청하면 최신 게시물을 이메일로 받아볼 수 있습니다.

Subscribe
Notify of
guest

0 Comments
Oldest
Newest Most Voted
Inline Feedbacks
View all comments
위로 스크롤
0
Would love your thoughts, please comment.x
()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