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 3대 강국, 의료 인공지능에서 시작하자

제가 이번달 머니투데이에 기고한 칼럼입니다. 분량 제한 때문에 줄여쓴 글의 원문입니다. 

이재명 정부는 ‘인공지능 3대 강국 도약’, ‘인공지능 100조원 투자’ 등의 야심찬 공약을 내세우고 있다. 특히, 인공지능 민간 영역에서 명망 높던 하정우 네이버클라우드 AI혁신센터장을 초대 AI미래기획수석으로 파격적으로 임명하고, 과기부 장관 후보자도 거대언어모델의 개발을 이끌었던 배경훈 LG AI연구원장을 지명하면서 관련 업계의 기대가 높아지고 있다.

인공지능 분야는 과거 냉전시대의 군비 경쟁에 비견되는 거대한 자금 전쟁으로 치닫고 있다. 최근 구글의 전 CEO인 에릭 슈미트는 이런 인공지능 전쟁에서 미국과 중국이 본격적으로 경쟁할 수 있는 위치에 있으며, 한국과 일본은 상대적으로 AI 경쟁에서 뒤쳐지고 있다고 공개적으로 언급하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 정부가 국가의 미래를 좌우할 인공지능 기술의 발전에 전략적으로 집중하기로 한 것은 크게 환영할만한 일이다.

다만, 인공지능은 상상할 수 있는 거의 모든 분야에 적용될 수 있기 때문에 선택과 집중이 중요하다. 무한대의 자원이 있지 않은 이상 우리가 잘 할 수 있는 분야에 전략적으로 집중하고, 관련 산업을 우선적으로 육성하는 것이 필요하다.

필자는 한국이 인공지능 3대 강국으로 도약하기 위한 전략적 거점을 ‘의료 인공지능’으로 할 것을 제안한다. 의료는 인공지능 기술의 여러 적용 분야 중에서 가장 중요한 분야로 꼽힌다. 그리고 한국이 여러 인공지능 분야 중에서 글로벌 최고 수준의 경쟁력을 이미 갖추고 있는 분야이기도 하다.

한국은 지난 몇년 간 의료 인공지능 분야에서는 전 세계에서 유래를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전방위적인 경쟁력을 갖춰왔다. 원천 기술 자체는 미국 등의 선진국에 비해 다소 차이가 있다고 할지라도, 이러한 기술을 사업화하고, 인허가 하고, 의료 현장에 적용하는 일은 전 세계에서 가장 빠르고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민간에서는 루닛, 뷰노와 같은 우수한 기술력을 바탕으로 글로벌 시장에서도 두각을 나타내는 기업들이 탄생했다. 그 배경에는 한국의 우수한 의료 인력과 풍부한 고품질의 의료 데이터가 있다. 또한 식약처는 의료기기 인허가 등의 규제를 빠르게, 심지어는 미국 FDA 보다 더 빠르게 개선하며 산업 발전의 토대를 마련했다. 더 나아가, 최근 일선 의료 현장에서는 인공지능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인공지능을 도입하는 병의원이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즉, 한국의 의료 인공지능 분야는 기술, 산업, 규제, 현장도입을 아우르는 전방위적 생태계가 형성되고 있다. 이러한 생태계과 선순환 구조는 전 세계에서 유래를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다. 여기에 국가의 전략적 지원이 더해진다면, 한국은 의료 인공지능이라는, 가장 중요한 인공지능 응용 분야에서 글로벌 주도권을 확보할 수 있다.

의료 인공지능은 다른 분야의 인공지능과 달리 차별화된 정책 지원이 필요하다. 일례로, 하정우 수석이 과거 제안한 것으로 알려진 ‘전국민 무료 AI 바우처’와 같은 방식으로는 의료 인공지능 기업에게는 혜택이 될 수 없다. 의료 인공지능은 대부분 의료기기에 해당되고, 의사의 판단 하에 병원에서 사용되기 때문이다.

의료 인공지능 산업을 진흥하기 위해서는 결국 기업이 돈을 벌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한국은 국민건강보험이라는 하나의 국영 건강보험만 운영되기 때문에 인공지능과 같은 새로운 기술의 도입에 극히 보수적이다. 최근 혁신의료기술평가, 신의료기술평가 유예제도 등이 마련되며, 숨통이 다소 트였지만, 비급여 상한, 환자 동의서 요청 방식 등 업계에서는 여전히 개선해야 할 부분이 많다고 지적한다.

만약 의료 인공지능 산업을 전략적으로 육성하고자 한다면, 전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의 파격적인 지원이 필요하다. 독일은 디지털 치료제가 인허가 받으면 무조건 수가를 지급하는 DiGA라는 파격적인 제도를 만든 덕분에, 전 세계 디지털 치료제 회사들이 앞다투어 진출하는 국가로 단숨에 발돋움했다. 이러한 지원은 특혜가 아니라, 국가의 정책적 우선순위에 따른 선택과 집중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소버린AI가 강조되는 지금, 의료 인공지능은 한국이 기술 주권을 넘어 글로벌 패권을 장악할 수 있는 기회이다. 의료 인공지능은 민감한 데이터를 다루는만큼 각국의 기술과 산업의 자립이 필수적이다. 한국은 의료 인공지능 분야에서 이미 글로벌 최고 수준의 기술, 산업, 규제, 현장 도입의 생태계를 갖추고 있다. 그러므로 여기에 정부의 과감한 정책 지원이 더해진다면, 우리는 의료 인공지능 영역을 단순히 외국 기술 의존을 줄이는 방어적 맥락이 아니라, 오히려 글로벌 AI 패권을 장악할 수 있는 공격적, 전략적 무기로도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글쓴이

최윤섭

디지털 기술과 생명과학, 의학의 융합을 통해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고 의료를 혁신하는 것을 화두로 삼고 있는 디지털 헬스케어 전문가, 미래의료학자, 작가, 벤처투자자입니다. 포항공과대학교(POSTECH)에서 컴퓨터공학과 생명과학을 복수전공하였으며, 전산생물학으로 이학박사 학위를 취득하였습니다. Stanford University 방문연구원, 서울대학교병원 연구조교수를 역임하였습니다. 현재 디지털 헬스케어 스타트업 전문 투자사 디지털 헬스케어 파트너스(DHP)의 대표 파트너이며,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예방의학교실 외래조교수이기도 합니다. 『디지털 헬스케어: 의료의 미래』, 『의료 인공지능』, 『헬스케어 이노베이션』 등을 집필하였으며, Science의 제1저자를 비롯해서, 주요 국제 학술 저널에 다수의 논문을 개제하였습니다. npj Digital Medicine Editorial Board 멤버이자, 대한의료인공지능학회 설립 발기인 및 기획이사로 활동했습니다. 식약처 및 심평원의 자문위원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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