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ursday 28th March 2024,
최윤섭의 디지털 헬스케어

AACR18: 구글의 기조 연설과 병리 인공지능 현미경

구글은 2018년 4월 미국암연구협회(AACR) 연례학술대회의 기조연설에서 병리과 인공지능과 병리과 전문의의 시너지가 있다는 연구 결과와, 병리 인공지능을 판독에 더욱 편리하게 활용하기 위한 증강현실 기반의 병리 인공지능 현미경을 공개했다. 이는 의료 인공지능이 의료 현장에 도입되기 위해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참고로 AACR은 암 연구에 관한 가장 권위 있는 학회로, 기존에 의학 연구자들의 전유물로 이뤄지던 곳에서 다름 아닌 구글이 기조연설을 했다는 것이 큰 화제가 되기도 했다.

 

AACR18 에서의 구글의 기조연설

구글에서 병리학 인공지능 관련 연구를 이끄는 마틴 스텀페(Martin Stumpe) 박사와 병리학 전문의인 제이슨 힙(Jason Hipp) 박사는 구글의 병리 인공지능을 병리과 의사들이 사용하였을 경우에 판독 정확성과 총 판독 시간에 대해서 시너지가 있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주: 이 발표 소식 및 자료는 테라젠이텍스의 김태형 이사님께서 보내주셨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 다시 한 번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이 연구에서는 총 6명의 미국 병리과 전문의가 유방암의 림프절 전이 여부를 총 70개의 병리조직을 판독하기 위해서, 인공지능을 사용했을 경우와 사용하지 않았을 경우의 정확도와 총 판독 시간을 비교해보았다. 70개 중에 정상 조직은 24개, 미세 전이(micrometastasis) 19개, 큰 전이(macrometastasis) 19개였다.

참고로 유방암에서는 종양의 크기가 2mm를 넘으면 큰 전이, 0.2mm에서 2mm 사이면 미세 전이로 분류한다. 큰 전이는 현미경의 저배율 렌즈에서도 쉽게 눈에 띄지만, 미세전이는 배율을 올려서 림프절 전체를 확인해야 하기 때문에 찾기도 어렵고 시간도 오래 걸린다. 따라서, 유방암의 림프절 전이 판독에 인공지능을 활용하게 된다면, 큰 전이보다는 미세 전이에 활용될 가능성이 높다고 할 수 있다. 이렇게 이 연구에서는 병리학 전문의가 인공지능을 실제로 활용할 수 있는 데이터를 보다 세부적으로 나눠서 판독 시간과 정확성에 대한 시너지 여부를 살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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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결과 정상 조직과 미세 전이 조직을 판독하는 경우 인공지능을 사용했을 때 판독 시간이 유의미하게 감소했다. 미세 전이 조직의 경우 판독에 120초 가까이 걸렸으나, 인공지능을 활용하면 60초 정도로 판독 시간을 절감할 수 있다. 또한 정상 조직의 경우는 평균 130초 후반에서 인공지능을 활용하면 110초가량으로 판독 시간이 줄어든다. 다만, 큰 전이의 경우에는 판독 시간에는 큰 변화가 없었다.

정확성(accuracy)도 인공지능을 활용하는 경우에 더 높았다. 전반적인 정확도는 인공지능을 쓰지 않았을 때 93.3%에서, 인공지능을 활용하면 95.7%로 상승하였다. 특히 미세 조직 전이의 경우에는 정확도가 약 83%에서 91% 정도로 상승하였다. (다만, 정상 조직과 큰 전이의 경우에는 인공지능의 사용 여부에 관계없이 모두 90% 후반대로 큰 변화는 없었다)

이처럼 구글의 병리 인공지능은 적어도 특정 종류의 유방암 전이 조직에 대해서는 판독 시간과 정확도에서의 병리학자와의 시너지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필자가 항상 강조하는 바이지만, 의료 인공지능이 실제로 병원 내로 도입되고, 진료 현장에서 널리 사용되기 위해서는 단순히 인공지능 단독의 높은 정확성을 증명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다른 포스팅에서 설명한 뷰노의 골연령 측정 인공지능이나, 앤드루 백 박사의 병리 인공지능, 그리고 이번에 소개한 구글의 병리 인공지능과 같이 의사가 인공지능을 활용하였을 경우에 기대할 수 있는 정확도나 총 판독 시간에서의 효용을 직접적으로 증명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러한 효용이 증명된 인공지능이라면 이를 활용하는 의사나, 인공지능의 도입을 결정하는 병원의 입장에서도 그 필요성이나 지불 가치에 동의하기 수월해진다.

 

증강현실을 활용한 인공지능 병리 현미경

인공지능이 의료 현장에 도입되기 위해서는 또 하나의 중요한 이슈가 있다. 바로 인공지능의 도입이 의료진의 기존 워크플로우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어야 한다는 점이다. 만약 인공지능을 사용하기 위해서 기존에 진행해오던 진료나 판독 과정에 큰 변화나 추가적인 단계가 필요하다면, 병원에 도입되지 않거나, 도입되더라도 활발하게 사용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지금도 의료진은 지나치게 바쁘고 여유가 없으며, 진료 현장은 항상 시간과 인력 부족에 허덕인다.

이러한 측면에서 구글의 AACR18 기조연설에서는 또 하나의 흥미로운 주제가 소개되었다. 바로 증강현실(Augmented Reality) 기술을 활용한 인공지능 병리 현미경(Augmented Reality Microscope)이다.[1, 2] 아이언맨과 같은 영화를 보면 적이나 적의 무기에 대한 다양한 정보를 주인공의 시야에 실시간으로 겹쳐서 띄워주는 화면이 있다. 이러한 증강현실 기술을 흥미롭게도, 병리 조직을 판독하는 현미경에 그대로 적용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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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글은 증강현실을 활용한 인공지능 병리 현미경을 AACR18에서 발표했다

즉, 이 기술은 병리과 전문의가 병리 조직을 기존의 광학 현미경으로 들여다볼 때, 그 시야에 들어오는 병리 조직을 빠르게 딥러닝으로 분석하여 거의 실시간으로 암일 가능성이 높은 부분의 정보를 윤곽선, 힛맵(heat map), 화살표, 텍스트 등으로 겹쳐서 보여준다. 특히 초당 10개의 프레임으로 결과를 업데이트하기 때문에 판독자가 슬라이드의 위치를 이동시키거나, 렌즈의 배율을 바꿀 때도 거의 실시간으로 결과를 보여준다. 논문에서는 유방암과 전립선암 두 암종에 대한 결과를 보여주었는데, 각 인공지능의 AUC는 0.98, 0.96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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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강현실 현미경은 판독자의 시야에 암일 가능성이 높은 부분을 실시간으로 보여준다

이러한 증강현실 기반의 인공지능 병리 현미경이 가지는 의미는 바로 병리과 의사의 기존 판독 프로세스에 활용성이 높다는 것이다. 병리학에 활용될 수 있는 디지털 스캐너 등의 기술이 발전하고 새로운 기기도 많이 나왔지만, 여전히 지금도 많은 병리과 의사들은 광학 현미경을 판독에 활용하고 있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디지털 스캐너를 도입하기 위해서 들어가는 적지 않은 비용이나, 스캔한 데이터를 관리하기 위한 IT 인프라의 병원 내 구축이 어렵기 때문이다. 또한 광학 현미경을 통해 바로 확인하는 것에 비해, 디지털 스캐너를 활용하려면 슬라이드를 스캔하는 등 판독하는 과정에서 추가적인 업무가 더 생기므로 사용자 입장에서는 번거롭다.

반면 구글이 발표한 증강 현실 현미경을 활용하기 위해서 병리학 전문의가 기존의 워크플로우에서 ‘추가적’으로 해야 할 일은 없다는 장점이 있다. 원래 하던대로 현미경을 들여다보면, 추가적인 정보들이 (그것도 매우 높은 정확도로) 시야에 표시되므로 편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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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연구에서는 암으로 의심되는 부분에 대한 정보를 주는 것을 시연하였으나, 향후 더욱 다양한 정보를 광학 현미경에 증강현실로 띄워줄 수 있다고 이야기 한다. 예를 들어, 암의 크기는 얼마인지, 유사 분열은 어디이며 총 몇 개나 있는지, 프로게스테론 수용체(Progesterone Receptor)나 P53, CD8과 같은 생체표지자 (biomarker)의 정량적 분석까지 다양하다.

다른 포스팅에서도 소개한 바 있지만, 유사 분열이나 생체표지자 등을 분석하는 딥러닝은 이미 많은 부분 구현되어 있다. 이러한 기능이 증강 현실 현미경에 구현된다면, 단순히 판독 프로세스에 자연스럽게 녹아드는 것에서 더 나아가 병리학 전문의가 할 일을 줄여주거나, 실수를 방지할 수 있게 해주므로 현장에서의 채택과 활용도가 높을 것으로 생각한다. 또한 수술 중에 조직을 판독해야 하거나, 형광을 이용한 표본을 판독하는 등의 신속한 판독이 필요한 경우에도 이러한 현미경의 역할이 클 것이라고 연구에서는 언급하고 있다.

About The Author

디지털 헬스케어를 통해 의료를 혁신하고 세상을 더 건강하게 만들고자 하는 벤처투자자, 미래의료학자, 에반젤리스트입니다. 포항공대에서 컴퓨터공학과 생명과학을 복수 전공하였고, 동대학원에서 전산생물학으로 이학박사를 취득했습니다. 스탠퍼드 대학, 서울대학교병원 등에서 연구하였습니다. 현재 디지털 헬스케어 스타트업 전문 투자사, 디지털 헬스케어 파트너스 (DHP)를 2016년에 공동창업하였고, 대표를 맡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40여 개의 디지털 헬스케어 스타트업에 투자하였습니다. 네이처의 디지털 헬스케어 분야 자매지 『npj 디지털 메디슨』의 편집위원이자, 식약처, 심평원의 전문가 협의체 자문위원입니다. 『디지털 헬스케어: 의료의 미래』 『의료 인공지능』 『헬스케어 이노베이션』 등을 집필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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