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국회, AI 기본의료 예산 더 늘려야

제가 이번달 머니투데이에 기고한 칼럼입니다. 원문은 여기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최근 정부가 발표한 ‘AI 기본의료 전략’은 무척 전향적이다. 의료AI를 산업으로 키우는 데 그치지 않고, 모든 국민이 누려야 할 의료 인프라로 만들겠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지난 칼럼에서 필자는 이 전략이 한국 의료와 의료AI 산업의 게임 체인저가 될 수 있으며, 남은 숙제는 예산이라고 썼다. 이제 그 예산안이 나왔다.

의료AI는 보건산업만을 위한 정책이 아니다. 의사가 부족한 지역병원에서 응급환자를 선별하고, 영상판독을 돕고, 환자를 적절한 병원으로 의뢰·회송하는 데 쓸 수 있다. AI가 의사 부족 자체를 해결하지는 못하지만, 부족한 의료진의 역량을 넓히고 지역 의료의 효율을 높이는 데는 기여할 수 있다. 지역·필수·공공의료의 공백을 메울 현실적인 수단인 셈이다.

2027년도 보건복지부 예산안, 즉 정부안에는 취약지 일차의료 AX 패키지, 응급 AI 플랫폼, 개인건강기록 기반 AI, 의료영상 공유, 국가 보건의료데이터 허브 등이 담겼다. 방향은 옳다. 그런데 규모를 보면 고개를 갸웃하게 된다. 개인건강기록 기반 AI와 의료영상 공유에 387억원, 데이터 허브와 소버린 AI에 349억원이 편성됐다. 같은 예산안에서 지역·필수의료를 살리겠다며 새로 만든 특별회계는 1조2600억원이다. 두 항목을 다 합쳐도 특별회계의 6%에 불과하다. 여러 사업이 묶인 금액이니, 정작 의료AI를 현장에 들여오는 데 쓰일 돈은 그보다 더 적을 것이다.

의료AI는 연구개발만 지원한다고 산업이 만들어지지 않는다. 병원이 구매해서 사용해야 하고, 그 과정에서 데이터를 축적하고, 효과를 검증해야 한다. 특히 구매 여력이 없는 지방 의료원과 지역 병·의원에는 도입비뿐 아니라 시스템 연계와 유지·관리 비용까지 함께 지원해야 한다. 이것이 빠지면 구축은 하되 확산에서 멈추는 시범사업의 흔한 실패가 또 반복된다. 해외 사례를 살펴보자. 독일은 병원미래법으로 43억유로, 약 7조원의 병원 디지털 전환기금을 만들어 2000여개 병원을 지원했다. 이에 비추면 필요한 것은 수백억원짜리 단년 사업이 아니라 조 단위의 다년 투자다.

한국은 이미 경쟁력 있는 의료AI 기업과 병원, 의료데이터, 규제체계를 갖추고 있다. 하지만 기술의 경쟁력에는 유효기간이 있다. 지금 현장에 도입해 근거를 만들지 못하면 해외시장을 선점할 기회도 놓칠 수 있다.

정부는 전략을 세우고 정부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이제는 국회의 역할이 중요하다. 정부안이 출발점이라면 이를 검토하고 최종예산으로 만드는 것은 국회의 몫이기 때문이다. 국회는 예산심의 과정에서 AI 기본의료가 선언에 그치지 않도록 현장도입과 구매, 실증에 필요한 예산을 적극적으로 보강해야 한다. 여야를 떠나 지역·필수·공공의료를 살리고 미래 산업을 키우기 위해 힘을 모아야 한다.

본예산 증액과 별개로, 더 큰 그림도 가능하다. 정부는 이번 예산안에서 162조원 규모의 미래대응기금을 신설하고 첫해에만 청년·성장동력·지방·교육에 45조원을 쓰기로 했다. 의료AI는 성장동력이고, 그것이 가장 필요한 곳은 지방 의료다. 기금으로 GPU 1만장과 지방 국립대 무상등록금을 지원하면서 지방 의료를 살릴 AI 인프라를 빠뜨릴 이유가 없다. 이 기금에서 첫해 지출의 2%인 1조원만 의료AI에 배정한다면, 전국은 어렵더라도 한 권역에서는 응급 이송부터 일차의료, 의뢰·회송, 공공병원까지 AI로 연결된 지역 의료체계를 실제로 구현할 수 있다. 국민에게 AI 기본의료의 미래를 실물로 보여주고, 그 성과를 근거로 전국에 확산하는 초석이 될 것이다.

이제는 국회의 시간이다. 상임위 예비심사와 예결특위 심의에서 의료AI의 현장 도입·운영·실증 예산을 증액하고, 미래대응기금에는 의료AI를 다년 투자 항목으로 반영해주기를 촉구한다. 지금이 한국 의료AI가 산업과 의료를 함께 바꿀 골든타임이다. 방향은 정부가 이미 제시했으니, 그에 걸맞은 예산을 책정하는 것은 이제 국회의 몫이다.

글쓴이

최윤섭

디지털 기술과 생명과학, 의학의 융합을 통해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고 의료를 혁신하는 것을 화두로 삼고 있는 디지털 헬스케어 전문가, 미래의료학자, 작가, 벤처투자자입니다. 포항공과대학교(POSTECH)에서 컴퓨터공학과 생명과학을 복수전공하였으며, 전산생물학으로 이학박사 학위를 취득하였습니다. Stanford University 방문연구원, 서울대학교병원 연구조교수를 역임하였습니다. 현재 디지털 헬스케어 스타트업 전문 투자사 디지털 헬스케어 파트너스(DHP)의 대표 파트너이며,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예방의학교실 외래조교수이기도 합니다. 『디지털 헬스케어: 의료의 미래』, 『의료 인공지능』, 『헬스케어 이노베이션』 등을 집필하였으며, Science의 제1저자를 비롯해서, 주요 국제 학술 저널에 다수의 논문을 개제하였습니다. npj Digital Medicine Editorial Board 멤버이자, 대한의료인공지능학회 설립 발기인 및 기획이사로 활동했습니다. 식약처 및 심평원의 자문위원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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