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자 컴퓨팅으로 신약 후보 물질 발굴에 성공

최근 Nature Biotechnology에는 양자 컴퓨팅을 활용해서 신약 후보 물질을 발굴하는 데 성공했다는 논문이 실렸습니다. 특히, 이 연구에서는 소위 ‘undruggable’, 즉 약을 만들기 불가능하다고 알려져 있는 극히 어려운 암 관련 타겟인 KRAS를 저해하는 후보 물질 2개를 발굴했습니다. 제가 양자 컴퓨팅 관련 지식이 별로 없어서, 기술적으로는 깊이 이해하지는 못했고, 결과 위주로 읽은 논문입니다.

최근에 양자 컴퓨팅 기술이 많은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양자 컴퓨터는 양자 역학에서 양자 얽힘, 중첩 등의 효과를 이용해 계산하는 컴퓨터를 말합니다. 전통적인 컴퓨터가 2진법을 활용하여 0과 1을 구분할 수 있는 반면(이를 bit라고 합니다), 양자 컴퓨터는 0과 1을 동시에 공존시킬 수 있습니다. 이를 큐비트(qubit = quantum bit)이라고 합니다. 양자 컴퓨터를 활용하면 현존하는 최고의 슈퍼 컴퓨터가 수년이 걸리는 계산을 단 몇 초 안에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도 전망하고 있습니다.

이런 양자 컴퓨팅 기술을 활용하면 기존에 해결하지 못했던 다양한 분야의 난제들을 해결할 수도 있을 것으로 예측되고 있는데요. 그 중 대표적인 활용 분야 중 하나가 헬스케어, 특히 그 중에서도 신약 개발입니다. 특정 질병 표적을 저해하는 물질을 디자인하는 것은 컴퓨팅 파워가 많이 필요합니다. 탐색해야 하는 화합물의 범위가 너무 크고 (인간이 설계할 수 있는 약물 후보 물질의 수는 너무도 다양합니다), 표적과 후보물질의 결합(docking)을 계산하는데도 막대한 연산이 필요합니다. 현재의 고전적인 컴퓨터 기반의 연산 속도로는 이런 문제를 완벽하게 풀기에는 많은 한계가 존재합니다. 만약 이런 문제를 양자 컴퓨터로 풀 수 있다면 기존의 방법보다 더 뛰어난 성과를 보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연구의 디자인

이 연구에서는 양자 컴퓨팅을 활용해서 확률 분포를 학습하고 새로운 화합물을 생성하는 모델인 QCBMs(Quantum Circuit Born Machines)와 고전적인 딥러닝 모델인 LSTM(Long Short-Term Memory)의 하이브리드 모델을 활용해서 KRAS에 결합할 수 있는 화합물을 발굴했습니다. 기본적으로 KRAS에 결합할 가능성이 있는 화합물을 여러 방식으로 (기존의 문헌에서 데이터 마이닝, 버츄얼 스크리닝 방식 등) 엄청나게 많이 생성한 다음에, 이를 학습해서 QCBMs+LSTM 하이브리드 모델로 새로운 화합물을 생성해내었습니다.

 

세포 수준의 실험에서 효능 입증

그렇게 만들어진 여러 화합물 중에서 세포 수준에서 KRAS inhibition을 통한 치료제의 가능성을 보인 것은 두 가지였습니다. 첫번째 ISM061-018-2는 Kd=1.4uM 으로 KRAS-G12D를 포함한 다양한 변이를 가진 KRAS를 저해하는 것이 관찰되어, pan-KRAS inhibitor의 가능성을 보였습니다. (사실 micromolar range의 결합력은 신약 후보 물질로서 아주 높다고 보기는 어렵긴 합니다.) 비특이적인 결합(non-specific binding)도 보이지 않았고, 높은 농도에서도 세포 독성은 없었습니다.

두번째 화합물인 ISM061-022는 일부 KRAS 변이에 선택적으로 결합하는 결과를 보였습니다. 특히, KRAS-G12R 및 KRAS-Q61H 변이에 대해 높은 저해도를 보였습니다. 또한 KRAS-G12D 및 일부 다른 돌연변이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낮은 효과를 보였기 때문에, KRAS의 변이 유형에 따른 선택적인 저해제로서의 가능성을 보입니다. 다만, 첫번째 화합물과는 달리 이 두번째 화합물은 결합력에 대해서 논문에서 언급되지 않는 것으로 보아, 결합력이 그리 높지 않을 것으로 추정해볼 수 있습니다. 또한 artificial bait 즉, 대조군에도 약간의 결합력을 보여서 비특이적인 결합의 가능성도 어느 정도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연구의 의의

KRAS는 너무도 잘 알려진 ‘어려운’ 항암 타겟인데요. 수십년 동안의 연구에도 불구하고 이를 공격하는 신약 개발에는 실패해서 소위 ‘undruggable‘ 이라는 명칭이 붙었을 정도입니다. 이제는 몇개의 KRAS를 표적으로 하는 항암 신약이 개발되기는 했습니다만, 여튼 신약 개발이 어려운 표적 물질의 상징과도 같은 존재입니다. 이 논문은 이런 어려운 표적에 대해서 양자 컴퓨팅 기술을 활용해서 신약 후보 물질을 발굴했다는 것에 큰 의의를 지닙니다.

사실 이 논문에서는 QCBMs이 고전적인 LSTM보다 더 나은 분자 탐색 능력을 보여주기는 했지만, 이 문제에 대해서 완전한 양자우위 (Quantum Advantage), 즉 고전적인 모델보다 양자 컴퓨터가 현저히 더 빠르다는 것은 증명하지는 못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자 컴퓨팅과 딥러닝을 결합한 접근법이 전통적인 신약 개발 프로세스보다 더 빠르고 효율적인 대안이 될 가능성이 있음을 보여주었다는 것에 의의가 있는 연구입니다. 이를 보면, 향후 더 발전된 양자 하드웨어가 개발되는 등 관련 기술의 발전이 더해지면, 신약 개발에 양자 컴퓨팅이 큰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도 짐작해볼 수 있습니다.

글쓴이

최윤섭

디지털 기술과 생명과학, 의학의 융합을 통해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고 의료를 혁신하는 것을 화두로 삼고 있는 디지털 헬스케어 전문가, 미래의료학자, 작가, 벤처투자자입니다. 포항공과대학교(POSTECH)에서 컴퓨터공학과 생명과학을 복수전공하였으며, 전산생물학으로 이학박사 학위를 취득하였습니다. Stanford University 방문연구원, 서울대학교병원 연구조교수를 역임하였습니다. 현재 디지털 헬스케어 스타트업 전문 투자사 디지털 헬스케어 파트너스(DHP)의 대표 파트너이며,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예방의학교실 외래조교수이기도 합니다. 『디지털 헬스케어: 의료의 미래』, 『의료 인공지능』, 『헬스케어 이노베이션』 등을 집필하였으며, Science의 제1저자를 비롯해서, 주요 국제 학술 저널에 다수의 논문을 개제하였습니다. npj Digital Medicine Editorial Board 멤버이자, 대한의료인공지능학회 설립 발기인 및 기획이사로 활동했습니다. 식약처 및 심평원의 자문위원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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