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iday 27th November 2020,
최윤섭의 헬스케어 이노베이션

[칼럼] 의료 AI가 ‘정확하다’는 것과 ‘치료 효과가 개선된다’는 것은 다르다.

제가 최근에 한국경제신문에 기고한 칼럼입니다. 글자수 제한 때문에 축약해서 기고했던 글의 원문을 올려드립니다. 제 칼럼은 여기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의사를 능가하는 인공지능이 개발되었다”

최근 언론 기사에서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는 제목이다. 정말 의사보다 실력이 좋은 인공지능이 개발된 것이라면, 왜 당장 병원에서 인공지능 의사를 고용해서 환자를 진료하지 않을까.

2019년까지 미국 FDA에서 의료기기로 인허가 받은 인공지능은 30개가 넘었고, 국내에서도 식약처가 15개 이상의 인공지능을 인허가했다. 최근 국내에서는 상장한 기업도 나왔다. 하지만 아직 일반 대중이나 환자의 입장에서는 이 변화가 피부에 와닿지는 않을 것이다. 과연 실력있는 의료 인공지능이란 과연 무엇인지, 그 정확성과 효용을 어떻게 판단해야 할지 이야기해보려 한다.

인공지능을 개발하고, 실력을 검증하기 위해서는 결국 데이터가 필요하다. 예를 들어, A라는 병원에서 엑스레이 사진에서 병변을 찾는 인공지능을 개발한다고 해보자. 이에 관해 병원 내에서 모은 1만 장의 엑스레이 사진이 있다고 한다면, 무작위로 고른 80% 정도의 데이터는 인공지능을 학습시키기 위해서 사용한다. 나머지 데이터는 그렇게 만들어진 인공지능의 정확성을 검증하기 위해서 사용한다.

이렇게 정확성을 평가하는 것을 내부 검증 (internal validation) 이라고 부른다. 80:20으로 학습용 데이터, 검증용 데이터를 구분했지만, 동일한 병원 내에서 나온 데이터를 구분한 것이기 때문이다. 언론에서 나온 대부분의 ‘인공지능이 의사를 능가했다’는 기사들은 이러한 내부 검증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사실 내부 검증에서 인공지능이 좋은 정확성을 보인 논문은 이제 무수히 많다.

하지만 내부 검증만으로는 인공지능의 정확성을 평가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현실 세계를 충분히 반영했다고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더 엄정한 검증을 위해서는 다른 환경에서 얻어진 데이터 (예를 들어, B 병원에서 얻은 데이터, 혹은 다른 엑스레이 기기로 촬영한 데이터)를 대상으로 외부 검증(external validation)을 하거나, 무작위 대조군 임상 시험을 하는 등의 과학적 방법을 활용해야 한다. 하지만 이런 엄정한 검증까지 거친 의료 인공지능이 전 세계적으로도 아직 많은 것은 아니다.

더 나아가, 인공지능이 ‘정확하다’와 ‘환자를 더 잘 치료할 수 있다’는 다르다는 것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인공지능이 정확성이 높아서 판독에 도움을 줬다고 해서, 기존에 비해 환자의 치료 결과를 반드시 개선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판독이 확진이 아닐 수 있고, 잘 진단하더라도 약이 없을 수도 있고, 혹은 기존에 인공지능의 도움 없이도 환자를 치료하는데는 별다른 문제가 없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정확하다’와 ‘환자를 더 잘 치료할 수 있다’는 것은 의학적으로 중요할뿐만 아니라, 이제 산업적으로도 중요하다. 바로 의료 인공지능이 국민건강보험의 적용을 받을 수 있을지를 판단하는 기준이기 때문이다. 국내 의료기기 제조사의 입장에서는 건보의 적용을 받는 것이 사업적으로 매우 중요하다.

최근 복지부가 발표한 영상의학 분야 인공지능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단순히 ‘정확하다’는 것만 입증한 인공지능은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면) 국민건강보험의 적용 대상이 되지 않는다. 더 나아가, 인공지능을 활용하면 ‘치료 효과가 개선된다’는 것을 입증한 경우여야만, 비로소 건보 적용 대상으로 고려될 수도 있다. 여기에 한 단계 더 나아가는 것도 있다. 비용 대비 치료 효과의 개선을 보이는 것이다.

이 가이드라인은 전 세계에서도 드물게 의료 인공지능에 대한 수가 책정 기준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하지만 산업계의 기대에 비해서는 다소 보수적으로 도출된 측면이 있다.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기존에 인허가 받은 영상의학분야의 인공지능 기술은 대부분 당분간은 수가를 받기는 어려워보인다. 기업들은 이제 추가적인 임상 연구를 통해 치료 효과의 개선을 증명하여 수가를 받거나, 혹은 보험 적용을 받지 않아도 되는 별도의 사업 모델을 강구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더 나아가, 보험의 적용을 받는 경우라고 할지라도, 향후 어느 수준의 수가가 인공지능에 책정될지도 추후 지켜봐야 할 부분이다.

눈부신 발전을 거듭하고 있는 의료 인공지능은 이제 진료 현장에 본격적인 도입을 논의하기에 이르렀다. 규제 및 수가와 관련된 가이드라인이 제정된다는 것은 그만큼 기술이 현장에 가까워졌다는 뜻이다. 이번 수가 가이드라인은 산업계에의 입장에서 아쉬울 수도 있겠으나, 한 편으로는 규제의 불확실성이 줄어들었다는 점에서 사업 방향 결정에 긍정적인 측면도 있을 것이다. 인공지능 기술의 개발에 대한 합리적인 평가와 보상을 통해, 기술의 개발 주체 및 적용 대상 모두에게 긍정적인 결과가 있기를 바란다.

About The Author

IT와 헬스케어의 컨버젼스를 통해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는 것을 화두로 삼고 있는 융합생명과학자, 미래의료학자, 기업가, 작가, 엔젤투자가, 에반젤리스트입니다. 포항공대에서 컴퓨터공학과 생명과학을 복수 전공하였고, 동대학원에서 전산생물학으로 이학박사를 취득했습니다. 현재 최윤섭 디지털 헬스케어 연구소의 소장이며, 헬스케어 전문 스타트업 엑셀러레이터 디지털 헬스케어 파트너스 (DHP)의 대표 파트너를 맡고 있습니다. 성균관대학교 삼성융합의과학원 디지털헬스학과 겸임교수이자, VUNO, 3billion, 서지컬마인드 등의 스타트업의 자문을 맡고 있습니다. 네이처의 디지털 헬스케어 분야 자매지 『npj 디지털 메디슨』의 편집위원이자, 식약처, 심평원의 전문가 협의체 자문위원입니다. 『디지털 헬스케어: 의료의 미래』 『의료 인공지능』 『헬스케어 이노베이션』 『그렇게 나는 스스로 기업이 되었다』 등을 집필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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