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day 09th May 2022,
최윤섭의 헬스케어 이노베이션

[칼럼] 디지털 헬스케어 수가를 새 정부에 바란다

제가 최근 전자신문에 기고한 칼럼입니다. 분량 제한 없이 썼던 원문을 올려드립니다. 

 

디지털 헬스케어 분야에서 새 정부에 바라는 것은 단 한 가지밖에 없다. 바로 수가이다. 디지털 헬스케어에 특화된, 특히 소프트웨어 의료기기에 특화된 새로운 수가 기준이 필요하다. 이것 없이는 4차산업혁명의 핵심 분야인 디지털 헬스케어에 대한 진흥책은 모두 미봉책일 뿐이다. 지난 수년 동안 업계에서는 이를 수없이 요구해왔지만, 실질적인 진전은 없었다. 새 정부가 보험 수가라는 업계의 오랜 숙원 하나만 해결하더라도, 디지털 헬스케어 분야에서는 전례 없이 성공적인 정부로 역사에 남을 것이다.

디지털 헬스케어 분야에는 ‘기승전수가’라는 관용구가 있다. 한국과 같은 단일 의료 보험의 국가에서는 새로운 의료기술을 개발하여 사업화하는 경우, 별도 급여가 책정되지 않으면 시장 진입 방법이 극히 제한된다. 더욱이 국영 보험은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기 때문에 새로운 기술의 도입에 보수적일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기술 혁신의 성과가 국민에게 적시에 전달되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더욱이 디지털 헬스케어 기술 혁신이 폭발적으로 일어나면서 이런 괴리는 더 커지고 있다.

디지털 헬스케어 혁신 따른 가장 큰 변화는 의료기기 범주의 확장이다. 과거 의료기기는 체온계, 혈압계 등 주로 하드웨어였다. 하지만 이제 의료기기는 소프트웨어로 확장되고 있다. 흉부 엑스선 영상을 판독해서 결절을 찾아주거나, 병리 영상을 분석하여 암 진단을 도와주는 인공지능이 대표적이다. 더 나아가, 최근 앱이나, 게임, VR 등의 소프트웨어로 환자를 치료하는 디지털 치료제도 국내외의 큰 주목을 받고 있다. 식약처는 지금까지 수십 개의 인공지능 기반 의료기기를 인허가했으며, 연내 한국에서도 디지털 치료제 첫 허가가 이뤄질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이런 혁신 기술이 식약처의 허가를 받더라도 시장 진입은 요원하다. 바로 수가 때문이다. 한국에는 세계적인 기술력을 가진 의료 인공지능 회사들이 있지만, 이들의 사업 실적은 기대에 못 미치고 있다. 그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겠으나, 핵심 이유 중의 하나가 역시 보수적이며 기술 특성을 반영하지 못한 수가 기준이라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인허가받은 수십 개의 인공지능 중에 수가를 받는 것은 아직 단 하나도 없는 실정이다.

업계에서는 이러한 소프트웨어 의료기기의 특성을 반영한 새로운 수가의 필요성을 지난 몇 년 동안 주장하고 있다. 기존 한국의 수가 기준은 하드웨어 의료기기를 가정하고 있기 때문에, 인공지능과 디지털 치료제 등 소프트웨어 의료기기의 특성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소프트웨어 의료기기는 상대적으로 안전하고, 개발 기간과 비용이 적으며, 업데이트가 더 잦다는 차이가 있다.

더 나아가, 소프트웨어 의료기기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사용하면 데이터가 나온다는 것이다. 이 데이터를 활용해서 성능을 더 높일 수도 있고, 가치 평가를 더 정확하게 할 수도 있다. 데이터에 기반하여 보험금을 지불할 것인지, 얼마나 지불할 것인지, 혹은 시장에서 퇴출할 것인지도 결정할 수 있다. 이는 기존과는 완전히 다른, 소프트웨어 의료기기에 특화된 수가 기준이 필요함을 의미한다.

세계 각국에서는 디지털 헬스케어 기술 혁신을 받아들이기 위해서 파격적으로 지불 구조를 개선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혁신의료기기에 대해서 인허가만 받으면 4년 동안 메디케어 수가를 무조건 주는 방안을 고려했으며, 독일에서는 이미 2020년부터 디지털 헬스케어 앱이 허가받은 즉시 12개월 동안 수가를 자동으로 부여한다. 그 결과 30개가 넘는 소프트웨어 의료기기가 이미 수가를 받고 있다. 그에 비하면 여전히 한국의 수가 제도는 이런 변화를 전혀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지난 정부에서도 의료 산업 발전을 위한 다양한 지원책, 규제 개선책이 나왔지만, 모두 변죽만 울렸을 뿐, 핵심인 지불 구조의 개선은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 한국과 같은 단일 보험 체계에서는 의료 산업의 진흥을 위해 지불 구조의 혁신 외의 답은 없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수가를 개선하지 않으면 모든 것이 미봉책이다. 비록 수가가 모든 문제의 해결책이라 할 수는 없으나, 가장 먼저 해결되어야 할 필요조건임은 틀림없다.

디지털 헬스케어 산업에 특혜를 달라는 것이 아니다. 정말로 한국이 4차 산업혁명을 선도하기를 원하고, 그 핵심인 디지털 헬스케어 혁신을 원한다면 이 분야에 대한 정책적 우선순위를 높이고, 가려운 곳을 긁어 달라는 것이다. 지난 대선에서도, 이번 대선에서도 4차 산업혁명은 후보들의 핵심 공약이었다. 하지만 정작 글로벌에서 인정받는 디지털 헬스케어 기술들은 여전히 현장에서 고사하고 있거나, 외국에서 각자도생하여 살길을 찾고 있다. 부디 새로운 정부에서는 이런 업계의 오랜 염원이 이뤄지기를 기대한다.

About The Author

IT와 헬스케어의 컨버젼스를 통해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는 것을 화두로 삼고 있는 융합생명과학자, 미래의료학자, 기업가, 작가, 엔젤투자가, 에반젤리스트입니다. 포항공대에서 컴퓨터공학과 생명과학을 복수 전공하였고, 동대학원에서 전산생물학으로 이학박사를 취득했습니다. 현재 최윤섭 디지털 헬스케어 연구소의 소장이며, 헬스케어 전문 스타트업 엑셀러레이터 디지털 헬스케어 파트너스 (DHP)의 대표 파트너를 맡고 있습니다. 성균관대학교 삼성융합의과학원 디지털헬스학과 겸임교수이자, VUNO, 3billion, 서지컬마인드 등의 스타트업의 자문을 맡고 있습니다. 네이처의 디지털 헬스케어 분야 자매지 『npj 디지털 메디슨』의 편집위원이자, 식약처, 심평원의 전문가 협의체 자문위원입니다. 『디지털 헬스케어: 의료의 미래』 『의료 인공지능』 『헬스케어 이노베이션』 『그렇게 나는 스스로 기업이 되었다』 등을 집필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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