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esday 06th April 2021,
최윤섭의 헬스케어 이노베이션

한국의 원격의료에 대한 생각과, 그 생각에 대한 생각

요즘처럼 한국에서 원격진료에 대한 논의가 활발한 적이 있었던가. 필자가 디지털 헬스케어 분야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시기가 2014년으로, 적어도 그 이후에는 필자의 기억으로 (비록 관련 의료법 개정에 대한 입법예고 등이 있기는 했지만) 지금처럼 이 논의가 활발하고 구체적으로 이뤄졌던 때는 없었던 것 같다.

언제까지고 논의에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할 것 같았던 이 이슈가 다시 불거지게 된 것은 역시나 전대미문의 코로나19 판데믹 때문이다. 여러 포스팅과 영상을 통해서 알려드렸듯이 원격진료는 환자와 의사가 직접 대면하지 않고 진료를 할 수 있다는 장점 덕분에 미국 등 여러 국가에서 재평가 받고 있다. 관련한 규제, 보험 적용 등에 대한 수혜도 (어떤 경우는 한시적으로) 이어지고 있으며, 진료 횟수 등도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중이다.

한국에서도 지난 2월 말 전화진료를 코로나 상황에서 한시적으로 허용함으로써, 지금까지 이를 통해 26만 건 이상의 처방이 이뤄졌으며 코로나 시국이 계속되는 한 이 숫자는 더 늘어날 것이다. 정부는 ‘비대면 서비스의 활성화’를 전면적으로 내세우고 있으며, 여기에는 소위 ‘비대면 진료’로 통칭되는 원격진료도 포함되어 있다. 비록 최근 발표된 ‘한국형 뉴딜 정책’에서 원격의료가 제외되기는 했으나, 청와대 등 정부 측에서는 원격의료를 계속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모양새다.

어차피 원격진료가 허용되기 위해서는 단순한 정책의 발표가 아니라 의료법이 개정되어야 한다. 이 문제가 21대 국회에서도 지금처럼 활발히 논의될지는 지켜봐야 하겠으나, 어쨌든 공은 입법기관인 국회로 넘어가게 되었다. 더구나 여당은 이번 총선에서 180석을 차지하는 압승을 거둠으로써, 만약 정부와 여당에서 원격진료를 위한 의료법 개정을 추진한다면 현실적으로 법을 개정할 수도 있는 여건이 갖춰졌다. 이러한 대외, 대내적인 변화로 인해, 원격진료의 허용에 대한 논의는 어느 때보다 뜨거워지고 있다.

 

논의가 시작되기 위해서는

필자는 최근에 여러 언론, 기업, 협회 등으로부터 ‘포스트 코로나’의 헬스케어에 대한 인터뷰, 강의, 자문 요청을 받고 있다. 그리고 그 중 대부분이 사실은 원격진료에 대한 것이다. 최근 며칠 동안 원격진료에 대한 인터뷰, 코멘트, 출연, 기고 등의 요청을 받은 것만 추려봐도, MBC, KBS, 중앙일보, 국민일보, 경향신문, 전자신문, 서울경제, 청년의사, 폴인, 아웃스탠딩 등이 있다. 모두 응해드리지는 못했고, 아직 기사가 안 나온 곳도 있지만 몇 가지는 아래에서 보실 수 있다.

이러한 인터뷰 요청에 응해드리기가 항상 망설여지는 이유는 지면과 시간의 제약 때문에, 원격진료와 관련된 이슈의 복잡성에 대해서 충분히 강조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또 한 편으로는 데스크의 의도에 따라 기사가 왜곡되기도 하고, 진행자의 역량에 따라 중요한 이야기를 하나도 못하고 시간만 낭비하는 경우도 있다.)

이 이슈의 복잡성에 대해서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한국에서 원격의료는 너무도 복잡하고, 많은 이해관계자가 얽혀 있으며, 이해관계자들 사이의 견해차도 첨예하다. (이러한 상황은 한국 이외의 다른 많은 국가에서 원격의료의 합법화가 별다른 이슈가 안 되는 것과는 크게 대조적이다. 한국의 상황이 워낙 특수하므로, 이 상황 자체에 대한 연구도 있다고 들었다.) 더구나 실제로는 직접적으로 관계없는 이슈들까지 얽히고설켜서 진흙탕 논쟁으로 이어져서, 결국은 또 문제만 불거지고 아무런 진전은 없는 결과가 나오기도 한다.

더구나 원격진료 (혹은 원격의료)를 논의할 때에, 이 용어 혹은 분야에 대한 정의나 범주조차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채로 진행되는 경우가 많다. 즉, 서로 다른 종류의 원격의료를 놓고 이야기하거나, 허용 범위에 대한 상호 동의가 없는 채로 논의가 진행되는 것이다. 이런 경우, 결국 표면적으로는 원격의료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만, 실제로는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하는 형국이어서 합의점에 도달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예를 들어, 지난 3월 매경의 이 기사를 잘 읽어보면 표면적으로는 원격의료에 대한 찬반의 입장에서 이야기하고 있다. 하지만 김미영 님은 만성 질환에 대한 원격 환자 모니터링을, 김대하 선생님은 전화 진료, 특히 초진의 경우를 가정하고 계셔서 논의의 범주가 서로 다르다. 두 주장 모두 서로 다른 가정하에서 충분히 설득력이 있는 주장들이다.)

 

단순한 허용 여부를 넘어

후술하겠지만, 원격진료 (혹은 원격의료)에는 다양한 종류가 있으며, 어떠한 방식으로 구현될지에 대해서도 다양한 변수가 있다. 예를 들어, 원격의료라는 것을 ‘누가, 누구에게, 언제, 무엇을, 어떻게’ 하는지 5하 원칙에 따른 각각의 변수에 채울 수 있는 다양한 선택지가 존재한다. 이 변수를 무엇으로 채우느냐에 따라서, 결과적으로 구현될 원격의료의 모습에는 많은 경우의 수가 존재한다. 원격의료의 세부 모델은 국가별로도 다르고, 심지어 미국에서는 주별로도 다르다.

그래서 단순히 원격진료를 허용할 것이냐, 금지할 것이냐의 여부만 놓고 논의해서는 결론에 도달하기가 어렵다. 얼마 전 모 방송사에서 원격진료의 찬반 토론에 나와달라는 요청을 받았을 때 들었던 생각도 이것이다. 이 이슈는 단순히 찬성, 반대의 입장에서 논의하기란 적절하지 않은 주제이고, ‘누가, 누구에게, 언제, 무엇을, 어떻게’ 하는지에 따라서 아예 찬성과 반대의 입장 자체가 바뀔 수 있다. 의료계나 산업계의 분들도 그러할 수 있고, 필자도 그러하다.

하지만 현재 정부 당국에서 이 이슈를 논의할 때에는 단순한 허용여부 정도만 논의될 뿐, ‘구체적으로 어떤 모델을’ 허용할 것인가, 허용한 이후에는 어떻게 할 것이며, 이를 위해 무슨 준비가 필요한지에 대한 논의는 별로 없어 보인다. 물론 필자가 이 논의에 직접 참여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그런 논의가 있음에도 필자가 외부에서 미처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께서 필자의 졸저 ‘디지털 헬스케어‘를 공개적으로 추천하셨고 기재부 공무원들께 나눠드리면서 [1, 2] 원격의료에 대해 새롭게 논의를 하자고 하셨지만, 관련해서 이후로 주관 부처로부터 필자가 따로 의견 요청을 받은 적은 없다.


홍남기 기재부 장관께서 필자의 졸저를 추천해주셨다.
이 소식이 딱히 화제가 되거나, 책의 판매에 별다른 도움이 되지는 않았던 것 같지만.

이 글을 왜 쓰는가

그래서 이 글을 쓴다. 원격의료가 가지는 이슈의 복잡성에 대해서, 단순한 허용 여부를 넘어서 허용한다면 ‘어떻게’ 허용하는 선택지가 있으며, 허용한 이후에는 어떻게 할 것인가, 그리고 원격의료 이슈보다 더 근간에 있는 한국 의료의 근본적인 이슈는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에 대해서 지면에 제약을 받지 않고 쓰고 싶었다. 또한 관계 부처에서는 필자의 의견을 묻지는 않지만, 어떻게서든 문제의 해결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의견을 전달하고 싶었다. 물론 알아서 잘하시고 있는데 필자가 지레 걱정하는 것일 수도 있을 것이다.

현재 허용을 옹호하는 쪽이나, 반대하는 쪽 모두 나름의 논리와 근거가 있다. 그리고 두 입장 모두 추가적으로 고려해야 할 사항들이 있다. 필자는 이 글을 통해서 양쪽 모두에게 생각할 거리를 제시하고 싶다. 의료는 복지이자 산업이며, 너무 많은 이해관계자가 있기 때문에 사회적 합의를 거치는 절차적 정의가 필요하다. 정부에서는 이런 이해관계를 도출하는 역할을 해야 하고, 이해관계자들은 이 이슈의 특수성을 다양한 측면 (의학적, 기술적, 재정적, 규제적, 산업적 특성 등등)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필자도 이 모든 것을 이해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현재 상태의 양쪽 모두에게 생각할 거리 몇 가지는 더 제공해드릴 수 있을 것 같다. 참고로 필자의 기본적인 입장은 ‘지금 이대로 전면 허용은 반대한다’는 입장이다. 한국 의료의 ‘기저에 있는 근본적인 문제’들을 해결하지 않고, 지금 이대로 ‘무작정’ 허용하면 많은 부작용이 발생할 것이 불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기저에 있는 근본적인 문제’란 역시 의료전달체계와 수가 문제 등을 의미한다. 그리고 ‘무작정’이라는 의미는 아래에 설명하겠지만, ‘누가, 누구에게, 언제, 무엇을, 어떻게’의 5하 원칙이 전혀 논의되지 않거나, 아니면 이 5하 원칙이 모두 극대화된 채로 허용되는 것을 의미한다. 외국에서도 (적어도 필자가 아는 선진국 들에서는) 이 5하 원칙이 모두 극대화된 채로 원격진료가 시행되고 있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

사실 이 이슈가 워낙 복잡해서 필자도 제대로 이해하고 있지 못한 것들이 많을 수 있다. 독자들은 이 글 역시 필자 본인이 이해하고 있는 범위 내에서 쓰는 것임을 주지해주시기 바란다. 그리고 여러 번 밝혔지만, 필자가 대표로 있는 디지털헬스케어파트너스(DHP)는 현재 한국에서 원격진료 서비스를 한시적으로나마 서비스하고 있는 메디히어 등의 스타트업에 투자했기 때문에 지분관계에 의한 이해 상충 관계(conflict of interest)가 있음을 다시 한 번 밝힌다.

 

원격의료, 원격진료, 비대면진료?

무엇보다 먼저 용어 정리부터 해보자. 일단 용어 정의부터 잘 하고 넘어가야 동일한 선상에서 논의가 가능하다. 필자가 저서와 다른 포스팅 등을 통해서 여러 번 강조했듯이, 먼저 원격의료와 원격진료부터 구분하는 것이 좋다. ‘의료’와 ‘진료’ 두 개념의 관계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원격진료가 원격의료에 포함되는 개념으로 보면 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원격진료에는 해당하지 않더라도, 원격의료에는 해당하는 개념이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원격 환자 모니터링 (remote patients monitoring)이 여기에 해당한다. 또한 원격 진료에도 단순히 화상전화 진료뿐만 아니라, 무척 다양한 모델들이 있다. 벤다이어그램으로 그려보면 아래와 같다. 이는 필자가 저서, 강의 등에서 항상 설명하는 개념으로, 아직 익숙하지 않으시면 아래의 글을 먼저 읽으시는 것을 권한다.

이러한 개념적인 관계는 공식적인 정의가 있는 것은 아니며, 필자가 다른 여러 전문가들과 의견을 나누면서 자연스럽게 정립하게 된 개념도이다. 물론 모든 사람이 동의하지 않을 수도 있겠으나, 나름대로 합리적인 구분이라고 생각한다. 꼭 이 개념 구분을 사용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앞서 강조한 대로 최소한 용어에 대해 어떤 식으로든 동일한 정의를 가져야 의미 있는 토론이 시작될 수 있다.

또 한 가지, 현재 정부는 ‘비대면 진료’라는 신조어(?)를 사용하고 있다. 이는 원격진료, 혹은 원격의료가 가지는 한국 의료계에서의 거부감 때문에 또(?) 새로운 용어를 만들어낸 것이라고 생각한다. 과거에도 한국에서는 ‘유헬스케어’와 같은 정체불명의 용어를 만들어내어, 사실상 원격의료를 대신하는 용어로 사용했던 적이 있다.  여기에 덧붙여, 최근에 기사로 나온 것처럼, ‘원격 의료’와 ‘비대면 의료’가 서로 다르다는 식의 말장난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하등의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점도 지적하고 싶다. 문제를 해결하고 싶다면, 본질을 회피하지 말자.

청와대 관계자는 이날 오후 기자들과 만나 ‘청와대 원격 의료 도입 방침에 시민사회계 반발이 있다’는 질문에 “현재 허용되고 있는 것은 원격 의료가 아니라 비대면 의료”라고 밝혔다.

아무튼, 비대면 진료는 문자 그대로는 상당히 모호한 용어이다. 필자 개인적으로 현재 정부가 사용하는 ‘비대면 진료’는 화상 통화 및 음성 통화 진료 + 원격 환자 모니터링 정도의 개념으로 이해하고 있다.

 

비대면 진료의 범위는 어디까지인가

개념적으로 비대면 진료라고 하면 더 넓은 범위에서도 논의할 수 있다. 최근에 필자가 봐도 너무 ‘과격한’ 주장을 한다고 다른 포스팅에서 소개한 NEJM의 아티클에서 논의되었듯이 원격의료(telehealth)를 넓게 보자면 단순히 화상 통화 기반의 진료 말고도, 챗봇, 인공지능 스피커, 웨어러블 디바이스 기반의 진료까지도 확대해서 이해할 수 있다. (NEJM 아티클의 원문에서는 telehealth라는 표현을 쓰고 있으나, 맥락을 보면 ‘비대면’으로 이뤄지는 모든 디지털 헬스케어를 포함한다고 볼 수 있다.) 최근에는 이를 지칭하여 자동화된 케어(automated care)라는 용어도 미국에서 나오고 있다. 사실 이렇게 하는 것도 모두 ‘비대면’ 이고, ‘진료’의 영역에 속한다고 볼 수 있으니, 개념적으로는 비대면 진료다.

대표적인 예로, 영국의 스타트업 바빌론 헬스(Babylon Health)를 보자. 바빌론은 인공지능 챗봇 기반의 진단 플랫폼이다. 인간 의사의 개입 없이 인공지능이 채팅 기반으로 증상 등을 입력받아서 가능성 있는 진단명을 알려주는 서비스이다. 바빌론 헬스는 영국 NHS와 함께 일하고 있으며, 최근 중기부가 좋아하는 기업가치 $2B 이상의 유니콘 스타트업이다.

바빌론 헬스의 GP at Hand라는 서비스를 통해서 영국 환자들은 챗봇으로 선별 진단을 먼저 받고, 이를 기반으로 대면진료를 하거나, 혹은 원격진료 등으로 연계가 가능하다. 참고로 바빌론 헬스는 몇 년 전 GP at Hand가 일반적인 의사보다 환자 선별을 더 잘한다는 주장을 (상당히 빈약한 연구 디자인에 기반하여) 했다가 거센 역풍을 맞기도 했다. 2018년 무려 Lancet 에 이러한 주장을 반박하는 레터가 실렸을 정도다. 바빌론헬스의 정확성에 대한 논란은 최근까지도 계속되고 있지만, 어찌 되었건 이러한 챗봇 기반의 진료 역시 의사와 대면해서 이뤄지지 않으므로 ‘비대면 진료’라고 할 수 있다. 챗봇에 기반한 증상 체크나 문진을 제공하는 시도는 바빌론 이외에도 다수가 존재한다.

더 나아가서 구글 홈이나, 아마존 알렉사 등의 인공지능 스피커로 문진이나 선별 진료를 받는다면 이 역시 개념적으로는 ‘비대면 진료’라고 할 수 있다. 코로나19에 활용되는 디지털 헬스케어 포스팅에서 실제로 미국에서 구글과 아마존 등의 인공지능 스피커가 이러한 목적으로 활용이 시도되었다는 것을 소개한 바 있다.

하지만 현재 정부가 이야기하는 비대면 진료가 이런 개념까지 포괄하는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필자는 용어를 명확하게 사용하는 것을 선호해서, 정부나 관계부처에서도 정책을 의도하는 바에 따라서 원격진료, 원격 환자 모니터링 등으로 (한국에서 따로 만들어낸 유헬스케어, 스마트 헬스케어 이런 정체불명의 용어 말고) 글로벌에서 통용될 수 있는 명확한 용어를 사용하는 것을 권하고 싶다.

 

원격의료의 5하 원칙: 누가, 누구에게, 언제, 무엇을, 어떻게

이 글을 쓰는 핵심적인 이유 중의 하나이다. 원격의료, 혹은 원격진료에 대한 허용 범위와 방식을 어떻게 정의할지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 필자는 원격의료가 어떻게 구현될지에 대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