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day 10th June 2019,
최윤섭의 Healthcare Innovation

헬스케어 스타트업, 변화의 동력이 되려면 (3) 테라노스 사태의 본질

Yoon Sup Choi June 10, 2019 Digital Healthcare 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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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거, 근거, 근거!

또 다른 기본적인 조건은 헬스케어 스타트업이라면 진행하는 사업이 최소한 과학적으로, 의학적으로 타당해야 한다는 것이다. 필자가 사업계획서를 검토하거나 초기 팀과 이야기를 하다 보면 종종 과학적으로 ‘틀린’ 문제를 풀려고 하거나, 의학적으로 말이 안 되는 해결책을 제시하는 경우가 있다. 이런 곳은 사업성이 없고, 투자를 받기 어렵다는 정도의 문제가 아니라, 윤리적으로도 해서는 안 될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헬스케어 분야에서 의학적으로 ‘틀린’ 일을 하는 것은 고객이나 환자에게 심각한 위해를 가할 수도 있는 위험한 일이다. 여기에 해당되는 사례도 지금 필자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들을 당장 몇 가지 이야기하고 싶지만, 여러 이유로 그렇게 하지 못함을 독자들께서 이해해주시기 바란다. 비유하자면 자기는 영구기관을 만들 수 있다고 주장하는 창업자들이 있다고 보면 된다. 투자자의 입장에서는 이러한 주장의 과학적, 의학적 타당성을 평가할 수 있는 전문성을 갖춰야 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렇지 못한 경우를 주변에서 더러 본다. 스타트업뿐만 아니라 투자자들도 전문적인 역량을 더 키워야 한다.

더 나아가, 헬스케어 분야에서 모든 주장은 결국 근거로 뒷받침되어야 한다. 현대 의학의 핵심적인 기조 중의 하나는 근거 중심 의학(evidence-based medicine)이다. 의사들은 진료를 하고, 치료법을 선택할 때 모든 행위를 가능하면 과학적 근거에 기반하려고 노력한다. 마찬가지로 스타트업이 자신이 개발한 제품 혹은 서비스가 어떠한 효용이 있고, 안전하며, 비용 대비 효용이 있다고 주장하려면 이는 모두 근거가 필요하다. 더욱이 만약 규제적으로 의료기기로 분류되는 경우라면, 그러한 주장과 적용 범위에 대해서 규제 기관의 인허가가 필요하다.

근거라고 해도 여러 수준으로 나눌 수 있다. (근거 중심 의학의 근거 수준도 여러 단계로 나뉜다) 스타트업의 입장에서 가장 좋은 근거는 역시 임상 연구 결과이다. 모든 스타트업이 창업 초기부터 대규모 임상연구를 시행할 수는 없겠으나, 주장하려는 바에 따라서 결국 이러한 임상 연구가 필요함을 인지할 필요가 있다. 또한 연구를 통해 도출된 근거에 따라서 주장하는 바의 수준도 달라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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뿐만 아니라, 임상 연구도 모두 같은 임상 연구가 아니다. 얼마나 철저한 조건을 따르느냐에 따라 설득력이 달라진다. 제대로 된 대조군을 갖추고 있는가, 실험군과 대조군에 무작위로 배정되었는가(randomized), 이중맹검(double-blinded)인가, 참여자는 충분히 많고, 충분한 기간 동안 시행되었으며, 판단 기준(outcome)은 적절한가, 이것이 학계가 인정하는 공신력 있는 저널에 출판되었는가 등의 조건을 잘 갖춰야만 제대로 된 근거가 될 수 있다.

또한 이러한 근거는 대부분 병원 등 의료 기관과의 협업을 통해서 만들어지게 된다. 하지만 일개 스타트업의 입장에서 병원과 함께 일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의료계 외부에서 온 창업자일수록 이 부분에 대해서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의료계와 협업할 때에는 크고 유명한 좋은 병원과 일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특정 주제의 연구를 수행할 역량과 리소스, 그리고 의지가 있는 의학 연구자와 함께 하는 것이 중요하다. 병원과 스타트업의 공통점 중의 하나는 리소스가 항상 턱없이 부족하다. (그렇기 때문에 연구자 본인의 의지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렇게 협업할 적합한 병원, 적합한 학과, 적합한 사람을 찾는 것이 매우 중요하지만, 이것이 말처럼 항상 쉬운 일은 아니다.

테라노스 사태의 본질

아무런 근거가 없는데도 자신의 기술이 어떤 기능과 파급 효과가 있는지 주장하였으며, 이러한 주장에 전문성이 없는 투자자들이 설득당해 일어난 것이 결국 테라노스(Theranos) 사태의 본질이라고 할 수 있다. 테라노스는 엘리자베스 홈즈라는 여성 CEO가 창업한 스타트업으로 내부적으로 비밀리에 개발한 고유의 기술로 ‘피 한 방울로 250가지의 진단을 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홈즈는 이 혁신적인 기술의 개발을 위해 스탠퍼드 대학을 중퇴하고, 수년 동안 스텔스 모드로 이 사업을 준비해왔다고 했다.

남성 창업자로 가득한 실리콘밸리에, 스티브 잡스처럼 검은색 터틀넥 셔츠만 입는 금발의 백인 여성 CEO가 비밀리에 개발한 기술이라는 스토리는 사람들의 이목을 끌기에 충분했다. 혹자는 이 기술에 의문을 표했지만, 홈즈는 극비 기술이라서 외부에 공개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실험 결과나 논문은 하나도 발표하지 않았다. 결국 이 회사는 총 1조 5000억 원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규모의 투자를 유치했고, 2015년 기업 가치는 무려 90억 달러까지 치솟았다. [ref]  이는 전 세계 헬스케어 스타트업 중 가장 높은 기업 가치였고, 엘리자베스 홈즈는 온갖 미디어의 주목을 받으며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자수성가형 여성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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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자베스 홈즈

하지만 결국 이는 모두 거짓이었다는 것이 드러났다. 2015년, 월스트리트 저널의 탐사 전문 기자 존 커레이루 (John Carreyrou)의 집요한 취재 결과 테라노스가 개발했다는 기술이 거짓이라고 밝혀진 것이다.[ref] 테라노스가 개발한 ‘에디슨’으로 250가지의 항목을 검사할 수 있다고 주장했으나, 실제로 진단할 수 있었던 것은 10여 가지에 지나지 않았으며, 나머지 항목은 모두 다른 회사들의 진단기기를 몰래 내부적으로 이용해서 진단한 것이었다. 에디슨의 실험 결과는 조작되었으며, 많은 사람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시연했던 기기는 가짜였다. (진단이 되는 것처럼 녹화된 영상을 스크린에 보여줬다고 한다) 이외에도 회사는 직원들을 지나치게 통제하고, 홈즈는 최고 운영책임자(COO)였던 라메쉬 발와니와 연인 관계였다는 것이 밝혀지는 등 온갖 내부적인 문제들이 많았다.

결국 이 기업의 가치는 0원으로 추락했으며, 엘리자베스 홈즈는 향후 2년간 실험실 운영 및 설립 자격이 박탈되고, 10년 동안 기업 임원으로 취임하는 것을 금지했다. [1,2] 더 나아가 홈즈는 기소되어 재판을 받고 있는데, 홈즈는 증언 과정에서 ‘나는 아는 것이 없다 (I don’t know)’라는 표현을 무려 600번 이상 반복했다고 한다.[ref]

이러한 테라노스의 사례는 의도적으로 사실을 은폐하고 거짓 주장을 일삼은 엘리자베스 홈즈 개인의 윤리성도 지적해야 하지만, 근거가 없는 주장을 별다른 의심 없이 믿은 투자자의 잘못도 있다고 할 수 있다. “테라노스가 거짓말로 실리콘밸리의 그 기라성 같은 전문 투자사들을 모두 속였단 말이야?”라고 의아하게 생각할 수도 있지만, 사실 테라노스에 투자한 개인 혹은 투자사 중에서 헬스케어 전문 투자자나 벤처캐피털은 없었다. 언론계의 제왕 루퍼트 머독이나, 멕시코 통신 재벌 카를로스 슬림 등이 테라노스에 투자했지만, 이들은 이 기술의 존재 유무나 구현 가능성을 판단할 의학적 전문성이나 식견은 없는 비전문가들이었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스타트업뿐만 아니라, 투자자도 전문성을 키워야 한다. 전문성을 가지지 못한 분야에 대한 무분별한 투자는 결국 모두에게 좋지 않은 결과를 낳는다.

About The Author

IT와 헬스케어의 컨버젼스를 통해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는 것을 화두로 삼고 있는 융합 생명과학자, 미래의료학자, 작가입니다. 포항공대에서 컴퓨터공학과 생명과학을 복수 전공하였고, 동대학원에서 전산생물학으로 이학박사를 취득했습니다. Stanford University 방문연구원,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암연구소 연구조교수, KT종합기술원 컨버전스연구소 팀장, 서울대병원 의생명연구소 연구조교수 등을 역임하였습니다. 현재 최윤섭 디지털 헬스케어 연구소의 소장이며, 국내 유일의 헬스케어 전문 스타트업 엑셀러레이터 디지털 헬스케어 파트너스 (DHP)의 대표 파트너를 맡고 있습니다. 성균관대학교 삼성융합의과학원 디지털헬스학과 초빙교수이자, VUNO, Zikto, Promisope, Souling, 트랜스링크 캐피털, HB 인베스트먼트, 녹십자 홀딩스의 자문이며, 매일경제신문의 필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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