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esday 21st May 2019,
최윤섭의 Healthcare Innovation

디지털 헬스케어를 하려는 대기업에 드리는 제언

Yoon Sup Choi December 16, 2018 Column, Digital Healthcare 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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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몇몇 대기업이 디지털 헬스케어 분야에 뛰어들지, 혹은 어떻게 뛰어들지를 (또 다시) 고민하시면서, 약간의 자문을 드렸습니다. 대개 이런 대기업에서는 내년도 계획을 세우면서, ‘무엇’을 할지를 사장님이나 회장님께 보고할 ‘하나’의 문장으로 뽑고 싶어합니다. 넓고 넓은 디지털 헬스케어 분야 중에서 유망한 ‘하나’의 사업 분야를 구체적으로 특정하거나 우선순위를 매김으로써, 향후 나아가야 할 방향을 좁히려는 것입니다. 사실 이렇게 해야 (실무자보다 특정 분야에 대한 이해가 낮을 수밖에 없는) 높은 분들이 이해하고 의사결정을 받아낼 수 있습니다. 필자도 대기업에서 일할 때, 임원보고, CEO보고 등을 준비해보았기 때문에 이를 잘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떡하나요. 디지털 헬스케어, 혹은 미래 의료라는 분야가 그렇게 쉽고 간단한 분야가 아닌데 말입니다. 새롭게 태동하고, 빠르게 발전하는 다른 신기술 분야와 마찬가지로 이 디지털 헬스케어가 앞으로 어떻게 바뀔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제가 역량이 부족해서 그러한지는 모르겠지만, 이 분야가 5년 뒤, 10년 뒤에 어떻게 바뀔 것이며, 어디에서 기회가 있을지를 매우 세부적이고 구체적으로 ‘미리’ 잡는 것은 극히 위험하다고 생각합니다. 아니, 그것 자체가 가능하지 않다고 봅니다. 특히 새로운 기술을 다루는 다른 분야와는 달리 디지털 헬스케어는 단순히 기술뿐만 아니라, 규제, 보험 및 수많은 이해관계자와의 특수한 관계까지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앞날을 가늠하기가 더욱 어렵습니다.

사실 저는 몇년 후까지 갈 것도 없이, 내년 2019년에 이 시장이 어떻게 전개될지도 매우 불확실하다고 생각합니다. 내년은 글로벌 시장뿐만 아니라, 한국 시장도 격동의 시기를 통과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글로벌 시장의 상황은 격변하고 있고, FDA의 규제가 여전히 바뀌는 과정에 있으며, 글로벌 대기업도 하루가 멀다하고 새로운 뉴스를 내어놓고 있습니다. 몇 년 전만 하더라도 새로운 시장에 대한 막연한 환상과 기대감이 채워졌다면, 외국에서는 이를 이제 실질적인 성과를 내어놓아야 하는 시기가 되고 있습니다.

국내에서도 각종 규제 변화나, 혁신형 의료기기 관련이나, 선진입 후평가 등의 수가 체계 변화가 예상되며, 몇몇 리딩 스타트업은 꽤나 근본적인 도전이나 결정을 내년에 하게 될 것 같습니다. 저도 상당히 동의하는 바입니다만, 어떤 전문가는 내년이 한국 디지털 헬스케어 시장의 존폐를 가를 결정적 시간이 될 것이라고도 이야기합니다. 사실 현재 한국의 디지털 헬스케어 시장은 ‘존재한다’고 보기도 어려운 정도이며, 이미 골든타임을 놓친 상황으로, 내년에 어떤 결정적인 돌파구를 마련해내지 못하면 근본적으로 상당한 난관에 봉착하게 될 것입니다. 지금도 이미 많은 기업은 국내 시장을 버려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결정을 고육지책으로 내리고 있습니다.

이러한 여건에서 산업화 시대 때 하던 것처럼, 대기업이 이 분야에 뛰어들기 위해서 좁고 세부적인 방향을 미리 설정하고 가는 것은 실패할 확률이 높은 방법입니다. 혁신적인 분야일수록 어디에서 기회가 있을지, 위험이 도사리고 있을지를 사전에 알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같은 이유로 저는 ‘대통령 직속 4차산업혁명위원회’와 같은 활동 자체를 회의적으로 봅니다.) 하지만 대기업이라는 큰 범선과 같은 존재는 처음부터 그렇게 방향을 정해놓지 않으면 출발 자체를 할 수 없습니다. 특히 관료적이고 모든 결정이 탑다운으로 이뤄지는 한국의 대기업은 더더욱 그러합니다.

저는 한국 대기업이 지난 몇 년 동안 헬스케어에 뛰어들지 못하거나, 항상 소위 ‘간’만 보는 큰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시장에 대한 이해나, 이해관계자들의 관계 조율에 대한 부담도 큰 요소입니다만, 제가 만나본 대기업은 전자, 제조, 제약, 보험 등의 분야를 막론하고 ‘무엇을 해야 할지’ 자체를 오랫동안 고민하면서도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이는 잘못된 가정 하에 잘못된 질문을 던지기 때문입니다.

저는 한국의 대기업이 정말 디지털 헬스케어를 하려는 의지가 있다면, 구글처럼 해보면 좋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구글은 현재 버릴리, 칼리코, 구글X, 딥마인드, 구글벤처스 등을 통해서 전방위적으로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습니다. 이 시도는 EMR 분석 인공지능, 유방암/전립선암 병리 인공지능부터 스마트 콘택트렌즈, 자동수술로봇 개발, 베이스라인 프로젝트, 신약 개발에 이르기까지 극히 다양합니다. 또한 실리콘밸리에서 구글벤처스는 디지털 헬스케어 스타트업에 가장 활발하게 투자하는 벤처캐피털이기도 합니다. 구글벤처스가 투자한 회사는 암유전체 분석 회사(Foundation Medicine)이나 유전정보 분석 스타트업(23andMe)에서, 원격진료 스타트업(Doctor On Demand), 보험사 스타트업(Lemonade, Oscar)에 이르기까지 다양합니다.

어떻게 본다면 구글이 디지털 헬스케어 분야에서 이것저것 마구잡이로 닥치는대로 해보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과연 구글이 돈과 시간과 리소스가 남아돌아서 그렇게 하는 것일까요. 저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냥 디지털 헬스케어라는 분야가 그렇게 접근하는 것 외에는 다른 선택지가 없기 때문에, 이렇게 하는 것입니다. 디지털 헬스케어가 언제 어떻게 변화해서, 어떤 기회를 만들어낼지는 아무도 알 수 없기 때문에, 그저 이 분야가 미래에 의료가 나아갈 수밖에 없다는 ‘방향성’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일단은 다양한 시도를 일단 해보는 것 외에는 답이 없는 것이지요. 특정한 주제를 미리 선별해서 회장님 지시사항으로 탑다운으로 내려보내는 방식은 이 분야에서는 통하지 않습니다. 아니, 유일하게 가능성 있는 회장님 지시사항은 ‘내가 책임질 테니, 다양하게 시도해보라’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러한 다양한 시도에서는 구글도 최근 포기를 선언한 혈당 측정용 스마트 콘텍트 렌즈 같은 실폐 사례가 나올 수도 있지만, 또 다른 프로젝트에서 예기치 못했던 더 큰 기회가 나올 수도 있습니다. 물론 아직 구글도 그 성공 사례를 찾지는 못했습니다. 하지만 그 와중에 시장에 대한 이해가 생기며, 뛰어들기 전에는 보이지 않던 온갖 이해관계가 눈에 들어올 것입니다. 그러한 과정을 거쳐야만 비로소 새로운 기회에 눈을 뜨게 될 수 있습니다.

당연히 여기에는 시간이 들고, 리소스가 들어갑니다. 산업화 시대의 시각으로 여기에 들어가는 시간과 리소스는 ‘낭비’로 보여질 것입니다. 또한 과감하게 시도했다가 프로젝트가 실패하면 실무자 중에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겠지요. 한국의 대기업이 이렇게 구글처럼 시간과 리소스의 ‘낭비’를 감수하고 실패에 대한 리스크를 무릅쓰면서, 방향성만 믿고 불확실성에 투자하는 것을 저는 여전히 상상하기가 어렵습니다. 돈과 리소스가 없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산업에 대한 이해와 통찰, 그리고 의지가 없는 것이지요. 그러니까 지금까지 계속 ‘반복적으로’ 고민만 계속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백날 고민해봐야 어차피 답이 없는 잘못된 질문을 던지고 있는 것입니다.

만약 좋은 질문을 던지고, 디지털 헬스케어라는 새로운 산업의 본질에 맞는 방향으로 사업을 이끄는 것이 어려우며, 스스로 생각할 때 이 산업에 대한 전문성과 통찰이 떨어진다는 자각이 있다면, 굳이 직접 할 필요가 없을 수 있습니다. 구글벤처스처럼 스타트업에 투자해서 오픈이노베이션을 하는 것이 더 낮은 리스크와 투자 대비 더 큰 효과를 기대할 수도 있습니다. 혹은 벤처펀드나 엑셀러레이터에 LP로 참여할 수도 있습니다. 빠르게 변화하는 이런 분야에서는 스타트업만큼 빠르고 린(lean)하게, 때로는 과감한 피봇팅을 하면서 대응할 수 있는 조직은 없습니다. 대기업에서 내부적으로 하면 이러한 대처가 절대 가능하지 않지요.

하지만 국내 대기업이 과연 이러한 결정을 할 수 있을지 잘 모르겠습니다. ‘자체적으로 직접 할 수 있는 일인지’에 대한 결정을 내리는 것에도 자신의 역량에 대한 냉철한 판단이 필요한데, 이것 자체가 전문성과 통찰이 필요한 일입니다. 전문성이 없다는 것 자체가, 자신이 얼마나 전문성이 있는지, 다른 파트너가 얼마나 전문성이 있는지에 대한 판단을 내리기 어렵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대부분의 국내 대기업은 ‘자체적으로 직접 한다’는 그다지 현명하지 않은 선택지를 고르곤 합니다.

이제 보름만 지나면 올해도 지나갑니다. 올 한 해도 국내외 디지털 헬스케어 분야에서 굵직한 일들이 많았습니다. 이 분야는 사실은 답답할만큼 여전히 실마리가 보이지 않고 꿈쩍도 하지 않는 문제가 산적해 있기도 합니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규제나 산업계에서 정중동으로 의미있는 변화와 시도가 적지 않게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시도는 내년에 더 큰 변화를 예고하고 있기도 합니다.

사실 산업계에서 만들어낸 대부분의 변화는 스타트업에 의한 것이었다고 봅니다. 올해도 국내 대기업, 혹은 중견기업은 디지털 헬스케어 분야에서 여전히 유의미한 움직임을 보여주지 못했습니다. 내년 시장의 변화는 그 속도와 폭이 더욱 커질 것입니다. 부디 2019년 내년에는 이러한 격동의 시기에 좋은 기회를 포착하고, 유의미한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제 우리에게 남겨진 시간이 별로 없습니다.

About The Author

IT와 헬스케어의 컨버젼스를 통해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는 것을 화두로 삼고 있는 융합 생명과학자, 미래의료학자, 작가입니다. 포항공대에서 컴퓨터공학과 생명과학을 복수 전공하였고, 동대학원에서 전산생물학으로 이학박사를 취득했습니다. Stanford University 방문연구원,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암연구소 연구조교수, KT종합기술원 컨버전스연구소 팀장, 서울대병원 의생명연구소 연구조교수 등을 역임하였습니다. 현재 최윤섭 디지털 헬스케어 연구소의 소장이며, 국내 유일의 헬스케어 전문 스타트업 엑셀러레이터 디지털 헬스케어 파트너스 (DHP)의 대표 파트너를 맡고 있습니다. 성균관대학교 삼성융합의과학원 디지털헬스학과 초빙교수이자, VUNO, Zikto, Promisope, Souling, 트랜스링크 캐피털, HB 인베스트먼트, 녹십자 홀딩스의 자문이며, 매일경제신문의 필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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