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esday 26th September 2017,
최윤섭의 Healthcare Innovation

[칼럼] 혁신을 어떻게 규제할 것인가

Yoon Sup Choi August 25, 2017 Column, Digital Healthcare 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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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칼럼은 제가 매일경제에 기고한 것입니다. 원문은 여기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의료 산업은 근본적으로 규제 산업이다. 사람의 건강과 생명을 다루기 때문에 제품이나 서비스의 효과뿐만 아니라 절대적인 안전성까지 담보되어야 한다. 하지만 새로운 기술 혁신을 어떻게 심사하고 규제할 것인지는 참으로 어렵고도 까다로운 문제다.

규제가 지나치게 엄격하면 혁신을 위한 노력이나 투자의 동인이 줄고, 환자들이 혁신의 수혜를 적시에 받아보지 못하게 된다. 반대로 규제가 지나치게 완화되면 상용화되는 기술의 안전성과 효과성이 보장되지 못할 수도 있다. 이 역시 결국 환자에게 피해가 돌아간다.

혁신을 어떻게 균형있게 규제할 것인지는 규제기관이 태생적으로 직면해온 딜레마다. 이 딜레마는 기술 혁신이 폭발적으로 일어나는 오늘날 더욱 커지고 있다. 특히 디지털 헬스케어의 발전은 이런 문제를 더욱 심화시킨다. 기술의 발전이 너무 빠를뿐만 아니라, 기존의 의료기기의 범주에 속하지 않는 서비스나 상품이 출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통적으로 의료기기는 CT, MRI 기기나 체온계, 혈압계 같은 하드웨어를 의미했다. 하지만 이제 의료기기의 범위는 스마트폰 앱, 인공지능, SNS, 클라우드 컴퓨터, 3D 프린터 등으로 확대되고 있다.

이렇게 의료기기를 새롭게 규정하고 규제 방안을 마련하기 위하여 작년에는 미국, 호주, 중국, 일본 등의 규제 기관이 모여 ‘소프트웨어 의료기기(Sofware as a Medical Device)’ 가이드라인을 확정짓기도 했다. 더 큰 문제는 앞으로 어떤 형태와 형식의 새로운 의료기기가 등장할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이처럼 혁신은 근본적으로 예측이 불가능하다. 무엇이 어디에서 어떻게 튀어나올지 모르기 때문에 그것이 혁신적인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미국 등에 비하여 한국의 규제는 이러한 혁신을 저해하는 측면이 강하다. 가장 큰 차이점이라면 역시 네거티브-포지티브 규제의 차이다. 미국 등의 국가에서 채택한 네거티브 규제는 ‘법으로 금지한’ 사항 이외에는 모두 허용한다는 철학이다. 반면 한국의 포지티브 규제는 ‘법으로 허용한’ 사항 이외에는 모두 금지한다는 것이다.

이는 사소한 것 같지만, 그 결과는 너무도 다르다. 네거티브 규제 하에서는 새로운 것을 과감하게 시도할 수 있지만, 한국의 포지티브 규제 하에서는 허용된 것 외의 시도가 원천적으로 금지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무엇이 허용되는지를 미리 규정해두면 혁신가들의 자유로운 발상과 과감한 시도, 분야를 넘나드는 융합은 시작조차 불가능하다. 즉, 현재의 포지티브 규제는 혁신을 미리 예측하고 관리하겠다는 것과 다름 없다.

필자는 기자들에게 ‘한국에서 규제 때문에 의료 분야에서 피해를 입었던 기업의 사례를 들어보라’는 질문을 종종 듣는다. 이에 대해서는 규제 때문에 기술을 개발해놓고도 해외에서 먼저 서비스를 해야 하는 스타트업이나, 해외에서는 성공적이지만 한국에서는 불법인 사업 모델을 예시로 들 수 있다. 하지만 필자가 생각하는 국내 규제의 가장 큰 피해는 보이지 않는 곳에 있다. 바로 ‘혁신이 시도되지 조차 못하고 있다’는 점이기 때문이다.

물론 국내 규제의 전반적인 기조를 한 순간에 바꿔서, 모든 것을 네거티브 규제로 전환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그렇다면 현재 혁신이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는 몇몇 분야만이라도 네거티브 규제를 시범적으로 적용해보는 것은 어떨까. 예를 들어, 의료 인공지능, 개인 유전자 검사, 정밀 의료 등의 몇가지 세부적인 분야에 대해서는 시도해볼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최근에 발표된 문재인 케어도 적어도 의료 기술 혁신의 동인을 제공할 것인지의 여부를 기준으로 본다면 글로벌 추이에 역행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문재인 케어의 핵심은 비급여의 급여화다. 새로 개발된 의료 기기나 서비스이 모두 급여를 받기 위해서는 의료기기 인허가뿐만 아니라 선택의 여지 없이 신의료기술평가까지도 받아야한다. 이는 기업의 자율성 및 혁신에 대한 동인을 저해할뿐만 아니라, 환자에게 혁신의 결과물을 적시에 제공하기도 어렵게 만들 가능성이 크다.

 

이러한 정책은 최근 FDA가 내어놓은 파격적인 정책과 비교해보면 괴리가 더욱 커진다. FDA는 공개적으로 ‘우리가 혁신의 걸림돌이 되지 않겠다’고 천명하며, 몇년 전부터 파격적인 규제 개선 방안을 내어놓고 있다 (무조건적인 ‘완화’가 아님에 유의하자). 그 화룡점정은 지난달 말 내어 놓은 ‘디지털 헬스 이노베이션 플랜’이다. 이 규제 안에서 FDA는 환자의 안전을 보장하면서도, 디지털 헬스케어의 독특한 특성에 맞는 양질의 혁신을 효율적으로 장려하기 위한 여러 안을 내어놓았다.

그 중에 가장 파격적인 것은 개별 제품(product)에 대한 의료기기 여부를 심사하는 것이 아니라, 개별 개발사(developer)를 기준으로 규제하겠다는 것이다. 즉, 적절한 요건을 갖춘 회사에 자격을 부여하고, 이 회사들이 만든 디지털 헬스케어 제품은 인허가 과정을 면제 받거나, 간소화하겠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엄격한 자격 요건을 갖춘 제조사들은 보다 더 큰 자율권을 가지고 혁신적인 기술을 바탕으로 시장에 제품을 더욱 빠르고 효율적으로 출시할 수 있다. 이를 통해 환자들은 기술 혁신의 수혜를 좀 더 빠르게 받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제품 중심의 규제라는 근간 자체를 바꾸는 파격적인 변화이다. 이는 혁신을 예측할 수 없고, 많은 경우 이를 심사할 기준조차 갖춰있지 않다는 것을 고심한 끝에, 결국에 기업에 대한 자율성을 최대한 보장해주는 대신 그 기업의 요건을 엄격하게 관리하기로 한 것으로 보인다.

 

식약처가 유심히 봐야할 또 다른 부분은 바로 규제기관의 전문성 확충을 위한 투자의 필요성이다. ‘디지털 헬스 이노베이션 플랜’에는 FDA가 현재 디지털 헬스케어 산업계의 기술 발전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향후 새로운 전문가를 확충하고 더 많은 재원을 투입하여 전문성을 더욱 강화하겠다는 계획이 포함되었다. 심지어는 산업계의 전문가를 FDA 내부로 초빙하는 EIR (Entrepreneurs in Residence, 초빙 기업가) 프로그램까지 운영하여 규제 개선의 예측가능성, 일관성, 적시성, 효율성을 높이겠다는 의지를 천명했다.

이 부분은 우리 규제기관에도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복지부나 식약처에도 의료 혁신을 규제 및 관리하기 위한 전문성을 양적, 질적인 강화가 시급하기 때문이다. 사실 이 문제는 개별 실무자의 역량 문제보다는 해당 부처의 시스템 문제로 접근하는 것이 맞다. 산업계에서는 식약처의 느린 변화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높지만, 정작 식약처의 개별 인허가 담당자들은 또 엄청난 격무에 시달리고 있다. 이를 보면 근본적인 문제는 현재의 식약처가 기술 혁신에 발맞는 변화를 이끌어내기에 인력과 예산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점으로 보인다.

최근 FDA의 고백과 마찬가지로 현재 식약처의 의료기기 심사관들도 대부분 하드웨어 전공자로 새로운 소프트웨어 의료기기를 심사하려면 전문성의 확대가 필요하다. 하지만 더 문제는 인력의 절대적인 부족이다. 관계자에 따르면 첨단의료기기과의 인력은 지난 20년간 30여명에서 10명 밖에 충원되지 않았다. 그 기간 동안 휴먼 게놈프로젝트가 끝나고, 정밀 의료가 대두했으며, 유전자 편집 기술이 발전하고, 인공지능이 도입되는 상전벽해와 같은 변화가 일어났다는 것을 상기한다면 이 인력으로 혁신을 규제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일 정도다.

사실 FDA도 최근까지 전문성의 부족이라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않았다. 하지만 작년부터 의료기기 심사부서(Center for Device and Radiologic Device) 내에 디지털 헬스를 담당하는 인력이 따로 생긴 것을 시작으로, 올해 봄 디지털 헬스케어를 담당하는 독립적인 부서까지 만들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이렇게 관련 전문가를 더욱 선발하고 예산을 투입하겠다는 계획에, 미국의 산업계에서는 ‘FDA가 실리콘밸리보다 더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는 놀라움을 표하기도 했다.

 

한 나라의 산업은 결국 규제의 수준에 수렴한다. 특히 의료 산업 역시 발전할 수 있는 상한선은 결국 규제에 의해서 규정될 수밖에 없다. 현재는 의료 분야에서 혁신적인 기술의 발전이 일어나고 있는 변혁의 시대이지만, 해외 대비 국내 의료 산업의 격차는 그 근간을 이루는 규제 시스템부터 계속 벌어지고 있다.

국내 스타트업 쓰리빌리언은 한 번의 유전체 분석으로 5천여개의 희귀유전질환을 진단할 수 있는 혁신적인 기술을 개발했으면서도 미국 시장을 대상으로 먼저 서비스를 개시한다. 한국에서는 이 서비스가 불법이기 때문이다. 쓰리빌리언의 금창원 대표는 ‘한국의 유전체 산업은 규제 때문에 미국에 비해 이미 10년 이상 뒤쳐졌다’고 언급한다.

우리는 이 변혁의 시대에 혁신에서 더 이상 뒤쳐질만한 여력이 없다. 이 변곡점의 기회를 놓치면 국내 의료 산업의 경쟁력이 떨어지고 기업이 고사하는 것도 문제이겠지만, 결국 최종적인 피해는 그 혁신의 수혜를 적시에 받지 못하는 환자에게 돌아가게 된다. 네거티브 규제로의 전환과 규제기관의 전문성 확보와 투자가 중요한 가장 큰 이유다.

About The Author

IT와 헬스케어의 컨버젼스를 통해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는 것을 화두로 삼고 있는 융합 생명과학자, 미래의료학자, 작가입니다. 포항공대에서 컴퓨터공학과 생명과학을 복수 전공하였고, 동대학원에서 전산생물학으로 이학박사를 취득했습니다. Stanford University 방문연구원,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암연구소 연구조교수, KT종합기술원 컨버전스연구소 팀장, 서울대병원 의생명연구소 연구조교수 등을 역임하였습니다. 현재 최윤섭 디지털 헬스케어 연구소의 소장이며, 국내 유일의 헬스케어 전문 스타트업 엑셀러레이터 디지털 헬스케어 파트너스 (DHP)의 대표 파트너를 맡고 있습니다. 성균관대학교 삼성융합의과학원 디지털헬스학과 초빙교수이자, VUNO, Zikto, Promisope, Souling, 트랜스링크 캐피털, HB 인베스트먼트, 녹십자 홀딩스의 자문이며, 매일경제신문의 필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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