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esday 23rd April 2024,
최윤섭의 디지털 헬스케어

의료 분야의 VR 활용 (2) 의학 교육과 수술 훈련

얼마전 포스팅에서는 최근 가장 주목 받고 있는 기술 중의 하나인 가상현실(Virtual Reality, VR)이 공포증의 치료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의 치료를 위해서 효과적으로 사용되고 있다는 것을 살펴보았다.

의료 분야에서 VR의 또 다른 중요한 활용 분야는 바로 의학 교육과 외과 의사의 수술 훈련을 위한 것이다. 2016년 4월 14일 영국의 로열 런던 병원(The Royal London Hospital)의 외과의사 샤피 아메드(Shafi Ahmed) 박사는 외과 수술 교육의 역사에 길이 남을지도 모를 일을 시도했다. 바로 VR 기술을 통해서 수술 장면을 실시간으로 전세계에 최초로 중계한 것이다.

 

암 수술의 전세계 생중계

종양 외과 의사인 샤피 아메드 박사는 그가 창업한 스타트업 기업인 메디컬 리얼리티즈(Medical Realities)와 함께 70대 남성 환자의 결장암 수술을 수술방 위에 달린 360도 카메라로 2시간 정도에 걸쳐 전세계에 생중계했다. 외과의사를 지망하는 전세계 의과대학생들 뿐만 아니라, 일반인 누구라도 메디컬 리얼리티즈의 앱이나 구글 카드보드와 같은 간단한 장치만 있으면 이 수술의 전 과정을 마치 그 방에 함께 있는 것처럼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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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VR을 통해서 수술을 생중계하겠다는 계획은 인터넷과 여러 매체를 통해서 미리 알려지며 화제를 모았다. 그 결과 전세계 142개국의 55,000여 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이 수술을 실시간으로 지켜보았으며, 그 중의 상당수는 의과대학생들이었다. 중계된 결장암 수술이 특별히 어려운 것은 아니었지만, 만약의 상황을 대비해서 1분 지연 중계를 했다.

샤피 아메드 박사는 “수술 중에 문제가 생기면 중계를 즉시 중단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수술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하고 해결하는 것을 보는 것 역시 중요한 수련 과정 중 하나이다. 수술 중 문제가 발생했을 때 어떻게 대처하는지도 배울 수 있어야 한다” 고 언급했다.

사실 샤피 아메드 박사는 2013년에 이미 구글 글래스를 통해서도 종양 제거 수술 장면을 전세계에 생중계한 경험도 있다. 당시에는 113개 국가에서 13,000명의 의대생들이 수술을 시켜보았으며, 학생들이 온라인으로 던진 질문을 구글 글래스의 작은 스크린으로 읽고 구두로 대답하면서 수술을 진행했다. VR을 통한 수술 교육은 과거 구글 글래스를 이용한 수술 중계에서 진일보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해당 수술 중계에 관한 BBC 뉴스

메디컬 리얼리티즈에서 2015년 공개한 데모 영상
(스마트폰 유투브 앱이나 크롬으로 보시면 좌우, 아래위로 방향을 돌려보실 수 있습니다)

 

새로운 방식의 의학 교육

이처럼 샤피 아메드 박사와 메디컬 리얼리티즈는 VR 기술을 활용해서 전세계 의대생들과 외과 수련의들에게 새로운 방식의 수술 교육을 제공하려고 한다. 이 회사는 런던의 대학병원에서 VR 헤드셋을 이용한 수술 교육 시설을 만들고 있으며, 개별 수술들을 녹화할 수 있는 최고의 외과 의사들을 찾고 있는 중이다.

지금도 의학 교육은 대부분 도제식 방식을 따르고 있다. 즉, 우선 교과서를 바탕으로 하는 이론을 학습한다. 이후 병원에서 실습을 하면서 교수님이나 선배 의사들이 하는 것을 반복적으로 지켜보면서 눈으로 익힌 다음, 선배 의사의 지도하에 직접 해보게 된다. 그렇게 경험이 쌓인 후에는 마침내 독자적으로 시행해보는 것이다.

이는 항공기 조종사들이 이론-실습-교관비행-단독비행으로 역량을 발전시켜나가는 방식과 유사하다고 할 수 있다. 오래 전부터 조종사 교육에는 비행 시뮬레이터가 도입되어 조종사들의 실습 및 교육에 사용되어 온 것처럼, 이제는 의학 교육에도 VR의 접목이 활발하게 논의되고 있다.

boeing737_flightsimulator_129보잉747의 비행 시뮬레이터

의과대학에서 배우는 해부학의 경우 먼저 책에서 장기나 혈과, 신경 등의 해부학적 구조를 익힌 다음, 해부학 실습에서 직접 카데바(해부용 시신)를 해부함으로써 비로소 3차원적인 구조로 이해하게 된다. 해부학 실습을 통해 실제 인체의 구조를 이해할 수 있지만, 시신의 경우 이미 장기는 굳어버리고 출혈도 없을 뿐만 아니라 실습의 횟수에도 현실적으로 제한이 있다. 돼지나 원숭이 등 동물의 장기나 조직을 활용해서 봉합 등의 기술을 익히기도 한다. 하지만 이는 인체와 동일한 해부학은 아니라는 단점이 있다.

만약 VR을 통해서 이러한 과정을 효과적으로 재현할 수 있다면, 굳이 시신을 해부하거나, 동물을 사용하지 않아도 않아도 인체의 해부학적 구조를 3차원으로 반복적으로 익힐 수 있다. 또한 시신에서는 배우기 어려운 장기의 역동적인 움직임, 호흡, 혈류 등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해부학 뿐만 아니라, 수술방에서 행해지는 수술 교육도 현재는 문자 그대로 ‘어깨 너머로’ 보면서 도제식으로 행해진다. 하지만 수술을 옆에서 보조하는 의사는 집도의만큼 실제로 어떻게 수술이 진행되고 있는지 자세히 관찰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또한 현대의 수술은 매우 빠른 속도로 진행되며 우선 순위가 높은 수술 절차가 많기 때문에, 수술 중에 수련의들을 교육하는 것에 비중을 두지 못하는 문제도 있다.

이를 위해서 현재 수련의들은 여러 수술 기법을 녹화한 영상을 반복해서 돌려보면서 수술을 익히려고 한다. 이러한 방식도 VR 을 통해서 더 몰입된 상황 하에 집도의만 관찰할 수 있었던 해부학적 구조를 3차원적으로 관찰하고, 단순히 눈으로 보는 것뿐만 아니라 손을 이용해서 술기를 익힐 수 있다면, 보조 의사가 이후 직접 집도의가 되었을 때 경험하는 시행착오를 줄일 수도 있을 것이다.

 

저소득 국가의 수술 교육을 위한 VR

VR이 의학 교육에 기여할 수 있는 큰 이유 중의 하나는, 현재 세계적으로 수술에 필요한 의사들의 수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것이다. 2015년 란셋(The Lancet)에 보고된 바에 따르면, 안전한 환경에서 제대로 수술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세계적으로 50억명이 넘는다.

소득이 적은 국가일수록 문제는 더욱 심각해진다. 저소득 국가에서는 기초적인 수술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은 겨우 10명 중 한 명 꼴이다. 특히, 전세계 인구의 1/3이 저소득 국가에 살지만, 해당 국가에서 시행되는 수술은 전세계의 6%에 지나지 않는다. 현재 저소득 국가에서는 약 200만 명에 달하는 외과의사, 마취과의사, 산부인과 의사 등이 더 필요할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사실 적절한 수술이 이뤄지기 위해서는 외과의사 뿐만 아니라, 의료기관, 의료팀 (간호사, 의료기사 등), 의료 소모품이 모두 필요하다. 이 중 대부분은 원조 등 물자 지원을 통해 단기간에 해결할 수도 있으나, 적절한 의사를 갖추고 양성하는 것은 단기간에 이뤄지기 어렵다. 적절한 인프라와 장비, 하물며 해부학 실습에 사용할 시신도 부족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한국을 포함한 많은 나라에서는 의대생과 레지던트들은 동물의 장기나 조직으로 수술 술기 연습을 하기도 하지만, 일부 국가에서는 종교적인 이유로 이러한 연습도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경우도 있다.

무엇보다 도제식으로 의사를 기르기 위해서는 경험 많은 선배 의사들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애시당초 숙련된 의사 수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국가에서는 기존의 방식을 통한 의료인의 배출을 기대하기가 어렵다. 즉, 새로운 방식의 수술 교육을 통한 의사 양성이 필요한 것이다.

david-lauter-operating-room중앙아프리카공화국의 한 수술방 (출처)

“전세계 외과의사의 2/3은 수술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기존의 도제식 수술 교육 방식은 규모를 쉽게 늘리기 어렵다. 그래서 우리는 VR을 활용하려고 한다” 고 샤피 아메드 박사는 이야기 한다. 스마트폰과 통신망만 있으면 전세계 누구든지 VR을 통해서 하버드나 런던의 수술 교육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결국 VR을 통해 세계적으로 수술 교육의 공간적, 시간적 제약을 무너뜨리고, 필요한 모든 이들에게 수술 교육을 제공할 수 있게끔 하는 것이다. VR 기술을 활용하면 수술이 이뤄지는 과정을 마치 수술방에서 집도의와 함께 수술에 참여하는 것처럼 구석구석 생생하게 보고 듣고 느낄 수 있다.

 

외과 수련 시간의 부족

사실 의학 교육에 대한 혁신이 필요한 것은 제 3세계 뿐만이 아니다. 의료 선진국이라고 할지라도 수술 교육에는 또 다른 문제가 있다. 미국과 유럽에서는 몇년 전부터 수련의들이 일주일에 최대 근무할 수 있는 시간에 제한이 생기면서, 외과의 수술 훈련이 충분하지 못하다는 지적이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유럽에서는 2009년부터 레지던트들이 일주일에 48시간 까지만 일하도록 제한했다. 특히 덴마크는 37 시간으로 근무시간이 가장 짧다. 이는 과도한 업무량에 시달리는 의사들의 삶의 질을 개선시키고, 이를 통해 의료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한 조치이다. 레지던트들이 야간 당직을 4-5일 지속한 이후에는 주의력과 집중력이 음주 상태만큼 나빠진다는 연구 결과도 있고, 수면 부족 상태의 외과의사는 복강경 수술에서의 민첩함이 크게 떨어진다는 보고도 있다.

하지만 이렇게 근무 시간을 제한하는 것은 외과의사들이 복잡한 수술을 훈련하고 숙달되기 어렵게 만든다는 비판도 크다. 고도의 전문성을 지닌 외과의사가 되기 위해서는 15,000-20,000 시간의 수련이 필요하다고 한다. 하지만 유럽에서의 시간 제한은 이를 위해서 턱없이 부족하다. 주당 48시간 동안 일하면, 5년의 레지던트 기간 동안 11,520 시간을 일하게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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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과 수련의의 일주일 근무 시간에 따른, 5년 간 총 훈련 시간

미국에서도 2003년부터 외과 수련의들이 주당 80시간까지만 일하게 되면서, 수술에 참여하는 시간이 절반 이하로 떨어졌다는 보고가 있다. 유럽보다 거의 2배 정도 긴 시간을 일할 수 있음에도 외과 수련의들이 복잡한 수술에 숙달되기에는 부족하다는 것이다. 한 의사가 뉴욕타임즈에 기고한 바에 따르면, 과거에 수련의들은 하루에 한 번은 수술에 참여했으나, 이제는 일주일에 세 번 들어갈 수 있으면 운이 좋은 것이라고 한다. 또한 레지던트 1년차들은 전임자들보다 수술에 대한 참여가 85% 나 줄어들었다고도 한다.

한국의 경우에도 2017년 12월부터 적용되는 ‘전공의의 수련환경 개선 및 지위 항샹을 위한 법률’ 제 7조 (수련시간 등)에 따르면 레지던트의 수련 시간은 주당 80시간으로 제한될 예정이다. 이런 전공의 특별법을 둘러싼 여러 이슈들이 있지만, 외과 수련 시간의 절대적인 부족에 관한 문제 역시 한국에서도 제기될 가능성이 높다.

이렇게 외과 레지던트들이 수술에 직접 참여하고 경험을 쌓을 수 있는 절대적인 시간이 부족한 상황에서 가상 현실을 통한 수술 훈련이 대안이 될 수 있을지 주목을 받고 있다. 언제 어디서든 VR을 통해서 수술방에 직접 들어간 것 같이 몰입적이고 현실적인 상황을 경험할 수 있으며, 다양한 수술을 반복적으로 경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시뮬레이션 수술 훈련의 필요성

실제로 시뮬레이션 수술은 레지던트들의 수술 실력을 향상시킬 수 있다. 2016년 8월 노스캘로라이나 대학의 리처드 페인즈 교수는 시뮬레이션 수술 훈련이 수련의들의 심장 수술 능력을 비약적으로 향상시킨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비록 VR 기술을 이용한 것은 아니었으나, 수술 중인 환자를 실감나게 재현한 시뮬레이터를 활용해서 레지던트들을 교육했다. 이 교육에는 램팔 시뮬레이터(Ramphal Simulator)라는 기기가 활용되었는데, 여기에는 환자의 흉부 모형 속에 돼지의 심장과 실제 심장처럼 움직이기 위한 장치, 심장과 주변의 혈류를 재현하기 위한 펌프, 심전도를 포함한 환자의 활력 징후를 모니터링 할 수 있는 장치 등이 정교하게 갖춰져 있는 장치이다.

총 110시간의 시뮬레이션 훈련을 거친 27명의 레지던트들은 심폐 바이패스(cardiopulmonary bypass), 관상동맥 우회로 조성술(coronary artery bypass grafting), 대동맥판치환술(aortic valve replacement) 등의 수술의 평가 항목에서 거의 만점에 가까울 정도의 큰 향상을 보였다. 페인즈 교수는 이렇게 의도적으로 고안된 집중적인 훈련이 외과 수술 역량 향상과 숙련된 의사를 길러내기 위해 도움이 될 것이라고 언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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램팔 시뮬레이터(Ramphal Simulator)(출처: 워싱턴 대학교)

무엇보다 수술방에서와 달리 시뮬레이션 환경에서는 실수가 허용된다. 즉, 배우다가 실패했을 경우 부족한 점을 보완하여 새롭게 훈련을 받을 수 있다. 이는 레지던트에게 테크닉을 보완하고 자신감을 얻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수 있었던 것이다. 실제로 이 연구에서는 시뮬레이션 상황에서의 반복 훈련과 수술 실력 향상에는 명확한 상관관계가 있었다. 즉, ‘수술방 밖의’ 훈련을 통해서 수술 부작용이나 의료 사고를 줄이고, 환자들의 치료 결과도 좋게 할 수 있는 것이다.

페인즈 박사는 “농구팀이 별도의 훈련 없이 시합만 계속 뛰면서, 경기 중에 기술을 향상시키려고만 한다면 훌륭한 팀이 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외과 의사의 도제식 모델에서는 여전히 그런 방식으로 레지던트를 교육하고 있다” 고 언급하기도 했다.

이러한 시뮬레이션 교육은 레지던트 뿐만이 아니라, 이들과 함께 수술방에서 집도하는 교수들에게도 득이 되었다. 앞선 연구와 함께 출판된 또 다른 연구에서는 시뮬레이션 수술 훈련이 교수와 레지던트 사이의 상호신뢰(rapport)의 형성에 도움이 되었다고 이야기한다. 연구에 참여한 교수는 “레지던트는 나에게 자신이 해당 수술의 절차와 원칙을 숙지하며, 충분한 스킬이 있음을 증명했다. 수술방에 들어갔을 때 나는 이미 그 레지던트에 대한 확신이 있는 상태였다” 고 이야기 했다.

이 연구들에서는 VR이 아닌, 환자의 정교한 모형을 통해서 수술 상황을 시뮬레이션 했다. 만약 VR이 이렇게 환자의 상태를 실감나게 재현할 수 있다면 수술 훈련을 위해 효과적으로 활용될 가능성이 있다.

 

가상현실을 통한 수술 트레이닝

뉴욕과 런던에 사무실을 둔 의료 스타트업 터치 서저리(Touch Surgery)는 이렇게 VR 환경에서 수술을 교육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이 회사는 스마트폰이나 태블랫 컴퓨터를 통해 다양한 수술을 훈련할 수 있는 을 제공하고 있다. 이 ‘모바일 수술 훈련’ 앱을 통해 흉부외과, 정형외과, 안과, 성형외과, 신경외과 등 다양한 진료과의 100여 가지의 수술의 과정을 3D 이미지와 터치스크린을 통해서 배울 수 있다.

3D로 제공되는 환자의 해부학적 구조는 상당히 자세하고 사실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또한 심폐바이패스(cardiopulmonary bypass) 수술부터 손 이식 수술까지, 제공되는 수술의 종류도 다양하다. 특히, 수술 동영상을 보듯이 단순히 수술의 진행을 수동적으로 관찰만 하는 것이 아니라, 특정 부위를 언제 어떻게 절개하고, 어떤 수술 도구를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를 단계별로 터치 스크린을 통해서 능동적으로 배울 수 있다는 것이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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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수술 방법을 숙지한 이후에는 테스트 모드를 통해 다른 사람의 도움이나 힌트 없이 직접 수술을 진행하는 것처럼 각 단계에 대한 의사결정을 직접 내리면서 배운 것을 점검해볼 수 있다. 이 앱 역시 의사들이 수술방에 들어가지 않아도 언제 어디서든 새로운 수술 기법을 배우거나, 과거에 배웠던 수술에 대해서 복습할 수 있다는 것을 장점으로 내세우고 있다. 앱은 무료이며, 의사뿐만 아니라 누구든 스마트폰으로 이용해볼 수 있다. 이 앱은 벌써 세계적으로 100만 번의 다운로드를 기록하고 있다.

사실 이 회사의 공동 창업자인 진 네흠(Jean Nehme)과 안드레 초우(Andre Chow)은 모두 외과의사이다. 진 네흠은 터치 서저리의 앱을 통해 외과 수련의들이 부족한 수술 훈련을 보충할 수 있으며, 수술에 앞서 더 자신감을 가질 수 있을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앱에서 제공되는 각종 수술 교육 과정들은 하버드, 스탠퍼드를 비롯한 등 일류 외과 의사들과 함께 만들어진다. 실제로 하버드, 존스홉킨스, 클리블랜드 클리닉 등 여러 유명 병원에서는 이 앱을 레지던트의 교육 커리큘럼으로 활용하고 있기도 하다. 각 레지던트가 이 앱을 통해서 수술을 얼마나 미리 숙지했는지, 테스트에서 몇점을 받았는지 등을 대쉬보드를 통해서 확인하고, 특정 수술에 점수가 낮은 레지던트는 따로 관리할 수도 있다.

존슨앤존슨의 자회사 중 수술 도구를 만드는 에티콘(Ethicon)은 이 앱을 자사의 수술 도구 사용법 훈련을 위하여 사용하기로 했다. 이러한 앱이 수술 기법의 교육에 효과적이라는 또 하나의 근거다.

사실 터치 서저리는 아직 VR 이라기 보다는 3D 시뮬레이션에 가깝다. (회사의 직원 중에는 픽사에서 ‘니모를 찾아서’ 를 제작했던 엔지니어도 있다) 아직은 VR 헤드셋을 활용하지도 않고, 수술방에서의 360도 시야를 제공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2016년 2월 터치 서저리는 대표적인 가상 현실 기기인 오큘러스 리프트를 활용하여 가상 수술방을 구현하겠다고 발표했다. 현재 앱으로 제공되는 환자의 모델을 VR로 가상 수술방에서 구현하고, 이를 통해 수술 교육을 할 수 있다면 더욱 효과적일 것이다.

 

환자의 3차원 모델링

수술의 시뮬레이션을 위해서 VR과 결합될 수 있는 또 다른 기술은 수술할 환자의 해부학적 구조를 3D 모델링하는 기술이다. 일반적인 임의의 환자 모델이 아닌, 며칠 뒤 직접 수술할 특정 환자의 3차원 모델을 만들고 VR을 통해서 분석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프랑스의 비지블 페이션츠 (Visible Patients)라는 회사는 CT나 MRI 같은 2차원 영상 이미지를 바탕으로 3차원적인 환자의 이미지를 생성해주는 일을 한다. CT, MRI 와 같은 영상의료 데이터는 기본적으로 3차원적인 환자의 신체를 단면으로 가르지르는 2차원적인 영상으로 나타낸 것이다. 그 과정에서 정보의 손실이 있을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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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의 해부학적 구조를 정확하게 이해하는 것은 수술을 준비하고, 수련의를 교육하기 위한 기본적인 요소이다. 예를 들어, 간암 절개나, 간 이식 등의 수술을 위해서는 해당 환자의 간을 해부학적으로 파악하는 것이 필요하다. 현재 의사들은 CT나 MRI 등의 2차원적 이미지를 보고서 환자의 상태를 파악하고 수술 계획을 세운다. 이런 이미지들은 종양이나, 혈관, 담관 등에 대한 정보를 가지고 있지만, 정교한 수술 계획을 세우거나, 희귀한 사례일 때, 학생들을 교육하거나, 혹은 환자에게 수술에 대해 설명하기 위해서는 2차원 이미지만으로는 부족할 수 있다.

이런 경우에 환자의 장기 등 해부학적 구조를 3차원 모델로 만드는 것이 도움이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CT나 MRI 등을 기반으로 환자의 3차원 모델을 만들어 놓고, 장기를 투명하게 보면서 내부에 숨어 있는 혈관이나 종양의 위치를 손쉽게 파악할 수도 있다. 3차원 컴퓨터 그래픽으로 만들어진 환자의 장기 등을 이리저리 돌려보고, 확대해보며, 각각의 구조를 분리해서 보거나, 절개한 단면을 볼 수도 있다. 이를 통해 동료 의사와 수술 계획을 의논하거나, 환자에게 질병의 상태나 수술 방법에 관해 설명하기도 편리하다.

비지블 페이션츠는 2009년부터 2013년까지 간암, 간경변, 담관암 수술 등 800여건의 수술에 활용되었으며, 2015년 11월에는 FDA 인허가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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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의 ‘디지털 휴먼’ 분야에서 사용되는 3차원 모델링 기술은 사람의 피부나, 머리카락, 눈썹 등의 세부적인 움직임과 질감을 현실과 구분이 어려울 정도로 실감나게 구현한다. 또한 얼굴의 일부를 당기거나 눌렀을 때 안면 근육과 피부가 수축되고 이완되는 반응도 정교하게 만들 수 있다.

이처럼 환자의 해부학적 구조를 단순히 3차원적으로 만드는 것에서 더 나아가 각 장기나 혈관, 담관 등의 질감이나 움직임, 이를 만지거나 절개했을 때의 형태와 출혈이 있는 상황까지 실제와 같이 구현하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한 단계 더 나아가자면, 심박수나 혈압의 변화 등의 미세한 변화까지 환자 모델에 반영하고, 그 수치도 확인할 수 있다면 보다 정밀한 VR 수술 시뮬레이션이 이뤄질 수 있다.

 

햅틱 기술을 이용한 술기 훈련

하지만 단순히 VR을 통해서 수술이 진행되는 장면을 지켜보는 것만으로 외과 수련의가 수술 테크닉을 익히는 것에는 한계가 있을 것이다. 결국 수술은 눈으로 보는 것뿐만 아니라 실제 손과 수술 도구를 이용해서 절개하고, 특정 부위를 적출하거나, 봉합하는 등의 술기 훈련이 필요하기 대문이다.

샤피 아메드 박사는 인공적인 촉각을 만들어내는 햅틱 장갑 등을 통해서 향후 이러한 기능까지도 가능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사실 외과 분야는 게임, 항공 시뮬레이션 등과 함께 햅틱 기술이 활용될 것으로 예상되는 대표적인 분야 중 하나이다. 시각적으로는 VR을 보면서, 손으로는 실제 피부나 장기를 조직을 만지는 것 같은 촉감을 전달할 수 있으면 수술 시뮬레이션이 용이할 것이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현재의 햅틱 기술로 수술 시뮬레이션을 위한 촉감적인 기능까지 완벽하게 구현하는 것은 쉽지 않은 것 같다.

하지만 립 모션 (leap motion) 등의 동작 인식 컨트롤러를 이용하면 이러한 부분을 제한적이나마 구현 가능할 수 있다. 립 모션은 키보드나 마우스 없이 손동작만으로 컴퓨터를 조정할 수 있는 인터페이스로,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 에서 톰 크루즈가 손동작만으로 컴퓨터를 제어하던 모습을 떠올려보면 쉬울 것이다. 립 모션은 적외선광과 전하결합소자 카메라를 이용해 그 반사파로 손동작을 감지한다.

일반적인 컴퓨터 화면도 립모션으로 조작할 수 있지만, 무엇보다 기대되는 것은 VR 과의 접목이다. VR 헤드셋을 쓰고 가상 현실에 더 몰입하기 위해서는 조이스틱 등을 잡는 것이 아니라 현실처럼 손을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어야 하고, 그것이 VR 속의 환경에도 그대로 반영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특히 립모션은 열 개 손가락을 초당 290 프레임의 속도로 1/100 mm 단위의 미세한 움직임까지 인식하므로, 수술과 같은 정교한 동작도 구현 가능할 것으로 기대해볼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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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넘어야 할 산들

지금까지 VR 기술이 의학 교육과 수술 시뮬레이션에 활용될 가능성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VR을 활용하면 전세계에 누구라도 마치 수술이 진행되는 수술방에 있는 것처럼 중계도 할 수 있으며, 수술 시뮬레이션을 통해서 외과 의사들의 수술 훈련이나 수술 계획 수립에 활용될 수도 있다. 수련 의사들은 언제 어디서나 이를 활용해서 역량을 키울 수 있으며, 수술방에서와는 달리 압박감과 실수에 대한 두려움 없이 기술을 향상시킬 수 있다.

하지만 VR이 수술에 활발하게 사용되기 위해서는 기술적으로나 산업적으로 넘어야 할 산도 많다. 무엇보다 실제와 같이 환자를 재현하고, 수술 시뮬레이션을 하기 위해서는 그래픽 및 햅틱 기술에서 더 많은 발전이 있어야 한다. 비용적인 측면도 무시할 수 없다.

또한 이렇게 개발된 VR 시스템을 통해서 외과의가 습득한 수술 기술이 실제 수술방에서의 역량 발전으로 이어진다는 근거도 필요하다. 복강경 수술(laparoscopic surgery)을 위한 수술 시뮬레이터의 경우 이러한 근거가 도출되고 있다.

흔히 수술이라고 하면 배나 가슴을 열어서 직접 장기를 만지는 것을 상상하기 쉽다. 하지만 최근 수술은 개복을 하는 것보다, 환자의 몸에 칼을 최대한 적게 대는 최소 침습 수술 (MIS, Minimally Invasive Surgery)로 발전하고 있다. 즉, 복강경 수술이나 로봇 수술과 같은 경우에는 작은 구멍 몇개만 만들어서 수술 기구와 카메라 등을 넣어서 수술을 진행한다.

dw-laparoscopic-appendix-surgery-and-open-surgery개복 수술과 복강경 수술의 차이

최소 침습 수술의 경우 개복 수술에 비해 수술 후 통증도 적고, 입원 기간도 짧으며, 당연히 흉터도 적다. 하지만 수술 부위를 전부 열지 않기 때문에 수술 공간이 좁고, 수술 시야 확보도 제한적이다. 또한 손이 아니라 긴 수술 기구를 삽입하여 수술하므로 수술 기구의 조작법에도 익숙해져야 한다. 또한 직접 장기를 만지지 않으므로 기존 방식에서는 촉감으로 파악할 수 있었던 정보를 얻기가 어렵다. 따라서 이에 숙달되기 위해서는 더 많은 훈련이 필요하다.

surgery-simulator-600x403수술 시뮬레이터 (출처: 미시간 대학교)

많은 병원에서는 이미 이러한 복강경 수술의 훈련을 위해 시뮬레이터를 활용하고 있다. 시뮬레이터는 수술 기구와 모니터가 달린 형태로, 내가 직접 손으로 기구를 조작하는 것이 영상 속에서 실제 어떤 움직임으로 나타나는지를 학습하는 방식이다. (과거 논문 등에는 이런 시뮬레이터를 VR로 지칭하기도 하고 있으나, 최근의 VR 기술과는 구분되어야 할 것 같다)

이런 시뮬레이터로 훈련한 의사들의 경우, 대조군에 비해서 수술 속도도 빠르며, 실수도 적고, 수술 기구의 움직임도 더 효율적이라는 것이 여러 연구 결과들로 입증되어 있다 [1, 2]. 추후 VR로 개발된 수술 훈련 시스템의 경우에도 이렇게 의사들의 수술방에서의 수술 성과 향상으로 이어진다는 근거가 필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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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헬스케어를 통해 의료를 혁신하고 세상을 더 건강하게 만들고자 하는 벤처투자자, 미래의료학자, 에반젤리스트입니다. 포항공대에서 컴퓨터공학과 생명과학을 복수 전공하였고, 동대학원에서 전산생물학으로 이학박사를 취득했습니다. 스탠퍼드 대학, 서울대학교병원 등에서 연구하였습니다. 현재 디지털 헬스케어 스타트업 전문 투자사, 디지털 헬스케어 파트너스 (DHP)를 2016년에 공동창업하였고, 대표를 맡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40여 개의 디지털 헬스케어 스타트업에 투자하였습니다. 네이처의 디지털 헬스케어 분야 자매지 『npj 디지털 메디슨』의 편집위원이자, 식약처, 심평원의 전문가 협의체 자문위원입니다. 『디지털 헬스케어: 의료의 미래』 『의료 인공지능』 『헬스케어 이노베이션』 등을 집필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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