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esday 19th March 2024,
최윤섭의 디지털 헬스케어

[칼럼] 헬스케어 스타트업에 도전한다면

**제가 매일경제신문에 연재한 칼럼입니다. 원문은 여기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필자는 최근 한 대학병원에서 주최한 헬스케어 해커톤 행사에 멘토로 참여했다. 1박2일 동안 합숙하면서 헬스케어 분야에서 상용화 가능한 아이디어를 내고, 시제품까지 만들어내는 것이 목표인 행사다. 여기에는 의사를 비롯한 개발자, 디자이너, 사업가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모여 흥미로운 사업 아이템이 도출되었다.

세상을 바꾸는 혁신적인 아이디어는 스타트업 기업에서 나오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다른 여타 분야와는 달리 헬스케어는 고유의 특수성이 존재한다. 그 특수성을 이해하지 못한 채 장밋빛 미래만을 보고 덤볐다가는 크게 실패할 수도 있다. 참가자들에게 했던 조언 몇 가지를 이야기해보겠다.

첫 번째 조언, 고객이 꼭 필요로 하는 제품과 서비스를 만들어라. 가장 기본적인 원칙이지만, 지키기 어려운 원칙이기도 하다. 시간과 돈을 들여서 열심히 만들고 보니, 정작 원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제품이었던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특히 헬스케어 분야에서 고객들은 실제 제품을 보기 전에는 스스로 무엇을 원하는지 모르는 경우도 많다. 이를 위해서는 본인이 가지고 있는 아이디어를 검증할 수 있는 최소완비제품을 빨리 내놓고, 시장의 반응을 바탕으로 다시 가설과 제품을 수정해나가는 ‘린 스타트업(Lean Startup) 기법’을 활용하는 것이 좋다.

어떤 고객을 타깃으로 할 것인지도 중요하다. 헬스케어 시장의 니즈는 매우 세분화되어 있다. 건강한 사람과 환자의 니즈가 다르고, 나이별로 니즈가 다르다. 성별에 따라, 체중에 따라, 가족력에 따라, 문화권에 따라서도 달라질 수 있다. 한정된 자원을 가진 스타트업의 경우 모든 고객을 만족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그중에서 가장 절박한 니즈를 가지고 있고, 우리가 그 필요를 충족시킬 수 있으며, 지불 의사가 있는 고객을 집중적으로 공략해야 할 것이다.

셋째, 사업 아이템은 의료 전문가도 동의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아무리 멋있는 제품이라도 과학적·의학적으로 설득력이 없다면 곤란하다. 또한 국내 의료계의 현실과 맞지 않는 서비스는 외면당하거나, 극심한 반대에 부딪힐 수 있다. 이 때문에 사업 초기부터 의료 전문가의 의견을 충실하게 반영하는 것이 중요하다. 창업팀에 의사를 합류시키는 것이 여의치 않다면, 언제든 가감 없는 조언을 구할 수 있는 의료 전문가 멘토를 두는 것이 좋다.

한국 의료 시스템의 특수성을 이해하는 것의 중요성도 빼놓을 수 없다. 한국의 의료는 의료 접근성, 건강보험 체계, 의료 수가, 의료 서비스 전달 체계 등의 측면에서 세계의 어느 나라와도 다르다. 다른 분야라면 실리콘밸리에서 성공한 아이템을 그대로 벤치마킹해서 국내로 가져오더라도 성공할 수 있다. 하지만 의료 분야라면 미국에서는 크게 성공했던 사업이 한국에서는 수익을 얻는 것이 불가능하거나, 아예 불법일 수도 있다는 것을 명심하자.

마지막으로, 헬스케어는 규제와 밀접한 관련이 있음을 이해하자. 일단 내 아이템이 식품의약품안전처 인허가가 필요한지 알아야 한다. 의료는 사람의 생명과 직결될 수도 있는 분야이므로 위해도가 높거나, 안전·효과성의 검증이 필요한 경우 엄격한 인허가 과정을 거쳐야 한다. 하지만 인공지능 등 새로운 기술이 접목된 많은 분야의 경우 어디까지가 규제 대상이며, 얼마나 엄격한 인허가 과정이 필요한지 모호한 경우가 많다. 이는 사업자와 규제기관 양측이 서로를 설득하면서 보다 나은 해결책을 함께 만들어가는 과정이 필요하다. 사업 아이템의 규제 여부가 모호하다면 사업 기획 초기부터 식약처 담당자의 의견을 들어보는 것도 좋다.

물론 이 조건을 모두 지킨다고 해서 성공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러한 최소한의 원칙을 지키지 못한다면 실패할 확률이 비약적으로 높아질 것이라는 점은 장담할 수 있다. 아무쪼록 국내에서도 세상을 바꿀 수 있는 혁신적인 헬스케어 스타트업이 많이 등장하길 기대해본다.

About The Author

디지털 헬스케어를 통해 의료를 혁신하고 세상을 더 건강하게 만들고자 하는 벤처투자자, 미래의료학자, 에반젤리스트입니다. 포항공대에서 컴퓨터공학과 생명과학을 복수 전공하였고, 동대학원에서 전산생물학으로 이학박사를 취득했습니다. 스탠퍼드 대학, 서울대학교병원 등에서 연구하였습니다. 현재 디지털 헬스케어 스타트업 전문 투자사, 디지털 헬스케어 파트너스 (DHP)를 2016년에 공동창업하였고, 대표를 맡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40여 개의 디지털 헬스케어 스타트업에 투자하였습니다. 네이처의 디지털 헬스케어 분야 자매지 『npj 디지털 메디슨』의 편집위원이자, 식약처, 심평원의 전문가 협의체 자문위원입니다. 『디지털 헬스케어: 의료의 미래』 『의료 인공지능』 『헬스케어 이노베이션』 등을 집필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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