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ursday 28th March 2024,
최윤섭의 디지털 헬스케어

인공췌장과 인공지능을 통한 개인 맞춤형 혈당 관리

지난 9월 28일 FDA가 최초로 인공췌장 (artificial pancreas) 기기를 승인했습니다. 14살 이상의 제 1형 당뇨병 (소위 소아당뇨병) 환자에 대해서, 메드트로닉의 MiniMed 670G 라는 기기가 허용된 것입니다.

인공췌장은 말 그대로 인슐린의 조절을 분비하는 췌장의 역할을 자동적으로 할 수 있는 기기입니다. 특히 췌장 기능의 문제로 인슐린이 전혀 분비되지 않는 제 1형 당뇨병 환자의 경우, 평생동안 혈당을 측정하며 인슐린의 자가주사로 혈당을 관리하며, 저혈당/고혈당증의 부담을 안고 살아가야 합니다. 만약 인공췌장을 통해 인슐린 분비를 자동으로 안전하게 조절할 수 있다면 이런 환자들의 삶을 극적으로 개선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당뇨병 환자들의 성배

일반적으로 인공췌장은 혈당 수치를 지속적으로 측정할 수 있는 연속혈당계(CGM), 혈당 변화에 따라서 인슐린의 주입량을 결정하는 알고리즘, 실제로 인슐린을 주입하게 되는 인슐린 펌프, 배터리 등으로 구성됩니다. 사실 이러한 연속 혈당계, 인슐린 펌프들은 이미 규제기관의 허가를 받아서, 환자들이 활발하게 사용하고 있는 기기들입니다.

특히, 환자의 복부에 센서를 삽입하여 지속적으로 혈당을 측정하는 연속혈당계(CGM)는 손가락에서 피를 내는 표준적 혈당 측정법인 자가혈당측정계(self-monitoring of blood glucose, SMBG)를 대체해나갈 것으로 예상되기도 합니다.

기존에 연속혈당계는 자가혈당측정계에 보조적으로만 사용되었습니다만, 최근 FDA의 Clinical Chemistry and Clinical Toxicology Devices Panel 은 Dexcom의 연속혈당계 G5가 안전 (8:2), 효과 (9:1), 위험 대비 효용 (8:2) 등의 측면에서 기존의 SMBG을 완전히 대체할 수 있다고 결론을 내리기도 했습니다. 위원회의 이러한 결정은 우선 지난 몇년 간 Dexcom 등 CGM의 기술이 크게 발전한 것을 반영합니다. Dexcom G5의 혈당 수치는 SMBG와 약 9% 정도의 차이가 날 수 있다고 합니다. 사실 여러 회사의 SMBG 들 간에도 혈당 수치에 4-9%의 상대적인 차이가 난다는 것을 감안하면 매우 정확한 것입니다.

하지만 환자들의 성배와 같은 ‘인공췌장’ 은 많은 임상 연구만을 거듭할 뿐, 상용화되지는 않아서 최근까지 환자들을 희망고문(?) 하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사실 2004년부터 최근까지 수십 편에 달하는 임상 논문들이 나왔는데요, 최근에는 대규모 연구에서 인공췌장의 효과성에 대한 긍정적인 결과들이 나오면서 인공 췌장의 출시에 대한 기대가 높아지고 있던 상황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2015년 11월 NEJM 에 개제된 논문은 실제 일상 생활 속에서 인공췌장을 사용하는 것도 당뇨병 환자의 혈당 관리에 효과적임을 성인 환자 33명, 소아/청소년 환자 25명을 대상으로 보여준 적이 있습니다. 아래의 그림을 보면 야간 혈당이 인공췌장 (closed loop)을 사용한 군이 대조군에 비해서 적정 수준으로 유지되며, 환자가 저혈당증을 겪는 환자(동그라미)도 인공췌장을 쓰는 경우에 크게 줄어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nejmoa1509351_f2인공췌장 그룹이 대조군보다 야간 혈당이 낮게 관리되며, 저혈당증도 크게 줄어듬 (NEJM 2015)

뿐만 아니라, ‘인공췌장이 곧 나온다’ 는 말만 믿고 수년간 무작정 기다려왔던 당뇨병 환자들은 스스로 DIY 인공췌장을 만들어서 사용하고 있기도 합니다. OpenAPS 는 기존의 연속혈당계-인슐린펌프-외장배터리를 라즈베리 파이로 연결해서 DIY 인공췌장을 만들고, 이 제조법을 무료 오픈소스로 배포하여 미국을 중심으로 당뇨병 환자 커뮤니티에서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인공췌장, 사상 최초 승인

이러한 상황에서 메드트로닉의 MiniMed 670G 가 최초로 제 1형 당뇨병 환자에 대해서 승인된 것입니다. 이 승인은 14세 이상의 제 1형 당뇨병 환자 123명을 대상으로 진행된 임상 시험 결과를 근거로 한 것입니다. 3개월의 추적 관찰 결과 당화혈색소(A1c) 수치가 7.4%에서 6.9%로 유의미하게 개선되었으며, 당뇨병성 케톤산증(diabetic ketoacidosis (DKA)), 저혈당증 등의 심각한 부작용이 이 기간 동안 발생하지도 않았습니다.

FDA는 이번 인허가의 일부분으로 이 기기의 시판 이후에도 실제 환자들이 사용하면서 (real-world setting) 안전성에 대한 추가적인 모니터링이 필요하다는 입장입니다. 또한 하루 8단위(unit) 이하의 인슐린을 투여해야 하는 6세 이하의 당뇨병 환자들에게는 안전성이 충분히 검증되지 않은 것으로 보았습니다. 메드트로닉은 향후 7-13세의 당뇨병 환자들에 대해서 이 인공췌장의 효과성과 안전성을 추가적으로 검증하겠다는 계획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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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드트로닉의 MiniMed 670G

 

인공췌장의 6단계

사실 인공췌장이라고 하는 것도 여러 단계로 나뉠 수 있습니다. JDRF 는 인공췌장은 혈당 측정 및 인슐린 주입의 자동화 정도, 저혈당증/고혈당증의 측정 및 예측 기능, 혈당의 유지 범위에 따라서 아래와 같이 6단계로 나누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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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tep 1: 혈당 수치가 미리 정해놓은 기준까지 낮아지면, 인슐린 주입을 멈춤
  • Step 2: 사용자의 혈당이 기준치까지 낮아질 것을 ‘예측’하여, 인슐린 주입을 미리 멈추거나 줄인다. 예측적 저혈당 방지 시스템(a predictive low glucose suspend system) 이라고도 부른다.
  • Step 3: 저혈당증 뿐만 아니라, 고혈당증을 최소화한다. 즉, 혈당이 기준치 이하로 너무 낮아지는 것뿐만 아니라, 기준치 이상으로 너무 높아지는 것도 막는다.
  • Step 4: 특정 범위 내에 혈당을 유지하는 것(예를 들어, 70 and 180 mg/dL) 에서 더 나아가, 특정 혈당 수치를 유지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Hybrid closed-loop product 라고 부른다.
  • Step 5: Step 4 에서 더 나아가, 식전의 별도 인슐린 주입까지도 자동화한다.
  • Step 6: 혈당을 낮추는 인슐린 뿐만 아니라, 혈당을 높이는 글루카곤과 같은 추가적인 호르몬도 조절하여 실제로 체내 혈당 수치 조절 메커니즘을 모방한다. 환자가 수면 중에 저혈당에 빠지는 것 등을 막기 위하여 특히 유용하다.

이 구분에 따르면, 이번 MiniMed 670G 는 hybrid closed loop system 으로 Step 4에 해당합니다. 즉, 혈당을 특정 범위가 아닌, 120 mg/dL 으로 유지하는 것이 목표라고 공식 페이지에 명기되어 있습니다.

이 MiniMed 670G는 아직 여러 한계점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일단 hybrid 라는 표현이 들어가는 것은 완전히 자동화된 시스템은 아니라는 의미로 봐야할 것 같습니다. 즉, 식사 전에는 탄수화물 섭취량에 대해서 수동으로 입력해야 하며, 자가혈당측정계(self-monitoring of blood glucose, SMBG)로 피를 내고 혈당 수치를 측정하여 연속혈당계를 calibration 하는 과정을 여전히 거쳐야 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MiniMed 670G의 구성 요소 중의 하나는 연속혈당계 센서인데, 메드트로닉의 기존 기기인 Guardian Sensor3 를 사용합니다. 센서의 사용 기간은 일주일로 이를 교체하여 지속적으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적지 않은 비용이 들어갑니다. 제 주변 전문가 분들에 따르면, 이 시스템 전체의 가격이 약 800만원, 한 달 유지비는 40만원 정도로 상당히 고가일 것이라고 합니다. 국내에서는 여러 이유로 일단 빠른 시일 내에 보험 수가의 적용을 받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는 것이 중론입니다.

제가 최근에 Stanford Medicine X 에서 만난 OpenAPS 프로젝트의 리더 Dana Lewis 는 ‘의료기기 회사의 인공췌장이 정식으로 출시된다면 DIY 인공췌장은 어떻게 될 것인가?’ 하는 제 질문에, 설사 향후 인공췌장이 출시되더라도 가격이 너무 비쌀 것이기 때문에, 여전히 DIY 인공췌장은 환자들에게 매력적인 옵션으로 남을 것이라고 이야기 한 바 있습니다.

 

인공췌장+IBM Watson = Sugar.IQ

그런가하면, 메드트로닉은 IBM Watson 과 협업하여 인공지능을 통한 혈당 관리 서비스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IBM Watson Health 는 기존 헬스케어 시장의 제약회사, 의료기기 회사, 데이터 관리 회사 등을 인수하거나 파트너십을 맺고 Watson 중심의 헬스케어 생태계를 확장해나가고 있는데요. 그 생태계에 포함되어 있는 대표적인 회사 중의 하나가 메드트로닉입니다.

두 회사는 올해초 CES에서 메드트로닉의 연속혈당계로 측정한 혈당의 변화를 Watson 을 통해 분석하여 저혈당증을 3시간 까지도 미리 예측할 수 있음을 600명의 익명 환자를 대상으로 내부적으로 검증했다고 발표한 바 있습니다. 당시에 구체적인 데이터나, 연구에 대한 사항은 밝히지 않았는데요.

며칠 전 산타 클라라에서 열린 Health 2.0 에서 발표된 바에 따르면 메드트로닉은 이번 인공췌장과 결합될 수 있는 기능을 Watson 과의 협력으로 개발하고 있습니다. Sugar.IQ 라는 이 앱은 사용자의 음식 섭취와 그에 따른 혈당 변화, 인슐린 주입 등의 과거 기록을 바탕으로, 이제 그 특정 사용자의 혈당이 어떻게 변화할지를 Watson 이 예측해주는 방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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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뇨병 환자가 가장 궁금해하는 것은 “지금 당장 내가 인슐린을 얼마나 주입해야 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사실 혈당의 변화를 정확하게 예측하고, 인슐린 필요량을 계산하기 위해서는 이외에도 여러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수면 상태, 현재 스트레스 정도, 다른 질병의 유무 등등이 모두 작용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데이터를 음식 섭취 기록, 혈당 변화 등과 함께 Sugar.IQ 에 계속 축적시켜 나가면, 개별 환자 맞춤형 혈당 변화 예측 정확도는 더 높아질 것입니다.

 

개인 맞춤형 혈당 관리의 의미

이렇게 인공지능을 통한 ‘개인 맞춤형 혈당 관리’의 의미는 매우 큽니다. 기존의 방식으로는 개인 환자별 혈당 변화의 예측이 어려우며, 이를 위해서는 개인별 데이터 기반의 인공지능의 분석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당뇨병 환자들은 개별 식품의 혈당지수, 탄수화물 함량을 기반으로 식후 혈당 변화 (PPGR)을 판단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2015년 Cell 에 발표된 논문, ‘Personalized Nutrition by Prediction of Glycemic Responses’ 은 800명 규모의 코호트를 기반으로 개인마다 동일한 음식물에 대해서도 혈당 변화가 매우 다양한 반응을 보이며, 때로는 같은 음식에 대해서 정반대의 혈당 변화를 보인다는 것을 보여줬습니다.

아래의 그림의 B 패널에서는 글루코즈, 빵, 빵&버터, 프럭토즈 등의 다양한 음식에 대해서 사람별로 혈당의 변화가 다양하게 분포함을 알 수 있습니다. C 패널에서는 빵에 대한 식후 혈당 변화이 4명의 환자 (67번, 663번, 637번, 358번) 중 어떤 환자는 200 mg/dl 이상으로 높아지기도 하고, 어떤 환자의 경우에는 별다른 변화가 없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특히, E, G 패널을 보면 빵, 바나나, 쿠키 같은 음식에 대해서 두 환자의 혈당 변화가 반대로 나오기도 하는 것도 알 수 있었습니다.

ppgr-fig2동일한 음식에 대해서도 사람마다 혈당 반응이 다르며, 심지어 정반대가 되기도 함 (Cell 2015)

더 나아가 이 논문에서는 스마트폰을 이용한 식단 기록, 활동량, 연속 혈당 모니터링 (이 연구에서도 메드트로닉의 기기를 사용했습니다) 데이터를 기반으로 머신러닝을 통해 PPGR 예측 모델을 만들었습니다. 이 예측 모델이 기존의 식품 혈당 지수, 탄수화물 함량에 기반한 계산보다 PPGR 예측 정확도가 더 높으며, 이러한 모델로 개인 환자별로 혈당 조절에 ‘좋은 음식’과 ‘나쁜 음식’을 선별할 수 있다는 것까지 보여주었습니다.

메드트로닉과 IBM Watson 의 Sugar.IQ 는 이 Cell 의 논문과 거의 동일한 컨셉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식습관, 혈당변화 등에 대한 개인 환자의 과거 데이터를 바탕으로, 개인화된 혈당 변화 예측을 하겠다는 것입니다. 당뇨병 환자별로 음식에 대한 혈당 반응이 다르기 때문에, Sugar.IQ는 개인별 맞춤 혈당 예측과 인슐린 필요량을 도출할 것이고, 이는 데이터가 축적될수록 더 정확해질 것입니다.

추후 이 결과가 이번 메드트로닉의 MiniMed 670G 등의 시스템과 연동된다면, 개인 맞춤형 혈당 예측과 인슐린 자동 조절 기능까지 갖춘 진정한 인공췌장이 가능해질 것입니다.

About The Author

디지털 헬스케어를 통해 의료를 혁신하고 세상을 더 건강하게 만들고자 하는 벤처투자자, 미래의료학자, 에반젤리스트입니다. 포항공대에서 컴퓨터공학과 생명과학을 복수 전공하였고, 동대학원에서 전산생물학으로 이학박사를 취득했습니다. 스탠퍼드 대학, 서울대학교병원 등에서 연구하였습니다. 현재 디지털 헬스케어 스타트업 전문 투자사, 디지털 헬스케어 파트너스 (DHP)를 2016년에 공동창업하였고, 대표를 맡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40여 개의 디지털 헬스케어 스타트업에 투자하였습니다. 네이처의 디지털 헬스케어 분야 자매지 『npj 디지털 메디슨』의 편집위원이자, 식약처, 심평원의 전문가 협의체 자문위원입니다. 『디지털 헬스케어: 의료의 미래』 『의료 인공지능』 『헬스케어 이노베이션』 등을 집필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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