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iday 29th March 2024,
최윤섭의 디지털 헬스케어

[칼럼] 스마트폰은 이미 알고 있다 당신의 기분을

*제가 매일경제신문에 기고한 칼럼입니다. 분량 제한 때문에 다 실리지 못한 원본을 올려드립니다. 매경에 실린 칼럼은 여기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스마트폰을 어떻게 사용하는지를 바탕으로 그 사람이 아픈지를 알 수 있을까? 최근 연구 결과들에 따르면 그 사람의 스마트폰이나 소셜 네트워크를 사용하는 패턴만 보더라도 사용자의 건강 상태에 대한 많은 부분을 파악할 수 있다.

유전학의 기본 개념 중에 표현형이라는 것이 있다. 이는 우리의 DNA에 저장된 정보가 발현되어 외형적으로 나타나는 특징들을 뜻한다. 예를 들어, 키, 피부색, 곱슬머리 여부 등이 모두 표현형이며, 질병에 걸리는 것도 표현형의 일종으로 볼 수 있다.

‘이기적 유전자’로 유명한 영국의 진화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스는 또 다른 그의 저서 ‘확장된 표현형’에서 표현형의 개념을 생물 개체의 특징에 국한되지 않고, 행동 양식으로까지 확장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예를 들어, 수달이 나뭇가지를 엮어서 댐을 만들고, 새가 둥지를 틀고, 거미가 거미줄을 치는 행동 마저도 넓은 의미의 표현형으로 봐야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표현형의 개념은 오늘날에 이르러 다름 아닌 디지털 영역까지 확장되고 있다. 바로 우리가 잠시도 손에서 놓지 않는 스마트폰과 소셜 네트워크에 자기도 모르게 남게 되는 디지털화된 우리의 행동 양식들이다. 최근 발표된 네이처 논문에서는 이를 ‘디지털 표현형’ 이라고 명명했다.

우리는 언제 어디서든 스마트폰을 사용하며, 페이스북과 트위터에 글을 쓰고, 인스타그램에 사진을 올린다. 새로운 장소에 가면 GPS로 자신의 위치를 검색하여 체크인을 하고, 친구의 글과 사진에 ‘좋아요’를 누른다. 한 통계에 따르면 59%의 사람들이 화장실에서도 스마트폰을 사용하며, 55%의 사람들은 운전 중에도, 심지어 9% 의 사람들은 섹스 중에도 스마트폰을 확인한다. 이렇게 우리가 디지털 영역에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남기는 발자취는 자연스럽게 우리의 행동 양식과 신체적, 정신적 상태를 반영하게 된다.

미국 노스웨스턴 대학에서는 스마트폰을 분석함으로써 사용자가 우울증을 가지고 있는지를 86.5%의 정확도로 파악할 수 있다는 결과를 발표했다. 우울증에 걸리면 흔히 말수가 적어지고 생활이 불규칙해지는 등의 증상을 보이게 된다. 이러한 증상이 스마트폰의 사용 패턴에 고스란히 반영된다는 것이다.

 smartphone depression
우울증과 스마트폰 사용패턴에는 상관관계가 있다 (출처: JMIR)

연구진은 스마트폰의 사용 패턴 중에 통화 시간, 통화 빈도, 머무르는 장소의 다양성, 생활의 규칙성, 집에 머무는 시간 등이 우울증과 상관 관계가 높다는 결과를 얻었다. 예를 들어, 하루종일 한 두 곳의 장소에서만 시간을 보내는 사람이나, 외출과 귀가 시간이 규칙적이지 않은 사람일수록 우울증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MIT 미디어랩에서 스핀오프한 진저아이오(Ginger.io)라는 스타트업 기업은 이러한 스마트폰의 사용 패턴을 정량적으로 분석하여, UCSF, 듀크 대학 병원 등과 함께 우울증, 양극성 장애, 심장병, 당뇨병 등의 다양한 질환에 관련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더 나아가, 트위터에 작성하는 내용과 작성한 시간을 보면 불면증 진단에 도움을 줄 수 있다고 네이처 논문은 지적한다. 예를 들어, ‘잠이 오지 않는다’ 등의 내용을 트위터에 올리거나, 불면증 관련 단어에 해쉬태그를 달거나, 새벽 서너시에 글을 올리는 빈도가 늘어난다는 것이다. 이는 모두 불면증이라는 질병의 증상이 디지털화된 행동양식으로 표현된 것이다.

digital phenotype tweets 2환자들의 불면증과 관계된 트윗의 빈도 (출처: 네이처 바이오테크놀러지)

실제로 보스턴 아동병원과 다국적 제약사 MSD는 소셜 네트워크 데이터를 바탕으로 불면증 환자의 행동 양식을 연구하고 있다고 한다. 이러한 디지털 표현형을 통하면 전통적인 생물학적 지표를 이용하는 것보다 환자의 증상 변화를 더욱 빨리 발견할 수도 있을 것으로도 기대된다.

의학은 다양하고도 방대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개인화된 의료를 제공하는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다. 궁극적으로 맞춤 의료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개인의 유전적인 특징은 물론 표현형과 사회 환경적인 요소까지 포함하는 여러 차원의 데이터가 통합되어야 한다. 오늘날 우리의 생리적, 물리적 행동양식은 디지털 영역으로 확장되고 있다. 이러한 디지털 표현형은 그 사람에 대해 더 폭넓은 데이터를 제공함으로써 맞춤 의료의 구현에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About The Author

디지털 헬스케어를 통해 의료를 혁신하고 세상을 더 건강하게 만들고자 하는 벤처투자자, 미래의료학자, 에반젤리스트입니다. 포항공대에서 컴퓨터공학과 생명과학을 복수 전공하였고, 동대학원에서 전산생물학으로 이학박사를 취득했습니다. 스탠퍼드 대학, 서울대학교병원 등에서 연구하였습니다. 현재 디지털 헬스케어 스타트업 전문 투자사, 디지털 헬스케어 파트너스 (DHP)를 2016년에 공동창업하였고, 대표를 맡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40여 개의 디지털 헬스케어 스타트업에 투자하였습니다. 네이처의 디지털 헬스케어 분야 자매지 『npj 디지털 메디슨』의 편집위원이자, 식약처, 심평원의 전문가 협의체 자문위원입니다. 『디지털 헬스케어: 의료의 미래』 『의료 인공지능』 『헬스케어 이노베이션』 등을 집필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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