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nday 24th March 2024,
최윤섭의 디지털 헬스케어

디지털 기술은 임상 연구를 어떻게 혁신하는가 (3) SNS를 통한 신약 부작용 발견

한동안 뜸했던 ‘디지털 기술은 임상 연구를 어떻게 혁신하는가’ 시리즈를 다시 연재합니다. 디지털 헬스케어 기술의 발전이 크게 영향을 미칠 산업 중에 빼놓을 수 없는 곳이 제약 산업입니다. 디지털 기술은 전통적인 제약 산업의 구조를 재편하고, 그동안 제약사들이 맡아 오던 역할에도 변화를 야기할 것입니다.

과거에 제약사만이 소유했던 데이터는 이제 병원 밖에서 생산되며, 제약 산업 밖에서 새로운 경쟁자가 진입하고, 소위 ‘연결된 환자들 (connected patients)’ 들의 권한이 강화되면서 향후 제약회사가 맞이할 미래는 과거와는 크게 다를 것입니다. 이런 미래에 살아남기 위해 제약사에게는 단순한 ‘신약 이상 (beyond pill)’ 의 솔루션이 요구되고 있습니다.

디지털 기술의 변화를 정면으로 맞이하는 제약사에게 이런 변화는 위기가 될 수도, 기회가 될 수도 있습니다. 한미약품의 성공에 따라 국내 제약 업계가 다시 주목을 받고 있는 상황입니다만, 디지털 기술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글로벌 제약사에 비해 국내 회사들은 아직 준비가 부족한 것은 사실입니다.

이 시리즈가 선진 제약 업계에서는 디지털 기술을 어떻게 활용하고 있는지 이해하기 위해 도움이 되면 좋겠습니다. 지난 시리즈는 아래의 링크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1. 임상 시험을 위한 인공 지능과 소셜 네트워크
  2. 원격 임상 시험

 

“환자들의 페이스북”, 루게릭병 연구를 반박하다

온라인 플랫폼을 기반으로 진행되는 임상 의학 연구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앞서 언급한 바 있는 ‘환자들의 페이스북’ PatientsLikeMe 의 사례도 빼놓을 수 없다. 소셜 네트워크 형식의 이 공개 온라인 플랫폼에서 환자들은 자신의 질병 데이터를 익명으로 자유롭게 공유할 수 있다.

PatientsLikeMe 에 가입한 환자들은 자신이 업로드한 질병 증상, 복약 등의 데이터를 바탕으로 비슷한 질병을 경험하고 있는 다른 환자들과 커뮤니케이션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환자들 본인이 스스로 임상 연구를 주도하기도 한다. 특히 기존 방식의 느린 임상 시험 결과를 기다릴 여유가 없거나, 제약사의 주목을 받지 못하는 희귀질환 환자들, 혹은 물리적으로 임상 연구에 참여하기 어려운 사람들의 경우에 이 온라인 플랫폼은 강한 영향력을 발휘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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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소셜 네트워크를 통해 환자들이 스스로 진행한 일종의 임상 연구는 기존의 연구 결과를 뒤집기도 한다. 대표적인 사례로 PatientsLikeMe 환자들이 루게릭병 (근위축성 측색 경화증) 의 치료법으로 리튬의 복용한 자발적 임상 연구를 들 수 있다.

2008년 저명한 과학저널 PNAS 에는 소규모 임상 연구 결과, 정신분열증 약으로 사용되는 리튬의 복용이 루게릭 병의 진행을 늦출 수 있다는 것이 보고되었다. 이 연구 결과를 접한 PatientsLikeMe의 많은 루게릭병 환자들은 직접 이 리튬을 스스로 복용해보기로 결정한 것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이 커뮤니티는 루게릭병에 걸린 친동생을 위해 MIT 엔지니어들이 시작한 것으로 많은 루게릭병 환자들이 회원으로 가입되어 있다. 루게릭병은 10만명 당 1-2명에게 발병하는 희귀 질환임에도 불구하고, PatientsLikeMe에는 현재 7,500 명 이상의 루게릭병 환자들을 보유하고 있다.

스스로 리튬을 복용하는 루게릭병 환자들이 증가하자, PatientsLikeMe는 환자들이 자신의 임상 시험 결과를 기록할 수 있는 실시간 연구 툴도 제공했다. 환자들은 이를 통해 약효, 부작용, 혈중 리튬 농도 등을 기록하고 공유할 수 있었다.

환자들이 스스로 진행한 이 연구의 결과는 놀라웠다. 12개월간 리튬을 복용한 환자들의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PNAS에 보고된 바와는 달리 이 성분이 루게릭병의 진행을 늦추는데 효과가 없다는 결론을 내린 것이다. 기존의 전통적 임상 연구 결과를 반박하는 이 연구 결과는 2011년 네이쳐 바이오테크놀러지에 출판되었다. (PatientsLikeMe가 내린 결론은 실제로 이후 1억 달러가 넘는 비용을 들여서 정식으로 수백 명의 환자가 참여하면서 진행된 임상 3상의 결론과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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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처 바이오테크놀러지에 보고된 PatientsLikeMe의 결과.
리튬을 복용한 실험군과 대조군의 차이가 거의 없다.

흥미로운 것은 PNAS 연구와 PatientsLikeMe 의 임상 시험에 참여한 환자들의 숫자에 큰 차이가 있었다는 점이다. PNAS 에 보고된 소규모 임상 연구에는 총 44명의 환자가 참여했다. 이 중 실험군으로 분류되어 리튬을 복용한 환자는 16명, 대조군 환자는 28명에 불과했다. 루게릭 병이 워낙 희귀한 질환이기 때문에 환자의 모집이 어렵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놀랄만한 점은 아니다.

반면 PatientsLikeMe에서 진행한 연구의 경우, 당시 회원이었던 4천명 이상의 루게릭 병 환자들 중 348 명이 리튬을 복용하였고, 그 중 일정 기준을 충족하는 149명의 환자 데이터가 최종적으로 분석 대상이었다. 대조군으로 비교된 환자들은 447명이었다. 온라인 플랫폼을 활용한 결과 기존 연구의 약 9배에 달하는 환자가 리튬을 복용하였으며, 이를 기반으로 통계적으로 보다 의미 있는 결론을 내릴 수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온라인을 통한 환자들의 자발적인 연구 진행과 데이터 수집은 물론 많은 한계점을 가지고 있으며, 기존의 임상 연구를 대체하기는 어렵다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이러한 플랫폼을 통해 환자들은 실제 현실 속에서 약을 복용하면서 경험하는 약효와 부작용 등을 공유할 수 있으며, 이를 통해 기존 임상 연구의 부족한 부분들을 새로운 방식으로 보완할 수 있다. 

 

신약의 부작용 발견에 활용되는 SNS

특히 환자들의 온라인 커뮤니티는 신약의 부작용을 발견하기 위해 큰 가치가 있다. 제약회사는 신약을 시장에 출시하기 위해 동물에게 신약 후보물질을 투여하면서 안전성을 검증하는 전임상시험과 사람에게 투여하면서 약의 안전성과 효능을 검증하는 세 단계에 걸친 임상시험을 거치게 된다. 전세계적으로 수천명의 환자들이 참여하기도 하는 임상 3상에서도 안전성과 효능이 증명되면, 식약처나 FDA 등 규제 기관의 승인을 받고 시장에 출시되게 된다. (출시 이후를 임상 4상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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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 임상시험 단계

하지만 문제는 이러한 철저한 임상시험을 거치면서 안전성과 부작용이 검증된 약의 경우에도, 시장 출시 이후에 새로운 부작용이 발견되는 경우도 있다는 것이다. 임상 시험에서 수천명 규모의 환자를 대상으로 안전하다고 여겨졌던 신약이 출시 후 수십만, 수백만 규모의 환자들에게 투약되는 경우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부작용이 나타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0.1% 의 환자에게서 심각한 부작용이 나타날 가능성이 있다면, 임상 시험 시에 수천명에게 투여되었을 때 나타나지 않던 치명적인 부작용이 시판 후 수십, 수백만 명의 환자에게 처방될 경우에는 심각한 규모로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1994년 허가 받은 다국적 제약사 머크의 블록버스터 관절염 치료제 바이옥스가 심장질환 위험 등 증가의 부작용 발견으로 2004년 11월 퇴출된 것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퇴출 직전까지 바이옥스는 매달 250만명이 처방받는 약이었다. (여담이지만, 바이옥스의 퇴출을 주도한 것이 에릭 토폴 박사였다. 지금은 디지털 헬스케어 분야의 구루이지만, 당시에는 클리블랜드 클리닉에 재직하던 세계적인 심장전문의로 명성이 높았다)

이러한 상황에서 제약사의 부담은 더욱 증가되고 있다. 2007년 미국 의회는 제약사들이 약을 허가 시판한 이후에도 안전성에 대한 검증을 지속해야 한다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또한 미국 정부와 보험사는 제약사에게 환자 치료 결과는 개선하되 신약 개발 비용은 적절한 수준으로 유지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특히, 가격이 비싼 신약의 경우에는 임상 시험에서 뿐만 아니라, 시장에서 그만큼의 가치가 있음을 입증할 것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기존 방식 하에서는 FDA, 식약처 등의 규제기관이나 제약사가 시판 중인 약의 부작용에 대한 데이터를 수집하기 위한 방법이 마땅치 않았다. 이러한 상황에서 PatientsLikeMe 와 같은 대규모 온라인 환자 커뮤니티와 소셜 미디어의 위력이 강조되고 있다. 현재 PatientsLikeMe 에는 환자들이 자발적으로 자신들의 경험을 공유함으로써, 1,000 여개의 약에 대해서 110,000 개 이상의 부작용에 관한 보고들이 축적되어 있다.

이에 따라 제약사들은 임상 시험에서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부작용의 가능성을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서 포착하고, 더 많은 환자들이 부작용을 겪거나 대형 소송이 걸리기 전에 미리 조치를 취할 수 있다. 시판 중인 약물의 부작용에 대해서 항상 모니터링하고 있는 규제 기관에게도 이는 중요한 자료가 된다. 기존처럼 제약사, 의사들이 약의 부작용을 보고할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실시간으로 축적되는 환자들의 자료를 이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PatientsLikeMe를 통한 항우울제의 부작용 발견

PatientsLikeMe가 시판약의 부작용 조사 목적으로 사용된 사례로 항 우울제 렉사프로(Lexapro)의 사례를 들 수 있다. 시판 후 실제로 이 약을 복용한 환자들의 무려 24%가 PatientsLikeMe에 성욕 감퇴 등 성기능 관련 부작용을 경험했다고 보고한 것이다. 반면 715명의 환자군을 대상으로 한 임상 시험에서 성기능 관련 부작용은 3%의 환자에서만 보고 되었을 뿐이었다.

Screen Shot 2015-12-30 at 4.21.34 PMPatientsLikeMe에 보고된 렉사프로의 부작용 (하단)

이후 추가적인 연구에 따르면 렉사프로의 성기능 관련 부작용은 기존 임상 연구 결과보다, 시판 후 이 약을 실제로 복약했던 PatientsLikeMe 환자들의 보고와 더욱 일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119명의 우울증 환자를 대상으로 성기능 관련 부작용을 연구한 경우, 41%에 달하는 환자들에서 문제가 나타난 것이다.

이 연구에 따르면 제약사의 기존 렉사프로의 임상 시험에서는 부작용에 대해 환자들에게 ‘열린 질문’을 던졌기 때문에, 제약회사가 성기능 관련한 부작용을 제대로 포착할 수 없었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러한 사례는 PatientsLikeMe 등의 개방형 온라인 플랫폼이 신약 시판 후에 실제로 환자들이 복용한 경험을 토대로 기존 임상 시험에서 발견하지 못했던 부작용을 발견하기 위해 효과적으로 사용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렇게 환자들로부터 자발적으로 축적된 방대한 데이터를 보유하고 있다는 것 때문에 제약사들은 PatientsLikeMe와의 협력을 확대하고 있다. 과거에도 사노피, 머크 등과 협력했던 PatientsLikeMe는 2014년 제넨텍과 모든 데이터를 공유하기로 계약하기도 했다.

최근 들어서는 FDA 역시 이러한 목적으로 PatientsLikeMe 와 협력을 모색하고 있다. 2015년 6월 FDA는 시판 중인 약의 부작용에 대한 환자들의 목소리를 듣기 위한 통로로 PatientsLikeMe를 활용하겠다고 결정했다. FDA는 기존에도 MedWatch 라는 약물 부작용 보고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었지만, 환자들의 경험을 자신들이 직접 보고한 것을 듣기 위해서 PatientsLikeMe와 손을 잡기로 한 것이다.

(계속)

About The Author

디지털 헬스케어를 통해 의료를 혁신하고 세상을 더 건강하게 만들고자 하는 벤처투자자, 미래의료학자, 에반젤리스트입니다. 포항공대에서 컴퓨터공학과 생명과학을 복수 전공하였고, 동대학원에서 전산생물학으로 이학박사를 취득했습니다. 스탠퍼드 대학, 서울대학교병원 등에서 연구하였습니다. 현재 디지털 헬스케어 스타트업 전문 투자사, 디지털 헬스케어 파트너스 (DHP)를 2016년에 공동창업하였고, 대표를 맡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40여 개의 디지털 헬스케어 스타트업에 투자하였습니다. 네이처의 디지털 헬스케어 분야 자매지 『npj 디지털 메디슨』의 편집위원이자, 식약처, 심평원의 전문가 협의체 자문위원입니다. 『디지털 헬스케어: 의료의 미래』 『의료 인공지능』 『헬스케어 이노베이션』 등을 집필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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