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esday 26th September 2017,
최윤섭의 Healthcare Innovation

디지털 표현형: 스마트폰은 당신이 우울한지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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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폰은 디지털 의료 혁신의 중추입니다. 스마트폰에 부가적인 디바이스를 연결시킴으로써, 혹은 스마트폰 자체에 내장되어 있는 카메라, 마이크, 가속도계 등 각종 센서를 활용함으로써 사용자의 헬스케어 데이터를 측정할 수 있습니다. 또한, 그 자체로 뛰어난 연산능력을 가진 컴퓨터이자 커넥티드 디바이스인 스마트폰은 자체적으로 데이터를 분석하여 진단을 내리거나, 병원으로 데이터를 보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스마트폰은 그 정도에 그치지 않습니다. 우리는 잠시라도 스마트폰을 손에서 놓지 않습니다. 식탁에서, 침대에서, 지하철에서, 화장실에서 우리는 항상 스마트폰과 함께 합니다. 한 통계에 따르면, 59%의 사람들이 화장실에서도 스마트폰을 사용하며, 55%의 사람들은 운전 중에도, 심지어 섹스 중에도 스마트폰을 확인하는 사람이 9% 가까이 됩니다. 또한 58%의 사람이 스마트폰을 들여다보지 않고서는 한 시간도 버틸 수 없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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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이유로 스마트폰은 실로 우리에 대해서 많은 것들을 알고 있습니다. 스마트폰에 담겨 있는 주소록, 통화목록, 문자, 메일, GPS, 그리고 스마트폰으로 페이스북과 트위터에서 남긴 글은 우리의 삶과 행동양식에 대한 방대한 정보를 담고 있습니다.

이렇게 우리의 일상 생활 속에서 지속적으로 생산된 데이터는 병원에서 측정할 수 있는 것보다, 우리 자신에 대해서 더 방대하고도 폭넓고, 정확한 이야기를 해줄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데이터를 질병을 진단하거나 치료하기 위해서 사용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스마트폰은 당신이 우울한지 알고 있다

최근 노스웨스턴 대학에서는 스마트폰의 사용 패턴을 분석함으로써, 사용자가 우울증 증상을 가지고 있는지를 86.5%의 정확도로 파악할 수 있다연구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이 연구에는 19-58세의 자원자 28명이 참여하였습니다. 이 중 절반 정도는 우울증 증상을 보이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연구진은 총 2주간 Purple Robot 이라는 안드로이드 앱을 이용해서 사용자들을 추적 연구 하였습니다. (연구대상의 숫자가 적은 것과 추적 기간이 길지 않은 것이 이 연구의 한계점이기도 합니다)

연구진에서 이 사람들의 스마트폰 사용 패턴으로 측정한 것은 아래와 같은 항목들입니다.

  • 장소의 다양성 (Location Variance): 참가자의 GPS 위치가 얼마나 다양한지
  • 집에 머무는 시간 (Home Stay): 참가자가 다른 장소 대비 집에서 머무는 시간의 비중
  • 엔트로피 (Entropy): 장소들에서 보낸 시간의 다양성을 나타내는 지표
  • 생활의 규칙성 (Circadian Movement): 하루동안 참가자가 방문하는 장소의 순서가 일정한 정도
  • 움직인 거리 (Total Distance): 참가자가 하루동안 움직인 총 거리
  • 전화 사용 빈도 (Phone Usage Frequency): 하루에 몇번이나 전화기를 사용하는지
  • 전화 사용 시간 (Phone Usage Duration): 하루에 전화기를 사용하는 시간

특히, 이번 연구에서는 사용자가 위치한 장소를 파악하기 위해서 매 5분마다 GPS로 위치를 추적하였습니다. 그 결과 스마트폰 사용 패턴과 우울증 여부에 강한 상관관계가 발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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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석 결과 생활의 규칙성, 장소의 다양성이 특히 우울증과 상관관계가 높았으며, 전화 사용 시간, 전화 사용 빈도 역시 우울증과 유의미한 상관관계를 보였습니다.

예를 들어, 하루 종일 1-2 곳의 장소에서만 시간을 보내는 사람은 우울증일 확률이 높았으며, 생활 패턴이 일정하지 않은 사람, 즉 일정한 시간에 집에서 나가고 집으로 돌아오지 않는 사람일 수록 역시 우울증에 걸릴 확률이 높았다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스마트폰을 많이 사용하는 사람일 수록 우울할 확률이 높기도 했습니다. 우울증 증세를 보인 사람들은 스마트폰을 하루 평균 68분 사용한 반면, 정상인들은 하루 17분 정도 사용했습니다.

이 부분은 조금 의아한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우울증에 걸리면 다른 사람들과의 사회적인 관계를 맺는 것이 줄어드는 경향이 있습니다. 스마트폰을 더 많이 사용한다는 것은 오히려 사람들과 사회적인 관계를 더 많이 맺는다고 볼 수도 있지 않을까요? 이러한 경우라면, 오히려 우울증에 걸린 사람들이 스마트폰을 덜 사용해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연구진들은 각 사람들이 스마트폰으로 어떤 활동을 했는지는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사람들이 인터넷을 했는지, 게임을 했는지, 아니면 문자 등으로 다른 사람들과 커뮤니케이션을 했는지 등을 파악했더라면 더 좋았을 것입니다. 연구진은 이 데이터에 대해서, 우울한 사람들은 스트레스를 잊기 위해서나 고통스런 상황을 회피하기 위해 스마트폰을 더 많이 사용하는 것 같다고 해석하고 있습니다.

또한 참가자들의 나이 역시 고려되지 않은 점도 아쉽습니다. 젊은 사람들일수록 고령자들에 비해 스마트폰을 더 많이 활용하기 때문입니다. 2014년 닐센의 조사에 따르면 연령대별로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시간에는 적지 않은 차이가 있기 때문입니다. 18-24세는 매달 37시간을 사용하는 반면, 55세 이상의 사람들은 21시간 정도를 사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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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이번에는 여러 한계점이 있는 연구였지만, 향후 우울증 연구에 주는 시사점도 적지 않습니다. 특히, 기존의 우울증 연구에서는 수면 패턴과 활동량을 체크하지만, 이번 연구에 따르면 (단순한 활동량 뿐만 아니라) GPS로 측정한 위치 정보도 매우 중요한 요소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노스웨스턴 연구진은 이번 연구를 확대하여 120명 규모의 프로젝트를 이미 시작했다고 합니다.

 

‘Reality Mining’, not Data Mining

사실 스마트폰의 패턴으로 우울증 등의 정신 건강을 파악하려는 시도는 예전부터 있어왔습니다. 대표적으로 실리콘밸리의 선도 디지털 헬스케어 스타트업 중의 하나인 Ginger.io 가 유사한 시도를 하고 있습니다. 이 스타트업은 다름아닌 디지털 테크놀러지와 커뮤니케이션 기술의 혁신으로 유명한 MIT 미디어랩으로부터 지난 2011년 스핀오프한 회사입니다.

MIT 미디어랩의 연구자들은 (데이터 마이닝이 아닌), 소위 ‘Reality Mining‘ 을 이미 스마트폰의 사용 초기였던 2008년부터 주창한 바 있습니다. 데이터 마이닝이 대규모의 데이터에서 통계적 규칙이나 패턴을 찾아내는 것이라면, Reality Mining 은 현실 속의 데이터 속에서 규칙이나 패턴을 찾는다는 정도로 해석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MIT 미디어랩 연구자들이 이야기한 현실 속의 데이터 중의 하나는 다름아닌 스마트폰으로 측정한 사용자의 행동 양식이었습니다.

2008년 MIT Technology Review 기사에서 MIT 미디어랩 교수 Sandy Pentland는 스마트폰의 마이크와 가속도계를 사용하면 개인의 건강 관리에도 Reality Mining 을 확대할 수 있다고 언급했습니다. 예를 들어, 사람들이 말하는 방식에서 우울증을 진단할 수 있는 근거를 얻을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우울증에 걸린 사람은 말하는 패턴이나 행동 패턴에 변화가 생길 수 있으며, 이런 패턴의 변화는 친구나 가족들보다 스마트폰이 더 정확하게 알아차릴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Ginger.io

Ginger.io 는 이러한 Reality Mining 이라는 배경 하에서 만들어진 스타트업입니다. 특히, 이번 노스웨스턴 연구에서 측정한 항목보다, 스마트폰에 대해서 더 다양하면서도 세부적인 부분들을 정량적으로 측정합니다. 예를 들어, 아래와 같은 요소들입니다.

  • 문자를 얼마나 자주 하는지
  • 통화를 얼마나 오래하는지
  • 누구와 통화를 하는지
  • 얼마나 거리를 많이 이동했는지
  • 얼마나 많이 움직였는지

Ginger.io 의 방식은 이미 여러 병원이나 보험사를 통해서 우울증 뿐만 아니라, 양극성 장애, 심장 질환, 당뇨병 등의 다양한 질환과 관련해서도 연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회사측의 발표에 따르면 UCSF, Partners Healthcare, Duke Medicine, UC Davis, University of Nebraska Medical Center 등의 선도 병원들과, 미국의 대형 보험사 Kaiser Permanente 등에서 이미 Ginger.io 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 중 대표적인 곳이, 캐롤라이나와 버지니아 주에 13개의 병원을 가지고 있는 Novant Health 입니다. 이 병원들에서는 당뇨병 환자와 산후 우울증 등의 연구를 위해서 사용되고 있습니다. 특히, 사용자들이 스스로 느끼는 우울증의 정도와 Ginger.io 가 파악한 우울증 정도에 상관관계가 있는지를 파악하고 있습니다. 향후 대규모의 연구로 추가적인 증명이 필요하다는 것이 지금까지의 결론이지만, 적어도 여기에는 상당한 상관관계가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습니다.

또한 UCSF 와 McLean Hospital 에서도 Ginger.io 를 이용해서 정신과 질병에 관한 연구를 진행 중입니다. UCSF는 우울증 환자 수백명을 모집하여 온라인 연구를 수행하고 있습니다. 이 연구에는 의사와 환자가 대면하지 않고, 완전히 온라인으로만 치료가 이뤄집니다. 그런가 하면, McLean Hospital 에서는 정신분열증 환자들의 재입원률을 낮추기 위한 연구를 진행 중입니다. UC Davis 에서는 청소년 정신질환 환자들을 대상으로 Ginger.io 를 이용해서 연구를 수행하였습니다. 12개월간 120명의 청소년 환자들의 통화 패턴, 문자 메시지 패턴 등을 분석하게 되는 형식입니다.

사실 Ginger.io 는 정신질환 이외의 다양한 질병에도 응용되고 있습니다. UCSF와 Duke 에서는 환자들의 수술 후 회복을 모니터링하기 위해서도 활용되고 있으며, 이와 별개로 UCSF는 심장 질환 환자들을 관리하기 위한 연구도 수행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스마트폰을 사용해서 사용자의 행동을 분석하는 것은 기존 방식에 비해 여러 장점이 있습니다. 특히, 스마트폰은 원래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기기이기 때문에, 사용자 모니터링을 위해 별도의 기기를 새롭게 사용해야 하거나, 추가적인 검사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입니다. 현재 웨어러블 디바이스의 가장 큰 한계점 중의 하나가 낮은 engagment, 즉 사용자들이 지속적으로 사용하는데 실패하는 것임을 고려한다면, ginger.io 와 같은 서비스의 장점이 명확합니다.

즉, 스마트폰은 이미 우리 삶 속에 깊숙히 들어와 있으므로, 이러한 ‘수동적 모니터링 (passive monitoring)’ 방식은 사용자에게 별도의 동기부여가 필요하지 않습니다. 반면 사용자의 통화 상대, 시간, 빈도 등을 자동으로 수집하고 분석한다는 것은 한편으로 개인 프라이버시 문제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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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inger.io 어플리케이션

 

사람의 목소리에서 감정을 읽는 앱

그런가 하면, 알고리즘을 통해 사람의 목소리에서 직접 감정을 읽기 위한 시도도 있습니다. 앞선 Ginger.io 의 사례가 감정 변화에 따라서 스마트폰에 나타나는 행동양식의 변화를 간접적으로 인지하려는 시도라면, 이는 더 직접적인 접근 방식입니다.

사실 컴퓨터가 사람의 말을 이해하기 위한 연구는 예전부터 수행되어 왔습니다. 예를 들어, Siri 같이 음성으로 표현된 언어를 인지하거나, 이를 텍스트로 변환하기 위한 연구가 대표적입니다. 하지만 음성에 담긴 언어를 인지하고 글자로 옮겨적는 것보다, 그 목소리와 말투에 담긴 상대방의 감정을 이해하는 것은 더욱 어려운 일입니다. 사람이라면 본능적으로 이러한 능력을 가지고 있지만, 컴퓨터에게 비언어적인 감정을 이해하는 능력을 부여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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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yond Verbal 의 어플리케이션, Moodies

이 분야에서 가장 두각을 나타내는 곳은 이스라엘의 Beyond Verbal 이라는 스타트업입니다. 이 회사의 Moodies 라는 스마트폰 어플리케이션은 사람의 목소리와 억양 등을 분석하여 사용자의 감정을 읽어냅니다. 이 알고리즘은 300가지 인간의 감정을 크게 20가지의 그룹으로 나누어서 인지합니다. 예를 들어, 우울함, 기쁨, 공격적인 등의 감정을 이해하는 것입니다.

매 20초 분량의 목소리에서 감정을 읽게 되는데, 말의 내용이 아니라 억양, 톤, 타이밍, 성량과 같은 비 언어적 요소를 분석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알고리즘은 언어에 상관 없이 효과적으로 작동하며, 30개국 이상의 언어에 대해 성공적으로 테스트 하였다고 합니다.

Beyond Verbal은 이 ‘Emotional Analytics’ 기술을 지난 18년 동안, 30개국의 7만 종류 이상의 목소리에 대해서 연구했습니다. 사람의 감정 상태라는 문제의 자체의 복잡성 뿐만 아니라, 마이크와 녹음의 퀄리티, 잡음 등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현재 80% 이상의 정확도를 보이고 있다고 합니다. 현재 Beyond Verbal 은 클라우드 기반의 API 로 유료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으며, 아이폰/안드로이드 폰에서도 Moodeis 어플리케이션이 다운로드 가능합니다.

 

기계가 사람의 감정을 이해한다면?

사람의 목소리에서 감정을 읽을 수 있다면 그 활용 분야는 실로 무궁무진할 것입니다. 단순히 콜센터에서 불만에 가득찬 고객의 목소리를 자동으로 인지할 수도 있을 뿐만 아니라, 마케팅 담당자, 채용 담당자, 유권자 등이 상대방의 목소리에서 감정, 성격적 특성, 거짓말 여부 등을 읽어내기 위해서 활용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민생을 살리겠습니다!”).

소위 ‘썸’을 타거나 ‘밀당’을 하는 남녀 사이에서도 목소리에 숨겨진 진짜 감정을 파악하기 위해서 사용도 가능할 것입니다 (“라면 먹고 갈래?”). 혹은 자동차에서 운전자와 동승자들의 대화 분석을 통하여, 감정의 변화나 피로에 따라 안전 운전을 위한 조치를 자동차 스스로 취할 수도 있습니다.

더 나아가서는 기계와 인간이 의사소통을 하기 위한 가장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한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인간이 말을 할 때에는 때로 실제 감정을 표현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람 사이에서는 이를 표정, 태도, 억양 등의 비언어적인 요소에서 눈치껏 파악하는 것이 매끄러운 의사소통에 큰 역할을 합니다.

컴퓨터가 단순히 언어의 내용 뿐만 아니라, 기저에 깔린 감정까지 이해할 수 있다면 기계가 보다 인간다워지기 위해 큰 장애물을 넘어서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애플의 시리(Siri)가 인간의 말과 그 속에 담긴 의도와 감정까지 이해하는 것을 상상해볼 수 있습니다.

moodies wsj_Moodies 앱의 작동 방식 (출처: WSJ)

뿐만 아니라, 이 기술은 헬스케어 분야에도 활용도가 높아보입니다. 비록 Beyond Verbal 이 정신 건강 영역에 집중하고 있지는 않지만, 목소리에서 슬픔, 우울함, 피로, 외로움 등의 감정을 읽을 수 있기 때문에 환자의 정신 상태의 변화 등을 파악하기 위해서 사용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보험 업계에서는 보험 가입자들이 우울증을 앓고 있는지를 파악하기 위해서 유사한 기술을 활용하기도 합니다. 미국의 보험사 애트나(Aetna)는 2012년부터 부상이나 질병으로 보험금을 받고 있는 고객이 우울증을 앓는지를 파악하기 위해, 전화상의 목소리를 분석합니다. 만약 해당 고객이 우울증이 있다고 판단되면, 의학적인 상담을 받도록 권유하게 됩니다. 이 보험사는 기존의 의학적 검사 방식에 목소리 분석을 추가함으로써, 6배나 많은 우울증 환자를 골라낼 수 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 보험사는 고객들에게 통화 시의 목소리를 분석하고 있다는 것은 미리 알리지 않았다고 합니다. 단순히 ‘서비스의 퀄리티를 위해서 녹음한다’ 정도만 알렸을 뿐입니다. 만약 보험 가입자들이 자신의 목소리가 분석된다는 것을 안다면,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목소리를 바꿀 소지가 있기 때문입니다. 목소리 분석을 통한 감정 분석이 사생활 침해의 소지가 있다는 것도 알 수 있는 부분입니다.

 

유전형과 표현형, 그리고 ‘확장된 표현형’

이렇게 우리의 행동 양식, 더 나아가서는 건강 상태가 디지털 기기와 온라인 환경에 그대로 반영되어 나타나기도 합니다. 이를 뒤집어 생각해보면, 스마트폰이나 페이스북, 트위터 등의 소셜 미디어 데이터를 기반으로 사용자의 건강 상태까지도 유추해볼 수도 있다는 의미가 됩니다.

2015년 5월 네이쳐 바이오테크놀러지에는 ‘디지털 표현형 (Digital Phenotype)’ 이라는 흥미로운 개념이 소개되었습니다. Ginger.io 앱이 측정하는 스마트폰의 사용 빈도나 통화 길이, 사용자의 위치, 이동 거리 등의 데이터가 사용자의 행동양식이 디지털 데이터로 표현되는, 일종의 표현형 (phenotype) 으로 간주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흔히 생물의 유전적인 요인과 이 요인들의 발현을 의미할 때 유전형 (genotype)과 표현형 (phenotype) 이라는 용어를 사용합니다. 어떤 특징에 대한 유전적인 성질을 DNA 속에 가지고 있는 것과 이것이 발현되어 겉으로 나타나게 되는 것은 구분하여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가 중학교 때 배웠던 ‘멘델의 유전 법칙’ 에서 나오는 완두콩의 모양이 유전되는 방식도 유전형과 표현형으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아래의 그림과 같이 완두콩의 유전형은 SS, Ss, ss 의 세가지로 분류할 수 있고, 표현형은 둥글고 주름진 두 가지로 구분할 수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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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키, 피부/눈 색깔, 곱슬머리 여부 등은 모두 표현형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더 나아가서는 질병에 걸리는 것도 표현형의 일종입니다. 이러한 표현형은 일반적으로 유전적 요인에 환경적인 요소가 더해져서 발현되는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의 부모님이 모두 키가 크고, 장신 유전자를 물려받았다고 하더라도 (유전형), 영양 상태 등의 환경적인 요소가 뒷받침되지 못하면 키가 작은 상태로 (표현형) 성장할 수도 있습니다.

‘이기적 유전자’ 로 유명한 생물철학자 리처드 도킨스는 그의 저서에서 ‘확장된 표현형 (extended phenotype)‘ 이라는 도발적인 개념을 주창했습니다. 표현형의 개념이 단순히 생물 개체의 신체적 특징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생물의 행동이나 그에 따른 부산물까지 그 범위를 확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수달이 나뭇가지를 엮어서 댐을 만들거나, 새가 둥지를 틀고, 거미가 집을 짓는 행동들 마저도 유전자에 의해서 나타나는 표현형의 일종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Digital Phenotype: 디지털로 확장된 표현형

‘The Digital Phenotype’ 이라는 제목의 네이쳐 논문에서는 이러한 리처드 도킨스의 ‘확장된 표현형’ 이라는 개념을 오늘날 디지털 시대에서는 또 한번 더 확장될 수 있다고 이야기 합니다. 바로 스마트폰과 소셜 미디어 등에 남는 디지털화 된 우리의 행동양식 말입니다.

우리는 페이스북에 글을 쓰고, 인스타그램에 사진을 올리며, 트위터에 140자를 올립니다. 카톡으로 대화를 나누고, 새로운 장소에 가면 GPS로 자신의 위치를 검색하여 체크인을 하고, 친구의 글과 사진에 ‘좋아요’를 누릅니다. 디지털 영역에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남기는 이런 발자취는 모두 우리의 행동 양식 및 신체적, 정신적 상태를 반영합니다. 이것이 바로 디지털 표현형 (Digital Phenotype) 입니다.

디지털 표현형은 그 자체로도 의미가 있지만, 기존의 다른 정보들과 합해졌을 때 더욱 강력해질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질병을 진단하거나 검출해내기 위해서 기존의 생물학적인 지표 (biometric profile) 를 더욱 확장시키는 수단이 될 수 있습니다. 즉, 페이스북과 트위터 같은 소셜 미디어, 온라인 커뮤니티, 웨어러블/스마트폰으로 측정된 데이터는 질병의 전통적인 표현형을 더욱 확장시킴으로써, 질병과 해당 환자에 대한 보다 종합적인 이해를 가능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는 질병의 조기 발견에 도움을 줄 수도 있습니다. 전통적인 생물학적 지표의 변화로 증상을 파악하기 전에, 디지털 표현형을 통해서 증상이 더 빨리 나타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불면증에 걸린 환자는 트위터나 페이스북에 남긴 글의 내용이나, 작성 시간이 달라지게 될 것입니다. ‘불면증’, ‘잠이 오지 않는다’ 등의 내용을 글로 쓰거나, 새벽 3시에 글을 남기는 빈도가 올라간다는 등의 양상을 통해서 해당 환자의 불면증 증상을 모니터링 할 수 있습니다.

또 다른 예시로, 양극성 장애 환자에게 하이퍼그라피아 (hypergraphia, 끝없이 글을 쓰고 싶어지는 정신질환) 가 나타난다면 분명히 소셜 미디어에서의 행동 양식도 바뀌게 될 것입니다. 결국 디지털 표현형을 통해 우리는 질병의 발현을 재정의할 수 있으며, 질병에 대해서 더 포괄적으로 접근할 수 있습니다.

아래의 그림은 네이쳐 바이오테크놀러지 논문에서 인용한 것으로, 첫번째는 여러 사람들이 각자 트위터 타임라인에 불면증과 관계된 내용을 2년이라는 기간 동안 얼마나 자주 썼는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두 번째 그림은 불면증에 대한 트윗이 24시간 중에 언제 작성되었는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러한 데이터를 분석하게 되면 개별적인 환자가, 혹은 다수의 환자들이 불면증을 겪고 있는 양상을 파악하기 위한 데이터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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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gital phenotype tweets 2불면증과 관련된 트윗이 올라온 시간대

연구자들과 제약사에서는 디지털 표현형을 이용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기도 합니다. Boston Children’s Hospital 과 다국적 제약사 Merck 에서는 소셜 미디어 데이터를 바탕으로 불면증 환자들의 행동 양상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미국인 중 58% 가 적어도 일주일에 며칠 정도는 불면증으로 고생하고 있으며, 30%의 미국인들은 만성 수면 장애를 겪고 있습니다. 하지만 불면증 진단은 많은 부분 환자 본인의 자가 평가 (self-reporting)을 바탕으로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연구의 책임자 John Braownstein 박사에 따르면,  트위터 데이터 (트윗의 내용, 빈도 등) 및 페이스북 데이터 (‘좋아요’ 누르기, 로그인/로그아웃 시간, 사이트에 머문 시간 등) 를 이해하는 것이 환자의 불면증 증상을 파악하고, 진단을 내리는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제 의학은 다양하고도 방대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더더욱 개인화된 맞춤 의료를 제공하는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습니다. 소위 ‘빅 데이터 의료 (big data-endabled medicine)‘ 입니다. 이상적인 맞춤의료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개인의 유전적인 특징은 물론, 표현형과 사회-환경적인 요소까지 포함하는 여러 차원의 데이터가 합쳐져야 합니다. 디지털 기술의 발전에 따라, 개별 환자의 생리학적, 물리학적, 행동 양식 상의 데이터를 모바일 센서로 측정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아래의 그림 참조)

더 나아가서는, 이번 포스팅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환자의 표현형은 디지털 기기와 디지털 환경으로 확장되어, ‘디지털 표현형’ 으로 남기도 합니다. 디지털 표현형은 기존의 의료 데이터를 더욱 확장시키고 맞춤 의료의 구현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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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춤 의료를 위해서 환자의 유전형, 표현형 및 환경적인 요소까지 총체적으로 고려되어야 한다
(출처: Nature Immunology)

About The Author

IT와 헬스케어의 컨버젼스를 통해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는 것을 화두로 삼고 있는 융합 생명과학자, 미래의료학자, 작가입니다. 포항공대에서 컴퓨터공학과 생명과학을 복수 전공하였고, 동대학원에서 전산생물학으로 이학박사를 취득했습니다. Stanford University 방문연구원,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암연구소 연구조교수, KT종합기술원 컨버전스연구소 팀장, 서울대병원 의생명연구소 연구조교수 등을 역임하였습니다. 현재 최윤섭 디지털 헬스케어 연구소의 소장이며, 국내 유일의 헬스케어 전문 스타트업 엑셀러레이터 디지털 헬스케어 파트너스 (DHP)의 대표 파트너를 맡고 있습니다. 성균관대학교 삼성융합의과학원 디지털헬스학과 초빙교수이자, VUNO, Zikto, Promisope, Souling, 트랜스링크 캐피털, HB 인베스트먼트, 녹십자 홀딩스의 자문이며, 매일경제신문의 필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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