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ursday 28th March 2024,
최윤섭의 디지털 헬스케어

‘먹는 센서’ 를 약에 부착하여, 신약 개발 임상 시험에 활용

‘소화 가능한 센서 (Ingestible Sensor)’ 를 만드는 Proteus Digital Health가 IT 기업 오라클과 함께 이 센서를 신약 임상 시험에 활용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었습니다. 실리콘밸리의 Proteus Digital Health 는 제가 책에서도 소개해드렸듯이, 먹는 약에 센서를 부착하여 소위 ‘스마트 필 (smart pill)’을 만드는 스타트업입니다.

이 센서는 환자가 약을 처방대로 복용했는지를 모니터링하기 위해서 사용됩니다. 환자가 약을 처방 받은 대로 복용하지 않는 것은 막대한 사회적 비용과 불필요한 입원 및 사망을 초래하는 원인이 됩니다. New England Healthcare Institute 의 조사에 따르면, 환자가 처방에 따라 약을 먹지 않는 것 때문에 연간 $290 billion의 의료 비용이 낭비되고, 3.5 m의 입원과 125,000 건의 사망을 초래한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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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teus Digital Health의 ‘먹는 센서’

Proteus 의 센서를 활용하게 되면 환자가 약을 실제로 복용할 때만 기록이 남기 때문에 효과적으로 환자의 모니터링이 가능합니다. 약에 부착되어 있는 모래알 크기의 작은 센서는 위산과 반응하여 미세한 전류를 발생시키게 됩니다. Proteus는 이를 ‘레몬 전지’의 원리라고 부릅니다. 발생된 전기적 신호는 복부에 착용한 전용 패치에 감지되어 스마트폰에 기록이 남게 됩니다. 또한, (종합비타민에도 들어 있는) 무기질로 이루어진 이 센서는 전류를 발생시킨 후 자연스럽게 소화되어 없어집니다.

이 ‘소화 가능한 센서’ 는 2012년 FDA 승인을 받았으며, 2010년에 이미 유럽의 CE  마크를 획득하기도 했습니다.

proteus sensor_모래알 크기의 ‘소화 가능한’ 센서 (출처: Proteus)

특히, 이 시스템은 정확하게 작동하며, 안전성 또한 매우 높습니다. Proteus 는 2014년 이 기술의 정확성을 보여주는 논문을 IEEE Trans Biomed Eng 에 발표했습니다. 이 논문에 따르면 412 명의 환자를 대상으로 20,993 번의 복용을 거친 결과 99.1%의 정확성과 0%의 위양성(false positive)를 보여줍니다. 즉, 약을 복용한 경우 99% 이상의 정확도로 기록이 남게 되며, 약을 먹지 않았는데도 기록이 남은 경우는 0% 였다는 것입니다. 이 과정 중에 부작용이 일어났던 경우는 한 건도 없었습니다.

proteus paper(출처: IEEE Trans Biomed Eng)

이 시스템을 활용하면, 약이 환자의 위 속으로 들어가면 Proteus의 센서 기술을 통해 기록이 스마트폰 어플리케이션에 남게 됩니다. 아래 그림에서 보는 바와 같이, 환자가 8am 과 1pm에 약을 하나씩 먹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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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teus app

이 기술의 일부는 이미 2010년 다국적 제약사 노바티스에 라이센싱 되기도 하였습니다. Proteus Digital Health 는 지금까지 $400m 의 펀딩을 받았으며, 2014년에만 $172m을 투자 받았습니다. 이러한 투자 규모는 디지털 헬스케어 분야의 비상장 기업들 중 가장 큰 것이며, 현재 업계에서 이 회사에 가지는 기대가 얼마나 큰지 알 수 있는 부분입니다. 또한, Proteus 는 디지털 헬스 분야에서 IPO가 가장 기대되는 회사 중의 하나로 손꼽히기도 합니다.

뿐만 아니라, Proteus는 최근의 핫 트렌드인 사물인터넷 (IoT) 분야의 대표적인 기업 중의 하나소개됩니다. 사물 간에 서로 커넥티드 되는 것이 IoT 의 핵심 개념이며, 이 경우에는 약과 스마트폰이 서로 커뮤니케이션 한다고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의 신약이 나오기까지

Proteus Digital Health와 오라클이 ‘먹는 센서’를 임상 시험에 활용하기로 한 것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이해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약이 어떠한 과정을 거쳐서 만들어지는지를 먼저 알 필요가 있습니다.

다국적 제약사들의 경우, 새로운 약을 성공적으로 개발하는 것은 회사의 명운이 달린 문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새로운 약을 개발한다는 것은 오랜 시간과 막대한 재정적인 투자가 필요한 일입니다. 신약 후보물질이 최종적으로 모든 검증을 마치고 신약으로 시장에 출시되기 위해서는 전임상시험 – 임상 1상 – 임상 2상 – 임상 3상에 걸치는 복잡한 임상시험을 거쳐야 합니다.

아래의 그림에서 보는 바와 같이 이 과정은 10년이 넘게 걸리며, 10,000개의 후보 물질 중에 최종적으로 FDA의 승인을 받고 시장에 나오는 것은 하나에 불과합니다.

2889391_orig임상시험 프로세스 (출처)

전임상시험에서는 동물을 상대로 안전성을 테스트하고 인간 임상에서 사용할 용량을 결정하게 됩니다. 임상 1상에서는 작은 규모의 사람에 대해서 주로 안전성을 검증하며, 임상 2상, 3상으로 갈수록 수천명의 사람들을 대상으로 안전성 (safety) 및 유효성(efficacy)을 검증하게 됩니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해당 후보물질이 정말 특정 질병에 (위약이나 기존 치료법에 비해서 유의미한) 효과가 있는지, 부작용은 없는지, 적정 투여 용량은 어떠한지 등이 검증되게 됩니다. 이 모든 길고도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만 하나의 신약이 탄생하는 것입니다.

 

임상 시험 참여자들의 관리 문제

이러한 임상 시험 과정에서 제약회사들의 고민이 있습니다. 바로 임상 시험에 참여하는 환자들을 모니터링하는 것입니다. 임상시험을 거치면서 신약 후보 물질의 유효성과 안전성, 그리고 용법을 정하게 되기 때문에, 환자들이 스스로에게 주어진 프로토콜 (용량과 용법 등) 을 잘 준수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특히 경구제의 경우, 환자들은 보통 한달 분의 임상 시험 약을 수령하여 각자 집으로 돌아간 후 일상 생활을 하면서 약을 복용하게 됩니다. 하지만 문제는 이 환자들이 정말 약을 주어진 용법과 용량대로 정확하게 복용하였는지를 모니터링 할 수 있는 방법이 기존에는 없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환자들이 임상시험 연구자들에게 스스로 보고하는 것을 그대로 믿는 것 외에는 별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이는 약의 유효성과 안전성을 정밀하게 판단해야 하는 제약사의 입장에서는 매우 중요한 문제입니다. 만약 환자가 실제로는 약을 잘 복용하지 않았는데도,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이에 대해 정확하지 않은 정보를 제공하는 경우에는 제약사가 정교한 판단을 내리는데 걸림돌이 되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임상 3상에서 실패하는 약 중의 45% 가 환자들의 프로토콜 미준수 때문이라고도 합니다.

예를 들어 극단적이지만 이러한 경우도 생각해볼 수 있을 것입니다. 만약에 환자가 ‘약을 모두 잘 챙겨 먹었다’ 고 보고하였으나 실제로는 약을 거의 복용하지 않은 경우:

  • 그 환자의 상태는 악화되었으나, 알고보니 그 약은 실제로 효과가 있을 수도 있음
  • 심각한 부작용이 있는 약인데도, 약을 먹지 않았기 때문에 부작용이 나타나지 않은 것일 수도 있음

기존에 제약회사는 환자가 지시대로 정해진 빈도와 정해진 용량의 약을 복용했는지에 대해서, 환자의 말을 믿는 것 말고는 다른 방법이 없었습니다. 때문에, 환자들은 수령한 신약 후보물질을 자기가 복용했다고 거짓말을 하고, 실제로는 뒷거래를 통해 다른 환자에게 판매하는 등의 경우도 가끔 있었다고 합니다.

 

‘먹는 센서’로 임상시험 환자들의 복약을 모니터링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Proteus Digital Health와 거대 IT 기업인 오라클이 이 ‘먹는 센서’를 신약 임상 시험에 활용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했습니다. 오라클은 기존에 임상 시험 관리 솔루션을 제공하여 왔습니다. 클라우드 컴퓨팅을 기반으로 한 오라클의 Health Sciences InForm 임상 시험 모니터링 시스템은 지금까지 5,000 여 임상 시험에 활용되어 왔습니다.

Proteus와 오라클은 이 시스템에 ‘먹는 센서’ 솔루션을 통합한 것입니다. 즉, 임상시험에 사용되는 약에 Proteus 의 센서를 부착하여 환자들에게 나눠주고, 환자가 역을 복용할 경우 이 기록이 오라클이 보유한 임상 시험 관련, “전자 데이터 수집 (Electronic Data Capture)” 시스템으로 자동 전송 됩니다.

이로써 이제 제약사들은 환자들이 집에서 실제로 약을 언제, 얼마나 복용했는지를 실시간으로 모니터링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는 제약 회사들의 신약 임상 시험 프로세스에 근본적인 변화를 불러일으킬 것으로 예상됩니다.

이 기술을 통해서 제약사들은 단순히 임상 시험 프로토콜을 환자들이 잘 준수하는지를 모니터링 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후보 물질에 대한 유효성과 안전성에 대해 더 정확한 데이터를 얻을 수 있습니다. 이는 결국 임상 시험의 속도와 성공률을 높이는 결과를 가져오게 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뿐만 아니라, 환자들로부터 자료를 수집하고 취합하는 번거로운 과정과 비용도 절감할 수 있습니다. 기존에는 환자들이 직접 설문지를 작성하고, 임상시험 연구자들은 남은 약의 개수를 확인하고 이 정보를 시스템에 수작업으로 입력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Proteus-오라클의 솔루션을 활용하면 이러한 과정을 모두 자동적으로 수행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패치로는 환자의 활동량과 심전도 측정

(이번 발표에는 직접적으로 언급이 되고 있지는 않습니다만) 이 시스템의 추가적인 장점 하나는 바로 복부에 부착하는 패치입니다. 7일 동안 착용하면서, ‘먹는 센서’의 신호를 받아들이는 이 패치는 그 자체로 하나의 웨어러블 센서입니다. 이 센서는 가속도계 등을 이용하여 환자의 자세, 활동량과 심전도, 체온, 임피던스 등을 측정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데이터는 약의 종류에 따라서, 임상 시험 과정에서 매우 중요한 정보가 되기도 합니다. 심혈관계 질환이나 관절염, 그리고 알츠하이머, 파킨슨 병 등의 퇴행성 질환 등에 대해서는 환자의 활동량과 심전도의 변화를 약의 측정과 함께 모니터링 할 수 있다는 것은 큰 장점일 것입니다. (하지만 이 패치의 활동량/심전도 측정에 관해서는 FDA 승인을 받았다는 이야기는 아직 없는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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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약사들은 이 센서를 이용하게 될까

지금까지 Proteus Digital Health의 ‘소화 가능한 센서 (ingestible sensor)’ 가 제약회사의 임상 시험 프로세스를 개선하기 위해서 새롭게 사용될 수 있음을 살펴 보았습니다. Proteus의 센서도 일종의 ‘웨어러블 센서’ 로 볼 수 있겠지만, 신체에 부착하거나 착용하는 일반적인 센서와는 상당히 특이한 포지셔닝을 구축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퀄컴도 이 소화 가능한 센서의 개발에 관심을 보이고는 있지만, 아직까지는 Proteus Digital Health 기술이 독보적으로 보입니다.

노바티스가 이 기술을 라이센싱 한지 이제 몇 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만, 아직까지 시중에 이 센서를 부착한 약이 출시되고 있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이 센서를 부착하고서 임상 시험을 거친 약의 경우, 시중에 시판 될 때에도 이 센서를 부착하고 나오게 될 가능성이 높지 않을까 합니다.

임상 시험에 이 센서를 활용하는 것은 역시나 cost-effectiveness 가 고려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 센서를 이용하는 비용이 얼마나 되는지는 아직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제약사의 입장에서는 신약 개발에 실패하는 것의 기회비용이 너무도 크기 때문에 이 센서에 대한 매력이 클 것으로 예상합니다. 앞으로 제약사들이 임상시험에 이 센서를 얼마나 이용하게 될지 귀추가 주목됩니다.

 

 

About The Author

디지털 헬스케어를 통해 의료를 혁신하고 세상을 더 건강하게 만들고자 하는 벤처투자자, 미래의료학자, 에반젤리스트입니다. 포항공대에서 컴퓨터공학과 생명과학을 복수 전공하였고, 동대학원에서 전산생물학으로 이학박사를 취득했습니다. 스탠퍼드 대학, 서울대학교병원 등에서 연구하였습니다. 현재 디지털 헬스케어 스타트업 전문 투자사, 디지털 헬스케어 파트너스 (DHP)를 2016년에 공동창업하였고, 대표를 맡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40여 개의 디지털 헬스케어 스타트업에 투자하였습니다. 네이처의 디지털 헬스케어 분야 자매지 『npj 디지털 메디슨』의 편집위원이자, 식약처, 심평원의 전문가 협의체 자문위원입니다. 『디지털 헬스케어: 의료의 미래』 『의료 인공지능』 『헬스케어 이노베이션』 등을 집필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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