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esday 19th March 2024,
최윤섭의 디지털 헬스케어

수퍼컴퓨터 IBM Watson, 의학의 미래가 될 것인가? (전편)

과연 컴퓨터가 의사의 역할을 대체할 수 있을까요? IT 기술의 발달에 따라 디지털 의학 혁명의 시대가 도래하면서, 컴퓨터의 힘이 의학에서 어디까지 영향을 미칠지에 대해 많은 관심이 모아지고 있습니다. 혹자는 컴퓨터 알고리듬이 의사의 역할을 상당 부분 대체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선마이크로시스템즈의 공동설립자이자, 실리콘밸리의 벤처캐피털리스트 Vinod Khosla 가 그 대표적인 사람입니다. 그는  2012년 1월 TechCrunch에 에 “우리는 의사가 필요한가, 아니면 컴퓨터 알고리듬이 필요한가? (Do We Need Doctors or Algorithms?)” 라는 글을 기고하면서, 미래에는 의사의 80%가 컴퓨터로 대체될 것이라는 다소 급진적인 주장을 펼쳐 많은 의미 있는 논쟁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컴퓨터가 정말 의사를 대체할 수 있을지의 여부는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엇갈리고 있는 상황이지만, ‘IT 기술의 비약적인 발전이 어떤 식으로든 미래 의학에 큰 영향을 줄 것이다’ 라는 대전제 자체를 부인하는 사람은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이러한 이야기가 나올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주인공이 바로 이번 포스팅에서 다룰 IBM의 수퍼컴퓨터 Watson (왓슨) 입니다. 이 수퍼컴퓨터는 IBM의 설립자이자 이 기업을 세계적인 반열에 올려 놓은 Thomas J. Watson 을 따라 이름을 지은 것입니다. (우연이겠지만, 셜록 홈즈의 조수이자, 군의관 출신으로 상당히 뛰어난 의사였던 ‘왓슨 박사 (Dr. Watson)’ 의 이름이 연상되기도 합니다.)

 

IBM Watson, 퀴즈쇼 ‘제퍼디!’ 에서 인간 챔피언들을 물리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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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BM Watson이 대중들에게 이름을 알리게 된 계기는 2011년 1월 Jeopardy! 라는 유명 퀴즈쇼에서, 프로그램 역사상 가장 훌륭했던 ‘인간’ 챔피언 두 명 -Ken Jennings, Brad Rutter- 과 퀴즈대결을 벌여서 압도적인 우승을 차지했던 것입니다. Jeopardy! 퀴즈쇼는 문제가 사람이 자연적으로 쓰는 문장의 형태, 즉 소위 자연어(natural language)로 문제가 출제됩니다.

예를 들어, “‘이것’의 가장 큰 공항은 2차 세계 대전의 영웅의 이름을 따라 지었고, 두번째 큰 것은 2차 세계 대전 전투의 이름을 따랐다 (Its largest airport was named for a World War II hero; its second largest, for a World War II battle)”고 하면 “그것은 ‘시카고’ (What is Chicago)” 라고 대답해야 하는 형식입니다.

자연어로 문제가 출제 되면 그 문제 속에 들어 있는 단어의 의미, 뉘앙스, 약어 등을 숙지해야 하며, 동의어, 반어법, 인물, 수수께끼, 의미 분석 등을 분석해야 하는 ‘사람과 같이 사고하는’ 과정이 필요하기 때문에 컴퓨터가 이를 과연 얼마나 잘 풀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 많은 주목을 받았습니다. 실제 이와 같이 ‘자연어’를 분석하는 분야인 자연어 처리 (Natural Language Processing) 는 컴퓨터 공학에서 매우 중요한 분야 중의 하나입니다. (자연어 처리에 관심이 있으신 분은 이 리뷰 논문을 참고하시는 것도 좋겠습니다)

Watson은 이 퀴즈쇼에서 문제를 다른 두 명의 챔피언과 ‘동시’에 (텍스트 파일로) 제공 받았으며, 인터넷에 연결되어 있지 않은 채로 하드디스크에 저장되어 있는 자료들만을 검색해서 문제를 풀어내었습니다. 또한, 검색 결과에 따라서 수많은 가능한 답들을 신뢰도에 따라서 도출하고, 가장 신뢰도가 높은 (정답일 가능성이 높은) 단어를 답으로 제출합니다 (이 부분이 중요한 이유는 의사들이 환자를 진료할 때에도 가능한 몇가지 진단명 중에 가능성이 가장 높은 것부터 살펴보기 때문입니다). 퀴즈쇼가 진행될 때 화면 하단에는 가장 신뢰도가 높은 세 가지의 단어가 무엇이었는지를 보여줌으로써, Watson이 어떠한 계산 과정을 거치는지를 짐작할 수도 있게 하였습니다.

아래의 동영상은 Jeopardy! IBM Challenge 의 첫 부분을 10분 정도 보여주고 있습니다. Watson에 대한 소개, 두 명의 ‘인간’ 퀴즈 챔피언들의 소개 및 실제 퀴즈쇼가 어떻게 진행되었는지를 재미 있게 보실 수 있습니다.


 

결국 Watson은 두 차례 이뤄진 게임에서 압도적인 점수로 우승을 차지합니다. 상금으로 참가자들의 점수가 매겨지는 이 퀴즈쇼에서 (문제의 분야를 자신이 선택해, 문제를 듣기 전에 상금을 베팅하는 형식) 1차전에서는 Jennings 가 $4,800, Rutter 가 $10,400 을 기록한 반면, Watson 은 이들을 훨씬 앞지르는 $35,734 의 점수를 차지했고, 2차전에서는 Watson 이 $77,147 를 차지한 반면, Jennings 는 $24,000 를,  Rutter 는 $21,600 의 점수 밖에 획득하지 못했습니다. 이 두 명의 인간 챔피언이 역대 어마어마한 상금을 차지한 경력을 생각해보면, 이러한 압도적인 승리는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IBM Watson, 암 진단 및 진료 분야에 뛰어들다.

Jeopardy! 퀴즈쇼에서 자신이 인간처럼, 혹은 어떤 의미에서는 더 뛰어나게 사고할 수 있다는 것을 당당히 증명한 IBM Watson은 이후, 자신의 계산 능력을 다름아닌 헬스케어 분야, 특히 암 진단 및 치료법 제시에 사용하겠다고 발표합니다.

암이 인간의 삶을 위협하는 무서운 존재임은 따로 강조할 필요도 없을 것입니다. American Cancer Society 에 따르면, 지난 한 해 미국에서만 1.6 million 명의 새로운 암 환자들이 생겨나고 있으며, 여러 연구들에 따르면 이 복잡한 질병에 대해 5명 중에 한 명은 잘못된, 혹은 불완전한 진단을 받는 실정이라고 합니다.

사실 Watson은 Jeopardy! 에 출전하기 훨씬 이전부터 Watson은 이미 헬스케어 분야에 응용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2011년 5월에 발표 된 이 포브스의 기사를 보면, 이미 18개월 전부터 University of Maryland 의 전문의 Dr. Eliot Siegal 의 팀과 협력하여 Watson은 각종 의학 저널과, 교과서, Medline, PubMed 등의 자료들, 그리고 더 나아가 M.D. Anderson Medical Center 나 Johns Hopkins 등에서 나온 백혈병, 파킨슨씨 병 등의 데이터를 학습시키기도 하였습니다. 과거 Jeopardy! 에 대비하여 2년 정도 자료들을 학습하고 문제 풀이에 적합한 알고리듬을 준비한 것과 마찬가지로, 의학에서도 예전부터 이런 준비를 해온 것입니다. 이렇게 Watson이 방대한 의학 자료들을 학습한 것과 관련하여 Dr. Eliot Siegal은 ‘이제 Watson은 의대 2학년 정도의 지식을 학습하였다.’ 라고 평가하기도 하였습니다.

Memorial Sloan Kettering Research Building

이렇게 기초적인 의학지식을 제공 받은 Watson은 지금으로부터 1년 정도 전인 2012년 3월에 세계에서 가장 오래되고, 가장 큰 사립 암병원인, 뉴욕의 ‘Memorial Sloan Kettering Cancer Center (MSKCC)’ 병원에 일종의 ‘레지던트‘ 로 들어가게 됩니다. 실제 의사들이 어떻게 암 환자를 진료하고, 진단을 내리고, 치료에 대한 의사결정을 내리는지를 학습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IBM과 MSKCC의 콜라보레이션을 통해 처음에는 폐암에서 시작하여, 차츰 유방암과 전립선암 등으로 범위를 넓혀가겠다는 계획을 발표하였습니다.

MSKCC 의 종양전문의 Mark Kris는 “다른 여타 의사들처럼 트레이닝 과정을 거치게 될 것이다. (It will be like having a Memorial Sloan Kettering trained colleague for any doctor on earth.)” 라고 이야기 하였습니다. 이후 일년간, 전문의들과 공학자들은 수 천 시간의 시간을 Watson을 ‘가르치는’데 사용하였습니다. 자연어 처리 방식으로 의료 데이터를 어떻게 처리하고, 분석, 해석하여 헬스케어 서비스의 질과 효율을 높일 수 있을지를 학습한 것입니다.

watson

지난 2013년 2월 8일에 IBM에서 공식적으로 발표된 뉴스에 따르면, 지금까지 왓슨은 암 연구 분야에 대해서 600,000 건의 의학적 근거 (medical evidences), 42개 의학 저널과 임상시험 데이터로부터 2 million 페이지의 분량의 자료들을 학습했다고 합니다. 또한 Memorial Sloan-Kettering 의 의사들은 1,500 개의 실제 폐암 치료 사례를 시작으로, 전문의들의 노트, 환자의 기록, 실험실 결과, 임상에서의 결과 등 ‘자연어 형태로 되어 있는’ 데이터를 모두 학습시켰다고 합니다. 여기에 25,000 개의 테스트 케이스를 추가하기도 하였으며, 그 이후로 14,700 시간 동안 간호사들이 주의 깊은 ‘수작업’ 으로 Watson의 학습에 대한 수정을 거쳤다고 합니다.

이렇게 방대한 데이터를 학습했다고 하는 것에서 Watson은 다름 아닌 ‘Big Data‘ 과학의 산물임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인간이 모두 기억하기 불가능한 방대한 양의 의학 데이터를 모두 고스란히 저장하고 있으며, 그것을 눈 깜짝할 사이에 검색하고 환자의 진료에 대한 근거로 활용할 수 있다는 점은, ‘Watson이 인간 의사보다 치료에 대한 의사 결정을 더 잘 할 수 있다‘는 주장에 대한 근거 중 하나로 쓰이기도 합니다.

 

IBM Watson, 드디어 실제 의료 현장에 데뷔하다!

Watson이 헬스케어 분야에 진출하겠다고 선언한지 2년이 흐른, 지난  2013년 2월 말에 드디어 IBM과 MSKCC, 그리고 그들과 파트너십을 맺은 미국의 거대 보험사 WellPoint는 이제 Watson을 의료 현장에 제한적으로 투입시키겠다고 발표하였습니다. Watson을 이용한 서비스에는 크게 다음과 같은 두 가지가 있습니다.

  • Interactive Care Insights for Oncology
  • Interactive Care Guide & Interactive Care Reviewer

먼저 Interactive Care Insights for OncologyWatson이 의사들에게 특정 환자를 치료하기 위해 가능한 치료법 들을 추천해주기 위해 사용됩니다. Watson 이 학습한 방대한 양의 의학, 임상 데이터 및 연구 결과, 환자 개인의 정보 등을 이용하여 가장 적절하다고 생각되는 치료 방법을 의사에게 권고 해주는 것입니다. 의사들은 이 권고안을 참고하여 최종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습니다. 이 서비스의 사용자는 의사들로, 그들이 물리적으로 어디에 위치하든지 클라우드 컴퓨터의 형태로 Watson에 접속하여 결과를 얻을 수 있게 됩니다. 현재는 폐암에 대해서만 사용할 수 있으며, 점차 다른 암에도 범위를 넓혀갈 계획입니다.

아래의 유투브 동영상은 Watson 이 어떠한 방식으로 의사의 의사결정을 도울 수 있는지에 대한 가상의 예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환자의 상태가 변하면 거기에 따른 새로운 치료법을 제시하여 주기도 합니다. 특히, Watson은 하나의 환자에 대해서 여러 가지 치료 방식을 우선 순위로 나누어서 각각 권고하여 주고, 그 권고안 마다 그것이 근거로 하는 자료들을 확인할 수 있게 되어 있습니다. 말 그대로 ‘근거 중심 의학 (evidence based medicine)’을 실현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두번째 Interactive Care Guide & Interactive Care Reviewer 는 의료 보험사인 WellPoint의 입장에서, 특정 환자를 치료하기 위해 의사가 제시하는 치료법과 Watson이 제시하는 치료법을 서로 비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과연 의사가 제시하는  치료법을 보험사가 승인할 것인지를 판단하고, 그래서 의료보험금을 보험사가 지불해도 되겠는지를 평가하기 위한 것입니다. (아마도 사람이 직접 평가를 해야 했던 이러한 과정에) Watson이 개입함으로써, 기존 보험사의 의사 결정 프로세스를 더욱 빠르고 효율적으로 만드는 것이 목적입니다.

WellPoint는 어떤 경우에도 Watson의 치료법이 의사가 제시한 치료법을 거부하기 위해서 사용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강조합니다. 만약 의사가 제시한 치료법과 Watson이 제시한 치료법이 불일치할 경우에는 WellPoint 보험사의 담당자가 직접 이를 비교하여 판단하는 과정을 거칠 것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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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서비스는 제한적이기는 하나 이미 사용이 시작되었습니다. 일단 올해나 내년까지는 WellPoint의 의료 보험에 가입되어 있는 제한된 몇개의 병원에서 사용된 후에 피드백을 받아서 더욱 개선하고, 이후에는 더 널리 사용될 것이라고 합니다. Interactive Care Insights for Oncology는 The Maine Center for Cancer Medicine 과 WESTMED Medical Group 의 두 개의 ‘얼리어답터’ 그룹이 사용을 시작했습니다. Interactive Care Guide & Interactive Care Reviewer 서비스의 경우에도 WellPoint 에 가입되어 있는 의사들(in-network physicians)을 대상으로 무료로 시범 사용되었다가, 이후에는 다른 의료 보험사에도 이 서비스를 판매할 계획이라고 합니다. WellPoint는 일단 2013년 말까지 1,600 명의 의사들에게 이러한 서비스를 보급하는 것이 목표라고 발표하였습니다.

 

그렇다면, Watson의 이러한 의료 진단은 얼마나 정확할까요? Watson은 미래의 병원에서 얼마나 더 널리 쓰일 수 있을까요? 분명한 것은 컴퓨터 알고리듬이 인간의 질병을 진단이 가능해지면서 큰 파급효과를 낳을 것이라는 점입니다. 이어지는 2 편에서는 이러한 ‘이슈’에 대해서 자세히 더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이미지 출처:

  • http://www.forbes.com
  • http://en.wikipedia.org/wiki/Watson_(computer)
  • http://mobihealthnews.com/20255/ibms-watson-interns-at-memorial-sloan-kettering/
  • http://ludwigcenter.stanford.edu

About The Author

디지털 헬스케어를 통해 의료를 혁신하고 세상을 더 건강하게 만들고자 하는 벤처투자자, 미래의료학자, 에반젤리스트입니다. 포항공대에서 컴퓨터공학과 생명과학을 복수 전공하였고, 동대학원에서 전산생물학으로 이학박사를 취득했습니다. 스탠퍼드 대학, 서울대학교병원 등에서 연구하였습니다. 현재 디지털 헬스케어 스타트업 전문 투자사, 디지털 헬스케어 파트너스 (DHP)를 2016년에 공동창업하였고, 대표를 맡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40여 개의 디지털 헬스케어 스타트업에 투자하였습니다. 네이처의 디지털 헬스케어 분야 자매지 『npj 디지털 메디슨』의 편집위원이자, 식약처, 심평원의 전문가 협의체 자문위원입니다. 『디지털 헬스케어: 의료의 미래』 『의료 인공지능』 『헬스케어 이노베이션』 등을 집필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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